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21세기에도 유효한, 오스카 와일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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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21세기에도 유효한, 오스카 와일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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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창조보다 더 창조적이고, 진정한 비평가는 이성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소설가, 극작가, 시대를 거스른 유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는 비평의 태도
19세기에 쓰였으나 21세기인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비평관이 아닐까
워커힐 호텔 더글라스 하우스 부근 산책길에 조성된 '워커힐 - 오스카 와일드 산책길'에서 오스카 와일드 복장의 마임이스트가 독서 퍼포먼스 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워커힐 호텔 더글라스 하우스 부근 산책길에 조성된 '워커힐 - 오스카 와일드 산책길'에서 오스카 와일드 복장의 마임이스트가 독서 퍼포먼스 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평론’ 혹은 ‘비평’을 본격적으로 해 보라 조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전에 픽션 창작을 배우고 싶어서 아카데미와 합평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과 동료들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내게 픽션 창작의 재능이 보이지 않아서 좋은 마음에 권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여러 장르의 평론 혹은 비평을 접해보았다. 문학 비평과 영화 비평은 물론 문화 비평과 방송 비평까지.

읽어 나가기 힘들었다. 모든 문장이 무슨 암호처럼 해독하기 어려우니 전체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였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라캉’이나 ‘들뢰즈’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비평 혹은 평론은 누구를 위한 글일까. 어떤 문장이나 현상을 두고 그렇게 장황하게 해석하면 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내게 비평과 평론은 읽는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도전하고픈 의지가 생기지도 않는 그저 그들만의, 비평가 혹은 평론가만의 세계였다.

지난주 서점에서 매혹적인 책을 만났다. 옅은 붉은색 책 표지에 흑백으로 대비된 남성이 서 있는 책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오스카 와일드’이고 제목은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였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비평론’이었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바다출판사 펴냄.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바다출판사 펴냄.

자신의 예술 비평관을 희곡 형식으로 풀어낸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와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며 소설가, 그리고 극작가이다.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희곡 ‘살로메’, 동화 ‘행복한 왕자’ 등으로 잘 알려진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살아온 유미주의자다.

오스카 와일드는 또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를 통해 비평가로서의 존재도 각인시켰다. 이 책의 글들은 1891년에 나온 그의 유일한 비평집 <인텐션>에 실렸는데, 음악, 회화, 미술, 문학 등 그리스 시대부터 발전해 온 예술 장르에 대한 비평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학 비평에 대한 통찰이 집약되어 있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의 가장 큰 특징은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예술 비평관을 희곡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본문 시작 전에 ‘인물’과 ‘배경’부터 소개한다. 그래서인지 1부와 2부로 나뉜 이 책은 2막으로 구성된 연극이 떠올랐다. 2명의 남성이 등장하는.

이 두 명의 등장인물, ‘길버트’와 ‘어니스트’는 비평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길버트’는 비평이 없으면 창작도 없다고 보고 ‘어니스트’는 비평을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본다.

어니스트: 비평가는 무엇보다 공정해야겠지?
길버트:사람은 선호하는 것이 생기면 공정해질 수 없다네. 예술은 미묘한 느낌과 예민한 순간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편파적이지 않은 의견은 가치가 없지.
어니스트: 그렇다면 비평가는 이성적이겠지?
길버트 :유감스럽게도 예술은 보고 듣는 이에게 ‘신성한 광기’를 선사하지.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데 제정신인 것은 하나도 없어. (121~121쪽)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의 분신일 길버트는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 등 거의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고 어니스트는 장황해질 수도 있는 대화의 맥을 잡는다. 길버트의 입을 빌려 오스카 와일드가 하려는 일은 “비평을 예술과 동등한 위상”으로 올려놓는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비평이 예술에 종속된 활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 사진=위키피디아

비평 정신 있어야 ‘집단적 삶’ 이해할 수 있을 것

길버트의 입을 빌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는 좋은 비평가는 단지 예술작품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해설자가 아니다. 개별적인 작품을 넘어 그것이 품은 ‘아름다움 자체’를 비평하고, 예술가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빈 곳으로 남겨둔 곳에 ‘경이로움’을 가득 채우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새로운 조건과 재료’로,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작품과 다른 형태’로 작품에 없는 부분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비평 정신을 진정한 삶의 이상과 연결한다.

"(중략) 비평가란 생각의 높은 탑에서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사람, 섬세한 비평 정신으로 자신의 영혼을 더듬으며 자기완성을, 자기계몽을 끊임없이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9쪽)

길버트에 따르면 비평 정신은 “우리가 ‘행동(doing)’이 아니라 ‘존재(being)’에 목적을 둔 삶, 나아가 ‘되어가기(becoming)’에 목적을 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곧 ‘사색하는 삶’을 말한다. 사색하는 삶은 창조하는 삶보다 훨씬 더 넓은 시야를 선물한다고.

또한, 자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타인과 타인의 모든 감정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비평 정신이 있어야만 인류는 개인을 넘어 ‘집단적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태어난 시대를 떠나 다른 시대로 들어갈 수 있으며, 자신이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인식하는 ‘세계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따라서 길버트에게 비평 정신은 인류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자기의식’이자 ‘세계관’인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비평가’는 읽어 나가기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소네트 선율,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셰익스피어, 시인 존 밀턴까지.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예술 장르나 작품, 작가를 해석하지 않는다. 비평가가 가져야 할 ‘기질’과 ‘태도’, 그리고 비평 정신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면들이 19세기에 쓰인 비평관이지만 내게 여러 가지로 성찰을 준 것 같다. 특히 비평에 더욱 관심을 가지라는 좋은 자극을 주었다. 물론 이 책 한 권이 비평가를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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