[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죽음조차 비주류가 돼버린 ‘김기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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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죽음조차 비주류가 돼버린 ‘김기덕 감독’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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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김기덕 감독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생전 천국과 지옥 모두를 오간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그의 죽음 이후는 어떠한가. 

지난 11일 갑작스런 사망소식이 전해진 지 나흘째인 오늘도 일부 영화인들을 제외하고는 관계자들 대부분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각종 영화인 단체의 공식적인 애도 표명도 없다. 

과연 이 세상에 슬픔 없는 죽음이 있을까마는 김기덕 감독에게 만큼은 이러한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선뜻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그가 없는 세상, 대중에게 ‘김기덕’ 이란 세 글자는 작품으로 기억되는 ‘한국 영화의 거장’보다는 ‘용서받지 못한 미투 가해자’로 각인돼 있다. 

그의 삶을 영화라고 한다면 슬픔에 동참해 엔딩 크레디트를 함께 장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 감독의 죽음에 다수의 대중은 애도 대신 비판을 택했다.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거장

그는 해외에서 ‘한국이 낳은 거장’으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계에 입문한지 채 10년이 안 된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인 ‘은곰상’을, 같은 해에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역시 감독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영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피에타’를 통해 201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감독으로는 최초로 ‘황금사자상(최고상)’을 수상했다. 이때에 비로소 우리 영화계에서도 그에게 ‘거장’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비주류’가 ‘주류’로 발돋음 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세계 3대 영화제 모두 본상을 수상한 유일한 한국 감독이라는 화려한 이력에도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비주류였다.

독학으로 공부한 영화, 우리 영화계의 문법과는 다소 이질적인 작품과 제작환경은 극복하기 힘든 한계가 분명 존재했고, 이는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에게 부여된 ‘거장’이라는 수식어에는 세계가 인정했으니 우리도 ‘이단아’인 그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당위성’ 정도의 의미가 담겼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김기덕 브랜드가 추구하는 영화 세계가 우리네 정서와 상당한 괴리감을 드러낸다는 데 있다. 날것 그대로인 인간의 욕망은 늘 뒤틀려 있으며, 추악하고 거칠고 폭력적이다. 이에 순응하거나 철저히 파괴당하는 여성의 영혼은 기괴하기만 하다.

대다수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이 같은 서사는 카타르시스 보다는 낯선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이는 때때로 상당히 불쾌하고 찌를 듯한 통증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물론 예술적으로 얼마든지 표현 가능한 것이기에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분명 그의 영화에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감하기 힘든 영화적 상상력은 대중성을 확장시키지 못했다. 안타깝지만 유럽에서 인정받은 그가 ‘한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거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 김기덕 감독. 사진=EPA/연합뉴스
고 김기덕 감독. 사진=EPA/연합뉴스

빛나는 업적이 면죄부 될 수 없어

작업환경에서 불거져 나온 그에 대한 설왕설래는 늘 부정적이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2018년 비로소 미투로 폭발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곪아왔던 것이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미투 가해자인 배우 조재현은 은둔 중인데, 김 감독은 뭐가 그리 억울했던 건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배우들, 그리고 관련 내용을 보도한 방송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벌여왔고 패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초강수가 아닌 괘씸죄를 부르는 무리수였다. 

이미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을 때, 그 파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기에 대중은 이미 그에게 심리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아마도 김 감독에게 한국은 더 이상 자신의 창작욕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라고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이 신음하고 있을지 모를 그 때 그는 해외에서 활동을 이어나갔고, 라트비아에서 새 삶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타국에서 홀로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애도는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지만, 그것이 지켜질 수 없는 데는 김기덕 감독이 살아 생전 피해여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은 탓이 크다. 소송 대신 사과를 했어야 했고, 창작욕을 발휘하는 대신 참회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끝까지 싸우려 했던 것은 패착이었다. 아티스트로서의 역할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먼저 했어야 했다. 이미 때늦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능력과 인성은 별개로 봐야 한다지만 빛나는 업적이 범법행위를 덮어주는 면죄부는 되지 못하며, 무례함을 용인해 주는 핑계거리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죽음조차 비주류로 편입돼 버린 차갑기만 한 그의 뒤안길에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공존한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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