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도전과 응전] ①누가 한국 반도체산업을 위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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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도전과 응전] ①누가 한국 반도체산업을 위협하나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0.11.22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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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 "D램은 여전히 우위...낸드는 지켜봐야"
마이크론, 낸드분야 176단 양산 성공했지만, 시장 점유율 변화는 두고봐야
D램 기술력, 중국과는 5년 - 미국과는 반년.. 그러나 EUV에서 한국 우위
미국 제재로 EUV 못쓰는 중국..."한국과의 기술격차, 더 커질 것"
미국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출시해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추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진=중국 CXMT사
미국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출시해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추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진=중국 CXMT사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미국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출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한국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성급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마이크론의 성과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국 반도체의 위상을 흔들만한 큰 사건일까.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반도체 분야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다. D램(RAM)은 데이터를 임시로 저장하는 반도체다. 기술 고도화로 점차 작은 D램 칩에 고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하다보니 내부 구조가 낸드 플래시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자료가 그대로 남아 데이터의 저장과 삭제가 자유로운 반도체다. 

시장 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42.1%로 1위인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30.2%로 2위를 차지했다. 

낸드 플래시는 삼성전자가 33.8%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키옥시아(17.25%), 웨스턴디지털(11.5%), SK하이닉스(11.7%), 인텔(11.5%), 마이크론테크놀로지(11.5%) 등 5개 업체가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D램은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의 72.3%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가 인수키로 한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포함하면, 낸드 플래시도 한국 기업 점유율이 56.6%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마이크론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여전히 한국은 메모리 사업의 강자다. 

메모리 강국 만든 삼성의 '초격차' 전략

“초격차란 다른 누군가와 비교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술은 물론 조직, 시스템, 공정, 인재 배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게 격을 높이는 것입니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부회장)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의 입지는 삼성전자에서 시작됐다. 권 부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초격차를 삼성전자의 경영전략으로 내세웠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후발 주자와의 기술 격차를 확대해 추격 의지를 상실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초격차 전략 아래 삼성전자는 2020년 기준 D램 부문 29년연속, 낸드 플래시 부문 18년 연속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이크론사가 지난 12일 176단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공개하기 전까지 관련 기술을 선도한 것 역시 삼성전자다. 낸드 플래시에 단을 쌓는 ‘적층’기술을 적용한 것도 삼성이 시작이었다. 2013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4단 수직 구조인 ‘V낸드’를 선보였다. 이후 128단에 이르기까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관련 기술을 주도했다. 

다만 낸드 플래시는 기술 난이도가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진입 장벽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만큼 경쟁 업체도 많았고 그동안 기술을 주도해 온 한국 업체들과 후발 업체간의 기술 격차도 점차 축소되는 상황이었다. 

마이크론, 한국에 얼마나 앞선 것일까  

시장에서는 마이크론 등 미국 업체보다는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일어섬)에 나선 중국 업체 추격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기술 자립도 70%를 목표로 정부 예산 1조 위안(한화 약 170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기술 자립도 70%를 목표로 정부 예산 1조 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그래픽=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기술 자립도 70%를 목표로 정부 예산 1조 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그래픽=연합뉴스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가 지난 4월 128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며 ‘X2-6070’ 샘플을 공개한 것이다. 제품 개발과 양산에는 시차가 있다. (마이크론은 176단 낸드 플래시 제품을 공개하며 ‘양산에 성공했다’고 표현했다.) YMTC는 연말에는 128단 제품 양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국과 한국의 낸드 플래시 기술격차는 1년 이내로 좁혀진 것이다. 

마이크론이 176단 낸드 플래시 개발 성공을 선언하기 전까지 128단은 최고 층수였다. 낸드 플래시는 ‘적층’수가 높을 수록 용량이 많아지고 제품 효율은 높아진다. 용량이 늘어나면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어 관련 제품군 수요도 늘어난다. 

128단 낸드를 세계 최초로 양산한 건 SK하이닉스였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6월 양산을 시작했고 두달 뒤 삼성전자 역시 128단 낸드 양산에 돌입했다. 

그러나 외신과 업계 관계자들은 마이크론의 176단 낸드 플래시와 관련해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술에서 한국 기업을 추월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생산공정과 수율 등에 있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낸드 플래시 기술의 핵심은 저장공간을 높게 쌓은 뒤 전류가 흐르는 구멍(hole)을 한 번에 뚫는 ‘싱글스택(Single stack)’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128단 낸드플래시에도 싱글스택을 적용했다. SK하이닉스는 128단 최초 양산시 더블 스택을 적용했다. 100층 빌딩을 지을 때 한 번에 쌓아 올리기 않고 50층씩 두개를 연이어 쌓은 셈이다. 싱글스택은 더블스택보다 회로가 간단해 속도가 빠르다. 생산공정도 간단하다. 성능은 높은데 생산비용은 덜 드는 것이다. 

