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혁신기업]② 러스트벨트 흥망성쇠의 주인공, 포드와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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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혁신기업]② 러스트벨트 흥망성쇠의 주인공, 포드와 GM
  • 이영원 미래에셋대우 이사
  • 승인 2020.11.18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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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원 미래에셋대우 이사]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곳은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니아, 소위 러스트 벨트의 핵심 3개 주였다.

이 3개 주에서 민주당의 바이든이 승리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을 꺾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3개 주는 지난 4년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러스트 벨트, 즉 녹슨 지역. 미국 내에서 낙후되고 인구가 줄어들며 도심 슬럼화가 극심하게 진행된 지역이며 우울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 곳이 미국 정치지형을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지역이 과거에도 지금처럼 낙후된 지역은 아니었다. 1970~1980년대 제조업 경쟁력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 그리고 중국에 차례로 뒤처지며 이들 지역의 핵심 산업이었던 철강, 자동차 등 산업기반이 퇴조한 결과가 현재의 러스트 벨트 이기 때문이다.

특히 포드와 GM, 그리고 크라이슬러까지 빅3 자동차 회사가 직선거리 20km내에 포진하고 있는 미시건주 디트로이트는 그 부침의 역사가 뚜렷하다. 대공황 이전, 미국이 가장 뜨겁게 끓어오르던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에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심장이었다. 그 중에서도 포드의 약진은 눈부셨다.

자동차 산업의 한획을 그었던 포드

잘 알려진 것처럼 헨리 포드에 의해 설립된 포드자동차는 1908년 그 유명한 모델T 를 내놓으며 자동차 산업의 한 획을 그었다. 튼튼하고 합리적이었던 모델T가 1913년 일관 생산체제를 도입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대량생산에 따른 가격 인하로 누구든 탈 수 있는 자동차 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1913년 일관생산체제 도입 전 모델T의 일년 생산량은 7만대를 넘지 못했지만 1914년 20만대를 넘기고, 1923년에는 연간 200만대에 달했다. 모델T는 단종될 때까지 1500만대 이상 생산되었으며, 최초 판매가 850달러에서 290달러까지 판매가격을 떨어뜨렸다.

‘일당 5달러’라는 정책도 획기적이었다. 당시 노동자 평균 임금이 일당 2.5달러 미만이었던 상황에서 파격적인 임금을 제시했는데, 숙련공의 안정적인 관리 등 생산 측면의 이점은 물론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중산층을 대거 양산해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는 헨리 포드의 바람을 이룰 수 있었다.

일관생산체제의 도입, 표준화된 제품의 생산,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며 중산층을 양산해 시장을 풍성하게 하는 혁신이 모델T의 생산, 판매를 통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포드자동차의 독주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1921년 100만대를 넘긴 판매량으로 시장 점유율 60%의 정점을 기록한 이후 1925년에는 50%를 하회했고, 1930년대에 들어서면 점유율 1위 자리도 내주게 된다. 대신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기업은 GM이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러스트벨트중 하나인 미국 미시간주 워런의 전미자동차노조(UAW) 1지구 본부에서 포드와 GM 자동차를 배경으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후발주자 GM이 앞서 나간 요소들

1908년 뷰익을 자회사로 둔 GM이라는 지주사가 처음 설립된 이후 1909년까지 올스모빌, 캐딜락, 엘모어, 오클랜드(나중에 폰티악으로 계승) 등 여러 회사를 인수, 덩치를 키우게 된다.

처음 회사를 설립했던 윌리엄 듀런트(Willian C. Durant)가 1916년 쉐보레까지 GM에 합류시키고 난 이후 GM의 경영을 책임 진 알프레드 슬로언(Alfred P. Sloan) 체제하에서 GM은 획기적인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다.

GM이 포드를 앞설 수 있었던 무기는 “Annual Styling Changes(연식 변경)”전략과 다양한 모델 전략이다. 지금은 일반화된 연식 변경을 최초로 도입해 새로운 소비를 이끌어내고 의도된 진부화로 변화를 꾀했다.

여기에 GM 산하의 여러 자동차 브랜드를 가격을 기준으로 보급형에서 고급형까지, 쉐보레, 폰티악, 올스모빌, 뷰익, 캐딜락의 차별화를 구축해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에 대응했다. GM이 다양한 브랜드와 해마다 바뀌는 연식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때, 포드의 전략은 일관되게 모델T 였다. 포드는 단일 모델로 가장 저렴하고 튼튼하고 조작과 수리가 편한 차를 공급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심지어 차량의 색상도 검정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합리적 가격의 저렴하고 튼튼한 제품도 중요하지만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다양한 소비자의 이해를 반영한 것은 GM이었던 것이다. 고급차의 상징이 된 캐딜락, 스포츠 감성을 강조한 폰티악, 대중적인 쉐보레처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판매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GM의 혁신이었다.

1920년대를 지나 1930년 이후 시장점유율을 앞서가기 시작한 GM은 이후 미국 시장내 점유율에서 포드에 단 한차례도 뒤집히지 않는 우위를 유지한다.

외부의 도전에 나가 떨어진 러스트벨트

물론 포드와 GM의 혁신과 전성기는 1970년대 이후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린다. 일본 자동차의 강력한 경쟁력에 직면하고 유럽산 자동차에게 고급차 시장을 내주고, 한국 자동차 등 새로운 경쟁자까지 마주하게 되면서 시장 점유율을 잃어가게 된 것이다.

굳건한 중산층을 구축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져가면서 미국이 주요 산업지역이었던 미시건,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등이 러스트벨트로 변모해갔다.

포드와 GM의 역사를 통해 혁신이 기업의 성장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에도 자기 혁신을 이어가지 못하고 안주할 때,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점유율을 잃게 되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시대를 지나 전기차, 수소차의 시대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혁신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기업이 어디가 될 것인지, 한국 기업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이영원 이사는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에서 리서치 업무를 시작해 프루덴셜투자증권, 현대차투자증권에서 투자전략을 담당했다. 미래에셋대우에 합류한 이후 해외주식 분석업무를 시작, 현재 글로벌 주식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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