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규 칼럼] 검사는 왜 유죄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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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규 칼럼] 검사는 왜 유죄에 집착하는가
  •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변호사
  • 승인 2020.11.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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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모 판사, 소극적..형소법 꼼꼼이 진행”..이런 정리 왜 필요할까
"암환자 되고 싶지 않은데, 의사가 꼼꼼해서 암이 발견됐다"는 건지
무죄 판결, 검사가 패한게 아니고..중형선고가 검사 승리 아냐
재판의 목표는 '실체적 진실' 가리는 것...꼼꼼한 진행에 감사할 뿐
객관적으로 사건 대하려면, 수사와 기소 분리가 정답...검찰 개혁으로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변호사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변호사

[류인규 법무법인 시월 변호사]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사건의 심리가 오늘(3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이루어진다. 윤 총장은 몇가지 비위혐의를 이유로 직무배제 되었다. 그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판사 사찰’ 의혹이다.

'판사 사찰' 문건에 눈길 가는 이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올해 초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조국 전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 판사들의 개인정보와 성향 자료를 수집한 문건을 윤 총장에게 보고했고 윤 총장은 이를 대검 반부패강력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윤 총장 측 변호인은 26일 문제의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문건이 공개되자 법조계는 물론이고 각계에서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검사가 얼마나 재판에 자신이 없으면 판사의 사적인 정보까지 수집하느냐는 비난부터, 원활한 재판을 위해 판사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옹호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필자 역시 형사사건을 다수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문건을 관심있게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구절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모 판사에 대하여 “너무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로 형소법 규정에 따라 꼼꼼하게 재판을 진행”한다고 평가한 구절이었다. “형소법 규정에 따라 꼼꼼하게 재판”하는 것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느껴졌다면, 해당 문구를 작성한 검사는 평소에 형소법(형사소송법) 규정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일부 검사들은 재판을 ‘승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해당 문구를 작성한 검사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승부의 관점에서 보면 검사의 공격을 제약하는 형소법 규정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사소한 몸싸움에도 까다롭게 휘슬을 불어댄다면 선수 입장에서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심문이 3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심문이 3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다. 사진= 연합뉴스

재판은 '실체적 진실' 찾기...승리가 목표아냐

그러나 재판은 검사와 변호인이 서로 기량을 겨루는 ‘승부’가 아니다.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해서 검사가 패배한 것도 아니고, 중형이 선고되었다고 해서 검사가 승리한 것도 아니다. 재판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게 위해 검사와 변호인이 각자의 맡은 역할을 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 형소법 규정이다.

판사가 형소법 규정에 따라 꼼꼼히 절차를 진행해 준다면 검사로서는 감사해야 할 일이다. 마치 환자의 병명을 찾기 위해 꼼꼼히 검사를 하는 의사에게 환자가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과도 같다. “나는 암환자가 되고 싶지 않은데 의사양반이 검사를 너무 꼼꼼히 하는 바람에 암이 발견되어버렸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검사들은 재판을 ‘승부’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한 사건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지 않은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몇 달간 밤을 새며 수사한 사건이라면 어떻게든 유죄를 받아내야 한다는 승부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는 '인지상정'이다. 이를 두고 검사 개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남이 한 수사로 재판 임해야 승부에 집착안해

결국 해답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에 있다. 남이 수사한 것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게 되면 자연히 객관적 시각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 검사가 이기고 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유죄판결은 검사의 ‘목표’가 아니라 재판의 ‘결과’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판사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필요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추미애 장관이 전면에 내세우는 검찰개혁 수단이다. 물론 검찰개혁이라는 말이 정치적 수사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고, 추미애 장관의 입지도 예전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검사가 객관적 자세로 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이번 ‘판사 사찰’ 논란에서 검사가 재판에 임하는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상 조금도 주저해선 안된다.

● 류인규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시월의 대표변호사로 재직중이며, 대학원에서 경제법을 전공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형사전문변호사로 공인받아 다양한 경제범죄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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