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사유리가 열어젖힌 ‘비혼 출산’이라는 공론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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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사유리가 열어젖힌 ‘비혼 출산’이라는 공론의 장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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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를 투영하고 반영하는 드라마
때론 '세대 담론'으로, 때론 '젠더 담론'으로 세상의 진화를 꿈꾼다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표현입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려합니다. 제작자나 당사자의 뜻과 다른 '오진' 같은 비평일 수도 있어 양해를 구하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드라마는 시대를 투영한다. 케이블에서 예전 드라마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감상이다. 특히 ‘전원일기’를 볼 때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한때 당연하게 생각했을 가부장적 설정이 낯설기만 하다. 어른과 아랫사람의 경계가 확실하고 남자와 여자의 할 일이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던 그때 그 시절 모습이라니. 물론 배경이 농촌이 아닌 도시로 넘어와도 가부장적이긴 마찬가지다.

‘가부장’은 어른 중심으로 도는 세상의 가치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1990년대 혹은 2000년대에는 이런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위해 희생하거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인물로 그리는 드라마가 많다. 젊은이들도 그런 어른들을 존중하고 본받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런 드라마에서는 결혼도 나이가 차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그린다. 특히 여성은 남성과 결혼해서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자연의 순리로,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도 결혼한 여성의 당연한 의무로 그려낸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런 변화가 드라마에도 투영된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드라마에만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듯한 그런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는다. 그런 드라마들에서 어른들 혹은 기성세대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젊은이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OCN 드라마 ‘써치’의 ‘이혁’은 욕망의 화신이다. 사진=OCN
OCN 드라마 ‘써치’의 ‘이혁’은 욕망의 화신이다. 사진=OCN

드라마, 세대 담론을 담다

2019년 서점계를 강타한 책 중 하나가 ‘90년생이 온다’이다. 젊은 세대 관점에서 ‘세대 담론’을 담았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아마 올해에도 주목받았을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1990년대 생들은 ‘공무원 시험’ 세대이다. 취업준비생 10명중 4명이 '공시족'이라는 현실을 비유했다. 성장 과정에서 IMF와 국제 금융 위기를 겪는 부모 세대를 목격한 학습효과이다.

또한, 이 책은 젊은 세대가 ‘공정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한다고 밝힌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하는 기성세대는 아랫세대에게 자기 자리를 넘기기는커녕 그들의 기회까지 빼앗는 공정하지 못한 그저 나이 많은 욕망 덩어리일 뿐이다. 이런 인식이 요즘 드라마에도 투영되어 있다.

지난주에 종영한 OCN 드라마 ‘써치’에 그런 기성세대가 나온다. 극중 국회 국방위원장이며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이혁(유성주 분)은 욕망의 화신이다. 군인이었던 그는 1997년 DMZ에서 북한과 교전 중 다리를 잃은 영웅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혁이 교전으로 위장해서 동료들을 사살한 거였다.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현역 군인들을 그 증거 인멸을 위한 작전에 동원한다. 군인인 자기 아들도 감시역으로 투입한다.

여기서 이혁은 자신의 권력을 악용해 젊은 세대들을 이용하고 짓밟는 나쁜 기성세대의 표본으로 그려진다. 자기의 목표를 위해서는 젊은 군인들은 물론 아들의 미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 자기의 과거 악행이 담긴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 작전에 투입한 군인들을 모두 죽이려고까지 한다. 물론 스릴러 장르를 위한 극적 장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들을 힘든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게 기성세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도 한다.

tvN 드라마 ‘스타트업’의 원두정은 갑질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tvN
tvN 드라마 ‘스타트업’의 원두정은 갑질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tvN

tvN 드라마 ‘스타트업’에는 현실에서 누군가 겪었을 법한 기성세대가 나온다. 극 중 재벌 회장 원두정(엄효섭 분)은 갑질의 진수를 보여준다. 자상함과 배려심 있는 듯한 모습과 달리 그는 천박한 사업가일 뿐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그는 그 힘으로 자녀들과 젊은 세대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스타트업을 창업한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모습이지만 실상은 단순 하청으로 쓰려는 의도가 있다.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한 청춘들이 많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투자받을 거라는 희망으로 이런저런 부당한 요구를 감내하지만 끝내는 하도급에 머물고 마는, 때론 기술까지 빼앗기고 마는 그런 청춘들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스타트업’과 ‘써치’는 이렇듯 돈과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가 어떻게 젊은 세대의 앞길을 막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는 ‘90년생이 온다’가 이야기하는 세대 담론에서 청춘들이 어른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를 투영한 드라마들이다.

‘비혼모’라는 화두를 우리나라에 던진 ‘사유리’. 사진= 사유리 SNS
‘비혼모’라는 화두를 우리나라에 던진 ‘사유리’. 사진= 사유리 SNS

드라마, 젠더 담론을 담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세대 담론뿐 아니라 젠더 담론을 담는 때도 많다. 남성은 이래야 하고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특히 여성에게 남성과 결혼해야 완전한 인간이 된다는 서사를 강요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다루더라도 비혼도 하나의 선택지로 다루는 등 조금은 달라진 세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출산은 어떨까. 만약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갖는다면 커다란 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가족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 여성을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아마도 죄인 바라보듯 하지 않을까.

그런데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에는 ‘결혼을 해서 출산을 해야만 엄마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캐릭터가 나온다. 극 중 이루다(최리 분)는 미혼모다. 사정이 있는 미혼모(未婚母)가 아닌 본인이 자발적으로 비혼모(非婚母)를 선택한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다른 여성들은 이런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결혼과 여성, 출산과 여성, 육아와 여성에 관한 ‘이루다’의 똑 부러진 주장을 듣는 순간 수긍을 한다. 하지만 거리감도 느낀다. 물론 ‘이루다’는 드라마를 극적으로 끌어가려는 캐릭터이겠지만 요즘 세태의 한 단면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드라마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실제로 결혼하지 않고 엄마가 된 방송인이 있다. 방송인 ‘사유리’는 얼마 전 남자아이를 낳았다. 결혼하지 않은 그녀는 고향인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고 출산을 했다.

이 사연은 ‘비혼 출산’뿐 아니라 ‘비혼 여성에 대한 정자 기증과 출산’이라는 이슈도 제공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남편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생명윤리법’에 나와 있다. 그러므로 비혼 여성에게 정자 기증은 불법이다. 사유리가 일본에서 시술받은 이유다.

드라마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자연인 사유리가 선택한 비혼모는 아직은 우리나라 정서상 맞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화두를 던지고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방송인이 선택하는 현실에서 대중의 반응은 응원이 우세하다. 그동안 비혼 임신과 출산을 범죄시했던 세태를 꼬집는 의견들이 SNS를 달구고도 있다. 물론 이런 뜨거운 이슈에 이름을 살짝 얹은 정치인들도 나오고 있고.

아무튼, 그동안 여성 운동계와 일부 정치인들이 요구해온 일들이 한 방송인의 실천으로 공론의 장을 열게 되었다. 그만큼 대중예술과 그 종사자들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영향력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도화선이 되어 ‘사유리 모자’ 같은 엄마들과 아이들을 색안경 끼지 않고 바라보는 우리나라가 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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