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h so! 베를린] 독일인들의 시간은 일본인들과 다르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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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 so! 베를린] 독일인들의 시간은 일본인들과 다르게 흘렀다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 승인 2020.12.0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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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 확정은 아니지만 의회 입장 '단호'
남의 나라전쟁 문제에도 독일의 태도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식
지금도 90세된 전쟁범죄자 단죄...반성을 거듭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나라
일본은 역사를 거슬러 범죄를 지우느라 급급...미래가 과거진행형인 나라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12월 1일 베를린시 미테구 의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를 위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찬성 24명, 반대 5명의 압도적 다수의견이다.

다만 해당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어, 영구 존치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참석의원 31명중 24명이 찬성했으므로 구청 차원에서도 후속 조치에 대한 논의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외국인인 필자의 입장에서 타국의 지방의회가 자국의 전쟁범죄 행위가 아닌 일에 이렇게 나서주는 것에 대해 놀랍고도 감동적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독일인들은 한국과 일본 양국간의 갈등으로 치부해버려도 될 사안에 이렇게 나서는 것일까?

이번 결의안을 녹색당과 공동발의한 좌파당의 한 의원은 이 결의안에 대해 “전쟁이나 군사 분쟁에서 성폭력은 심각한 구조적 문제로서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독일 사회

독일시민들과 함께 하는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 운동. 사진=연합통신
독일시민들과 함께 하는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 운동. 사진=연합통신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독일 지방의회 의원들이 보는 시각의 핵심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0월 '평화의 소녀상' 문제가 불거질 당시에도 필자는 독일 지방의회와 같은 시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독일은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본질을 '보편적 인권'에 대한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로만 볼 수도 있지만 두 나라의 이름을 지우고 보면 어느 전쟁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고질적이고 악질적인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범죄형태와 관련된 것으로 인식했다.

여기에서 지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과거사에 대해 독일 정부가 취하고 있는 태도에 대해 눈여겨 볼 것이 있다. 바로 국가 사법기관과 동시대 정치인들이 선대의 전쟁범죄에 대해 일관되게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악의 평범성'에 놀라 끊임없는 반성으로 민주주의 지키려 

독일은 1945년 뉘른베르크에서 전쟁범죄에 대한 재판 및 처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나치부역자를 추적해 재판정에 세우고 있다. 유대인 학살 방조 혐의로 90세가 넘은 노구를 재판정에 세우는 나라가 독일이다. 결국 전쟁범죄에 대한 철저한 사법적 반성을 하겠다는 의지가 선연하다.

악의 평범성을 목도하게 될 때 사람들은 그들의 죄 또한 용서가능할 것처럼 동정을 가질 수 있으나 독일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죄를 저질렀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할지라도 독일의 사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매년 독일 정치인들은 600만 유대인 학살에 대한 참회 행사를 가지고 국가 원수가 아우슈비츠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헌화를 한다.

독일은 왜 이렇게 할까? 독일은 철저한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을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자유, 평화, 인권에 대한 가치를 보호하고자 한다. 국가기관과 정치인들이 나서서 국가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의 본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독일은 내부적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왔겠지만 큰 방향에서 그들의 반인도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성해 왔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전쟁범죄 행위라 할지라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고 시민사회에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접근이 되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의 문제가 독일과 일본의 외교적 문제로만 인식되어 있을 때와 달리, 독일 시민사회로 이 문제가 확산되자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독자적인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독일 시민사회의 전형적인 접근방식이다. 이러한 태도는 '평화의 소녀상' 하나의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독일은 그런 식으로 여러 다양한 사안의 전쟁범죄에 대해 자국의 시각으로 판단하는 사회적 프로세스가 갖추어진 나라다.

'도쿄재판'조차 억울하다고...역사를 거슬러 사는 일본

그러면 일본은 어떠했나? 1945년 똑같이 전범재판을 했던 나라인 일본은 이제 와서 '도쿄 재판'이 억울하다는 소리까지 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역사수정주의를 국가적 모토로 삼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거로 회귀시키고자 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의 이웃인 일본이다.

해외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기만 하면 해당 국가의 대사관을 통해 대놓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태도이다. 일본의 사법부나 정치권이 보여준 과거사 반성은 독일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역사를 거슬러 살고 있다.

이번 베를린 미테구의 '평화의 소녀상' 존치 움직임을 보면서 독일과 일본, 두 나라는 과연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기에 충분했다.

독일은 전쟁의 역사를 딛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범죄의 역사를 거슬러 그것을 지우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들에게 미래는 여전히 과거진행형일 뿐이다. 일본에게 전후역사는 반성을 통한 발전적 역사라기 보다, 퇴보의 역사가 되어버린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같은 시간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살아온 두 나라의 진면목이 선명히 대비된다.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은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주로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Ach So!는 '아하!` 라는 뜻의 독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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