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사유리가 쏘아 올린 공, 비혼모...이젠 공론화할 때
상태바
[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사유리가 쏘아 올린 공, 비혼모...이젠 공론화할 때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0.11.18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피니언뉴스=권상희 문화평론가]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아이는 있었으면 좋겠어”

심각한 얼굴로 어렵게 입을 뗀 지인의 말에 한숨부터 쉬던 기억이 난다. 굳이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고생문 보장된 판타지라는 생각에 대답 대신 보였던 리액션이었다.

대체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며, 직장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무슨 수로 감당할건지 상상이나 해보고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싶어 그 철없음에 낯빛이 굳어졌다. 우리나라는 힘들테니 이민은 어떨까 싶다는 그녀에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이가 너무 좋다며, 낳으면 잘 키울 자신 있다는 말에 제발이지 무모한 용기 부리지 말라는 한마디로 타인의 인생에 너무도 쉽게 노(NO)라는 답을 내렸다. 월권이었다. 열린 사고를 지향한다지만 비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내 사고방식은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었던 오래 전과 지금, 차이점이 있다면 무조건적인 반대는 하지 않겠다는 거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이제 이는 수용의 문제로 보는 것이 옳다.

비혼 트렌드인 시대에 ‘비혼모’는 인정하지 않는 사회

차별적인 시선은 ‘수용’을 가로막는 기제가 된다. 아빠와 엄마로 이루어진 가정이어야 ‘정상’으로 인정받는 곳에서 홀로 엄마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은 그 자체로 ‘비정상’인 셈이다. 그러니 한부모 가정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아웃사이더가 되는 상황을 감수해야만 한다. 허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출산소식을 당당하게 전한 방송인 사유리의 모습은 실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에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했고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이고 싶어 그 사실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비혼모에 대한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도 전했다. 그것은 그녀가 일본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2000년대 초반 관련 규정이 느슨한 탓에 미혼여성이 정자를 제공받아 비혼모가 되는 일이 가능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 이후로 모자보건법과 생명윤리법이 강화되면서 임신을 위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때 남편은 무정자증 혹은 심한 유전질환 등이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 법적인 남편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자발적 비혼모는 불법이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경우, 정자 기증에 특별한 기준은 없다. 미혼 여성이나 사실혼 커플, 동성 부부에게까지 그 문이 열려있다. 프랑스의 비혼 출산 비율은 무려 60%(2016년 OECD 자료) 에 달한다. 오히려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이들보다 훨씬 많은 셈이다. 

비혼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시대에 비혼모는 인정하지 않는 법적 장치, 인구절벽을 고민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각종 정책들에 쏟아붓는 막대한 비용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방송인 사유리씨는 '자발적 비혼모'가 된 사실을 알려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다. 사진=유튜브 'KBS뉴스' 영상캡처

‘자발적 비혼모’ 공론화의 장을 열어야 할 때

“한국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난임 지원이나 정자 기증을 받는 게 안 되는 나라, 한국은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면 안 되는 나라, (중략) 한국은 제도 안으로 진입한 여성만 임신, 출산에 대한 합법적 지원이 가능한 나라”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가 SNS에 올린 글 중 일부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법적 부부의 출산만이 유효하다는 건 기존의 가족형태 외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인가. 낙태에 대한 권리와 출산에 대한 권리에 온전히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존재하는가.

여전히 법적 논리가 그 결정권 우위에 선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현실, 합법과 불법이라는 이중 잣대 속에 이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그러니 이와 연관된 사회적 편견은 뿌리 깊을 수밖에 없다.

사유리가 쏘아 올린 공, 자발적 비혼모에 대해 이제라도 공론화의 장을 열 필요가 있다. 어떤 정책으로도 결혼과 출산을 삶의 한 과정으로 여겼던 그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사회, 그럼에도 저출산을 걱정하며 비혼 여성의 낳을 권리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져서야 되겠는가.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