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의 과학과 철학] 인생의 길, 결정론일까 자유의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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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의 과학과 철학] 인생의 길, 결정론일까 자유의지일까
  •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 승인 2020.11.1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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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고전역학이후, 과학이 결정론 편인 것처럼 보이게 해
과학은 '인간의 자유의지' 옹호하는 쪽...뇌가 자유의지를 구사해
자유의지는 미래를 고려하는 선택 능력...미래를 알고싶다면 자유의지를 행사하라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4년 전 우리 마을에 무속인이 이사를 왔다. 계룡산 기운을 받았던 도사들이 연구단지가 조성되기면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사업이나 진로 선택을 앞둔 분들이 주 고객이라고 했다. 미신이 퍼지지 않도록 누군가가 나서야 했지만 무속인의 저주를 두려워하여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당시 마을 대표를 맡았던 아내가 나섰다. 아내는 주민 서명을 받아 구청을 찾아갔지만 종교 활동을 금지할 근거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무속인의 점괘를 믿을 수가 있을까?  이 질문으로 결정론자와 자유의지론자를 구분할 수 있다. 결정론자는 생년월일 등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고 보고, 자유의지론자는 개인 노력과 결단에 따라 미래가 변한다고 본다. 간혹 이 둘을 모두 지지하는 양립론자도 있다. 인간은 과학과 철학을 진보시켰지만 결정론이 맞는지, 자유의지가 맞는지는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대체로 자유의지가 있다고 보지만 결정론이 틀렸다는 반증을 대지 못한다.

일상생활에서 결정론적 현상은 흔하다. 해는 동쪽에서 뜨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 이를 보고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믿었고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들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결정론의 극단은 초기 조건을 삶과 연관시키는 태도이다. 다시 말해 동양은 생일에 근거하여, 서양은 별자리에 근거하여 운세까지 추정한다. 동양의 역경과 서양의 점성술은 이 활동의 흔적이다. 생애 운세뿐만 아니라 국가에 배속된 점술가들은 가뭄이 들거나 전쟁을 앞두고 점을 보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운명을 개척하려 손금을 칼로 그리기도 했다.

자유의지 옹호자도 결정론자 못지않게 많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우리 삶은 자유의지의 연속이다. 엿장수의 가위질 횟수도 자신 맘에 달렸다. 중세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근원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설명한다. 신이 우주를 선하게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만은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주장이다. 자유의지로 선하게 행동하지만 악한 행동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신은 인간의 악한 행동을 저지할 수 있지만 이는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원칙에 반하므로 침묵한다.

결정론은 17세기 뉴턴이 천체의 운동과 떨어지는 사과를 관찰하여 고전역학을 발견하자 더욱 힘을 얻는다. 돌의 현재 상태를 알면 고전역학은 날아가는 포물선 궤적을 알려준다. 고전역학으로 역사 상의 일식 월식 기록을 검증할 수 있었고 향후 몇천 년의 일식 월식 발생 시각도 예측 가능하다. 20세기 초 결정론을 약화시킨다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나왔지만 이 해석은 잘못이다. 고전 역학은 선으로 그려지는 궤도를 알려주고, 양자역학은 점으로 흩어진 분포도를 보여준다는 측면으로 보면 둘 다 결정론을 옹호하는 역학이다. 더구나 양자역학은 미시세계를 다루므로 거시 세계와 관련 있는 자유의지를 지지하기 어렵다.

직관적으로 자유의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원리적으로 파고들면 결정론을 당해내기 어렵다. 정말 과학은 결정론을 옹호하며 자유의지를 거부하는가? 철든 과학자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고전 역학과 양자역학을 만족시키면서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있다.

생물의 진화라는 결정론으로 만들어진 뇌는 자유의지를 갖게 하는 원천이 된다.
생물의 진화라는 결정론으로 만들어진 뇌는 자유의지를 갖게 하는 원천이 된다.

과학은 '결정론'을 옹호하는 학문일까

설명의 핵심은 하나의 입자가 아니라 다수의 입자로 이뤄진 복합체에 있다. 세포와 그 세포로 구성된 생물은 1조 개의 원자로 구성된다. 복합체도 고전역학이 적용되지만 그 해를 풀기는 어렵다. 사랑에도 짝사랑보다 삼각관계가 풀기 어렵다. 복합체에는 고전역학을 확장한 통계역학을 적용해야 한다. 이 통계역학을 적용하면 단일 입자에서 없었던 복합계의 온도나 자유의지가 발현된다.

고전역학에서 통계역학으로의 전환을 구체적 숫자로 설명하여 보자. 1개의 원자는 3차원 공간을 운동하므로 3개의 자유도를 가진다.  2개의 원자는 3차원 공간을 각각 운동하므로 2×3인 6개의 자유도를 가진다. 1조 개의 원자로 구성된 복합체는 3조 개의 자유도를 가진다. 문제는 이렇게 자유도가 많으면 통일된 행위를 보일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따라서 복합체는 개별 원자의 자유를 제한하여 일사불란한 행동을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복합체의 자유 의지로 나타난다. 이는 마치 개인이 모여 국가를 만들면 법이 제정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모든 개인이 법을 준수해야 하듯이 모든 원자는 자유의지를 따라야 한다. 뇌가 새롭게 나타난 자유의지를 관장한다.

만일 통계역학으로 유도된 자유의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면 진화론에 따른 뇌의 발생으로 이해해도 상관없다. 뇌의 출현은 우주에서 신기한 현상이지만 과학을 위배하는 현상은 아니다. 즉 뇌는 과학의 결정론을 충족시키면서 태어난 기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결정론으로 만들어진 뇌는 오히려 자유의지를 구사한다.

독자는 이쯤 되면 자유의지를 왜곡한 양립론이 아닌지 의심을 할 것이다. 자유의지는 미래를 향하여 다양한 경로 중에 한 경로를 선택하는 능력이다. 짜장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선택하는 일도 자유의지이다. 전개될 미래에 선택이 미칠 영향을 자유의지는 고려한다. 반면에 결정론은 과거의 관성에 따라 미래를 결정한다. 어떤 결정에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분은 결정론적으로 행동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에게 상황을 인지하는 오감이 있다는 점은 관성대로 행동하지 말라는 이유이다. 결정론적으로 살아야 한다면 눈코귀입이 있을 이유가 없다.

자유의지는 인간만의 특권이 아니다. 인공지능인 알파고나 첨단 제어설비는 미래를 대비하여 최적의 경로를 선택하는 자유의지가 있다. 자율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첨단 기기의 자유의지는 한 영역에 특화되어 있지만 전문가의 작품이므로 보통 인간보다 뛰어날 수가 있다.

봄에 남양에서 날아와서 부화하는 제비와 다르게,  추워지면 굴속으로 들어가는 곰과 다르게 인간에게는 생일이나 별자리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대신에 인간에게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부여되어 있다. 먹는 밥에서 자유의지의 에너지가 생겨난다.

우리 마을 무속인은 1년 전에 나갔다. 비협조적인 주민 탓이라는 분도 있고 마을 진입로에 새로 설치된 CCTV  탓이라는 분도 있다. 미래를 은밀히 알고 싶다면 무속인을 찾기보다는 지식을 찾으라. 그리고 자유의지를 행사하라.

 

●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 연구원은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 거쳐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크로의 과학사냥'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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