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구본준 고문...LG상사 안고 '공격경영'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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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구본준 고문...LG상사 안고 '공격경영' 나서나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0.11.26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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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짜는 LG장자家, 형제는 계열분리 후 독립하는 LG가 전통 
LG디스플레이를 세계 1위로 이끈 용장
LG전자에서도 공격적 투자...한 때 그룹경영 총괄하기도
구본준 LG그룹 고문. 사진=LG
구본준 LG그룹 고문. 사진=LG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구본준 (주)LG 고문이 LG상사, 실리콘웍스, LG하우시스 등 LG그룹 산하 5개사를 중심으로 설립한 신설지주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는다. LG가(家) 전통에 따라 구본준 고문이 희성, LS, LIG 등에 이어 LG그룹에서 분리된 새로운 그룹을 꾸려나가게 됐다. 

(주)LG는 26일 이사회를 열고 LG상사, 실리콘웍스, LG하우시스, LG MMA 등 4개 자회사 출자 부문을 분할해 신규 지주회사인 ‘(주)LG신설지주(가칭)’를 설립하는 분할계획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내년 3월 26일 LG그룹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사분할 승인 절차를 거치면, 5월 1일자로 존속회사 (주)LG와 신설회사 ‘(주)LG신설지주’가 분리된다. 

이에 따라 신설 지주사는 새로운 이사진이 독립경영 체제로 운영한다. 대표이사는 구본준 LG고문과 송치호 LG상사 고문이 맡는다. 

알짜는 장자가(家), 형제는 계열분리후 독립하는 LG 전통 

지난 2018년 구광모 현 LG그룹 대표가 LG그룹의 경영권을 맡은 후 재계에서는 LG가의 전통에 따라 구본준 고문의 계열분리 가능성을 거론됐다.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하는 LG그룹에서 적자가 아닌 형제와 자손들은 주력 계열사를 제외한 사업체를 중심으로 별도 지배구조를 만들어 분가해왔다.

고 구인회 LG 창업주 회장의 동생 고 구철희 씨 자녀들은 1999년 LIG(구 LG화재)를, 구 창업주의 또 다른 동생 구태회·구평회·구두회 씨는 LS그룹으로 분리했다.

2012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연(米壽宴·88세)에 LG그룹 오너 일가가 참석한 모습.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앞줄 맨 왼쪽)과 구본준 LG그룹 고문(뒷줄 왼쪽 두 번째부터), 구광모 LG그룹 대표,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뒷줄 오른쪽 두 번째) 등이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창업주 차남인 고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 자녀들은 2006년 LF(LG패션)를 떼어 독립했다. 창업주 삼남인 구자학 회장은 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2004년에는 창업주의 동업자인 고 허만정 회장의 손자 허창수 GS건설 회장이 정유, 건설 등의 계열사를 가지고 GS그룹으로 독립했다. 창업주 3세대에서는 구자경 회장 차남인 구본능 회장이 희성그룹을 차려 독립했다.

이번 구본준 고문의 독립으로 3세대 계열분리가 끝난 셈이다. 구 고문이 이끌게 될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 등 3개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8조2718억원(개별기준)으로 여기에 실리콘웍스와 LG MMA를 더하면 매출액 기준으로 재계 20위권의 기업이 새롭게 출범하는 셈이다. 이들 회사의 자산은 9133억원, 자본 9108억원, 부채 25억원, 부채비율 0.3%이다. 자산은 구본준 고문이 갖고 있는 (주)LG의 지분가치와 거의 같다. 앞으로 (주)LG의 인적분할과 신설지주 설립과정에서 이 지분이 맞교환될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를 세계 1위로 이끈 용장

구인회 창업주의 손자이자 아버지 고 구자경 회장의 3남인 구본준 고문은 선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그의 둘째 형이다. 

1985년 미국에서 돌아와 금성반도체 부장으로 LG그룹에 들어온 구 고문은 이후 2018년 구본무 회장이 별세할 때까지 LG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거치며 경영에 참여했다.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 전자 등을 거치며 성과를 남겼지만 구 고문의 아픈 손가락은 LG반도체다. 1997년 LG반도체 대표이사였던 구 고문은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의 결정에 따라 반도체 사업을 현대전자에 넘겨야 했다. 이후 현대전자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이 바뀐 후 SK그룹에 인수됐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함께 생산하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감안할 때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을 겪고 있는 LG전자 입장에서 SK로 넘어간 반도체 계열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뼈아픈 기억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구 고문은 2010년 삼성전자와 격차가 벌어지는 시점에서 위기를 타개할 역할을 맡고 LG전자 부회장에 취임했다. 2016년까지 LG전자를 이끈 구 고문은 삼성전자가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며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구 고문은 LG디스플레이를 업계 1위로 이끈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샤프, 도시바 등 일본 기업이 주도하던 LCD 시장에 LG는 1995년 후발주자로 등장했다. 일본 기업이 기술 이전을 거부해 본래 LG반도체 내 LCD사업부가 기술을 연구하던 중 현대전자로 매각되면서 관련 사업을 LG전자가 담당하게 됐다. 

이후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사와 합작회사 LG필립스 LCD를 설립한다. 구본준 고문은 합작법인의 대표이사를 맡아 설립 첫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둔다. 당시 공격적인 투자로 기술력에서 앞섰던 일본 기업을 따라잡았고 결국엔 시장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후 2008년 2월 네덜란드 필립스가 지분매각에 나서면서 같은해 3월 사명을 LG디스플레이로 변경한다. 약 3년 후인  2012년 LG디스플레이는 대형(9.1" 이상) TFT-LCD 패널 시장에서 출하대수 기준 약 29%를 차지하며 세계 1위를 기록했다.

LG전자에서도 공격적 투자...한때 그룹경영 총괄하기도

2010년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취임한 후 구 고문은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줄이고자 ‘강한LG’를 표방하며 “우리는 1등이 돼야 한다”는 목표를 강조했다.

구 고문의 취임전 2010년 LG전자 R&D 투자비용은 2조7000억원 수준이었으나 구 고문이 대표로 재임하던 2014년에는 3조 6000억원까지 늘어났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중이 4.6%에서 6.2%로 높아진 것이다. 

이런 투자에 기반해 OLED TV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고, 전장사업(VS사업본부)에 진출하면서 LG전자의 사업 영역은 넓어졌다. 

이후 2016년에는 LG전자를 떠나 LG화학의 등기이사로 취임했다. 등기이사로서 현재 글로벌 1위로 평가받는 LG화학 배터리 사업부문 운영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선대 구본무 회장이 건강악화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엔 LG그룹 경영을 총괄한 것도 구본준 고문이다. 2018년 5월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고 그해 6월 29일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면서 구 고문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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