포브스는 마이크론의 176단 낸드 출시를 전하면서 "마이크론 관계자가 176단 낸드가 88단을 두번 쌓은 '더블스택'이라고 언급했다"고 밝혔다. 영미권 전자 전문지 아난드테크(anandtech), 익스트림 테크(Extreme Tech), 퍼드질라(fudzilla) 등은 모두 마이크론 사의 176단 낸드플래시가 "88단을 두번 쌓은 제품"이라고 분석하며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마이크론은 이전 세대인 128단 낸드플래시에도 더블스택을 적용했다. 삼성전자 또한 128단 이후 낸드 플래시에 더블스택 적용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낸드 메모리 시장 지켜봐야

한편 업계에서는 ‘공정 안정화’에도 주목한다. 한 국내 업체 관계자는 “생산 원가와 기간에 있어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제품 출시와 양산이 가능하다”며 “128단을 최적화한 국내 업체들과 비교해 가격대비 성능에서 앞설 수 있는지는 시장의 반응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정 안정화가 늦어지면 제품 출시 역시 밀릴 수밖에 없다. 

주요 기업의 낸드플래시 기술 발전 예상도.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차세대 낸드 플래시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176단 등 고층 적층이 낸드 플래시가 나아가는 방향성은 맞다”며 “다만 아직 176단 낸드가 시장에 나온 제품이 아니다보니 국내 업체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긴 이르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176단 낸드 플래시에 대해 “기술개발 보다는 수율과 공정단계 등이 더 중요할 수 있기에 섣부른 판단을 하긴 어렵다”고 답했다. 수율이란 전체 생산에서 불량품을 제외한 제품 출하가 가능한 고품질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반도체 공정 특성상 생산라인을 24시간 365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수율이 낮으면 생산할 수록 손해가 쌓인다.  

성능이 좋아도 공정과정과 수율에 따라 생산비율이나 기간이 경쟁사의 이전 세대 제품 또는 추후 등장할 동일 세대 제품과 비교해 시장 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D램 기술격차 중국은 5년, 미국은 반년

D램에선 여전히 한국 기업이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6일 세계 최초로 DDR5 D램(10나노 2세대)을 출시했다. 이전 세대 D램에 비해 전송속도는 1.8배 빨라지고 전력 소모는 20% 줄었다. 삼성전자는 내년 하반기 DDR5제품 출시를 준비중이라고 알려졌다. 

DDR5의 이전 세대인 DDR4 D램에서는 현재 D램 제조 3사 (삼성전자, SK하아닉스, 마이크론)가 모두 10나노 공정에서 3세대에 접어들었다. 업계에서는 3사가 모두 3세대 공정에 들어서면서 1위 삼성전자와 3위 마이크론의 기술격차는 6개월로 줄었다고 평가한다. 

10나노미터 급 D램 기술이 3세대에 접어들면서 기존 기술로 회로폭을 줄이는 게 물리적으로 더이상 어렵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래서 주목 받는 것이 반도체 미세 공정의 핵심인 'EUV'(극자외선) 공정이다. EUV 노광 기술은 극자외선 광원으로 웨이퍼 위에 반도체 미세 회로를 새기는 기술이다. EUV공정을 D램 생산에 적용하는 게 앞으로의 중요한 승부처다. 10나노미터 이하로 반도체 공정이 초미세화 되면서 EUV 공정의 도입으로 반도체 성능과 생산 원가 경쟁력 확보가 가능해진 것이다. 

차세대 D램 기술 승부처는 EUV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업계 최초로 EUV 공정을 D램 양산에 적용했다. 4세대 10나노 공정부터는 EUV를 적용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반도체 미세공정의 물리적 한계라 평가받던 3세대를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주요 기업 D램 공정개발 현황.

SK하이닉스도 EUV 공정 적용을 준비 중이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4일 3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에서 "이천  M16 팹에 EUV 전용 클린룸 공간이 마련됐다”며 “장비도 스케줄대로 입고될 예정이고 현재 4세대 10나노(1a) D램부터 적용해 생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UV노광 장비(반도체 웨이퍼에 미세 회로를 새겨 넣는 장비)는 네덜란드 ASML사가 독점 생산한다. 대당 가격이 1500억~2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생산량이 수십대 수준이라 대만의 TSMC, 삼성전자 등 반도체 생산기업의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네덜란드 출장길에 올라 ASML사를 방문한 것도 EUV 장비 수주를 위한 것이란 분석이 중론이다. 

미국 마이크론사도 D램 생산에 EUV장비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장비에 따라 도입에서 생산 최적화까지 길게는 5~6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간 생산효율화와 향후 기술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3세대 이후에는 기존의 방식으로 미세화를 진행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업계의 분석이 맞다면 D램 분야 향후의 기술경쟁에서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가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EUV 도입 못하는 중국..."기술격차 커질 것"

한 국내 업계 관계자는 “EUV 공정을 적용해 수율을 높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관련 기술을 적용할 경우 전력 효율 등을 통해 반도체 성능이 좋아지는데 생산 원가는 감소하기 때문에 시장점유율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반도체굴기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D램 기술을 추격중인 중국 업체들은 EUV 노광기 자체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으면서 중국 D램 생산업체들이 EUV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UV를 도입하는 4세대 10나노 이전에도 중국과 한국 기업과의 기술 격차는 5년 정도로 평가받았다. D램은 낸드플래시에 비해 구조가 복잡해 기술 축적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욱이 EUV 공정을 D램 생산에 적용해 공정 안정화로 수율을 최적화하는 시간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 기업이 EUV노광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술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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