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재정정책, 자금조달보다 운용이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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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재정정책, 자금조달보다 운용이 훨씬 중요하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0.11.1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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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국채시장 역량강화 대책' 유감
개인에 국채 팔려는 발상 잘못된 것...해외도 시도하지 않아
국채'바이백'은 바보짓...고소득자에게 가산금리 혜택주는 꼴
영구채 발행 통해 재정조달 여유 만들고 한국 경제의 자신감 보이자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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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코로나19위기로 인해서 금년 중 국채 순발행액이 11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전년대비 159%나 늘었고, 회사채, 은행채 등 다른 모든 채권들의 순발행액(119조원)과 거의 비슷한 규모다. 정부가 금융시장의 가용자금을 빨아들이는, 소위 구축효과(crowding-out)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걱정 때문에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국채시장 역량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장차 계속 늘어나게 될 국채의 수요기반을 늘리고 발행물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정부가 중대한 실수를 했다. 재정정책의 경계를 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대책 중에는 실물 기념국채를 발행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한국은행이 기념주화를 발행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는데, 한국은행은 기념주화 발행을 통화정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념주화 발행액은 통화량 통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소장가치가 있는 실물 기념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재정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국정홍보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수입 증진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제작비용도 건지지 못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시도할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재정정책에 충실해야 한다. 재정정책의 울타리를 잘 지켜야 한다. 그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영구채 발행을 통해 국채의 평균만기를 충분히 장기화하는 것이다. 둘째, 국채의 도매시장 육성에 집중하면서 소액 판매(개인투자자 앞 매출)는 포기하는 것이다. 끝으로 소위 ‘탄력적 차환발행’도 단념하는 것이 좋다.

영구채 발행은 자신감의 표현

외환위기 전에는 우리나라 정부가 5년짜리 국채를 발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시작될 당시 만기 5~7년의 정부보증채(예금보험기금채권, 부실채권정리기금채권)는 인수하는 기관이 없어서 8.5조원 전액을 한국은행이 인수해야 할 정도였다.

이후 국채시장이 크게 발전했다. 2000년부터 10년물, 2006년 20년물, 2012년 30년물, 그리고 2016년부터는 50년물 국채까지 발행되고 있다. 대통령이 열 번 바뀌는 동안 빚 갚을 걱정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재정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국채의 최장만기 50년은 미국의 30년, 일본의 40년보다도 길다.

안정적 재정자금의 조달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국채의 만기를 무한대로 늘릴 수도 있다. 이를 영구채(perpetual bond)라고 한다. 매년 액면금리 만큼의 이자를, 영원히 지급하는 채권이다. 대신 원금은 영원히 상환하지 않는다. 파산의 가능성이 있는 민간기업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지만, 신뢰받는 정부라면 가능하다.

18세기 중엽 이전까지 영국 정부는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국채를 발행하느라 국채 종목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1752년 기존의 모든 국채를 하나로 묶어 영구채로 전환했다. 이를 콘솔(Consol, ‘consolidated bond’의 약자)이라 불렀다. 콘솔은 영국 정부가 영원하다는 상징이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국 정부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입해서, 2015년 마침내 전액 소각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면서 영구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가 유로 공동체에게 영구채 발행을 제안했고, 스페인 정부가 앞장서서 이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 극복 방안으로서 영구채 발행을 권고한다.

영구채 발행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채권의 만기조절로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는다(모딜리아니-밀러 정리).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발행종목이 단순화되어 국채수요 증진에 도움이 된다. 만기가 없으므로 표면금리와 이자지급일만 일치시키면, 발행일이 다르더라도 모두 같은 종목이 되기 때문이다(이것이 영국이 콘솔을 발행한 중요한 이유다).

채권의 만기는 자금의 회수기간에 맞추는 것이 상식이다. 코로나19 위기로 나빠진 경제가 언제 좋아질지 모른다면, 영구채가 정답이다. 영국 정부도 나폴레옹전쟁, 크림전쟁, 노예해방, 제1차 세계대전 등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역사적 대형사건이 있을 때 콘솔을 발행했다. 미국도 남북전쟁 이후 국가재건기에 영구채를 발행했다(미국은 1907년 전액 상환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50년 만기 국채까지 무난하게 발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구채도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국가재정에 관한 자신감의 상징이다. 다만, 영구채 가격(=이자지급액/시장금리)은 금리변동에 대단히 민감하다. 주식만큼 가격변동 폭이 클 수 있다(영구채는 의결권이 없이 배당만 받는 우선주에 가깝다).

반대로 말하면, 영구채 금리는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영구채 금리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나 장기금리를 측정하는 데 좋은 지표다.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천체 관측을 위해 좋은 천문대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미 우리 정부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상태에서도 외화표시 외평채를 발행하고 있다. 외화자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벤치마크 금리를 얻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국내 지표금리를 관측하기 위해서도 영구채를 발행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개인에 대한 국채 판매는 '후진적 방법'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끝낸 뒤 극심한 분열을 겪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남북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 당시 북군에 항복한 이후 숙청의 대상이 된 남군의 한 장군은 이렇게 한탄했다.

“적어도 우리는 전쟁터에서 북군에게 패하지는 않았다.
우리 군대를 거꾸러뜨린 것은 다름 아닌 제이 쿡이다.”

제이 쿡(Jay Cooke)은 미국 최초의 금융재벌이다. 쿡은 링컨 대통령의 전비조달을 도움으로써 국가적으로는 애국자가 되고, 개인적으로는 큰 이익을 챙겼다. 가가호호 가정집을 방문하며 국채를 팔아 엄청난 수수료를 챙긴 덕택이다. 엄청난 성공이었다. 그때 제이 쿡의 회사를 향해 프라이머리 딜러(primary dealer)라는 말이 생겼다. 프라이머리 딜러를 두지 않았던 남군은 제이 쿡을 충분히 원망할 만했다.

남북전쟁 당시 제이 쿡의 국채판매 장면. 쿡은 시민의 애국심에 호소하여 링컨 행정부의 전비조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남북전쟁 당시 제이 쿡의 국채판매 장면. 쿡은 시민의 애국심에 호소하여 링컨 행정부의 전비조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국채의 일반매출 즉, 개인들에게 국채를 판매하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정부는 제1, 2차 세계대전 때도 그 방법을 적극 활용했다. 투입되는 노력과 비용에 비해 재정자금 조달효과는 적었지만,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금융기관을 상대로만 국채를 발행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푼돈 투자까지 국채투자를 권장하는 것은 지극히 미국적 현상이다.

제1차 세계대전(왼쪽)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국채투자 홍보 포스터.
제1차 세계대전(왼쪽)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국채투자 홍보 포스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MMF나 CMA, 수익증권 등 간접투자상품을 통해 개인들도 얼마든지 국채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가호호 개인들에게 국채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성공하기도 힘들다. 미국 정부는 제이 쿡에게 매출액의 0.38%를 수수료로 지급했는데, 오늘날에는 그렇게 많이 지급할 수 없다. 아마 0.1% 정도 될 텐데, 그 정도로는 금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결국 금융기관의 팔목을 비틀어야 가능하다.

오래 전에 한국은행도 비슷한 시도를 했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컸던 1980년대 후반부터 외환위기 때까지 한국은행은 개인들을 상대로 한국은행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을 판매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통화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한국은행을 돕는 금융기관도 없었다. 결국 각 지점들은 관할지역 금융기관들에게 강제로 할당한 뒤 이를 업무실적이라고 부풀렸다(실적을 채우지 못한 부산지점장은 문책까지 받았다).

보여주기 식 국채판매는 지양해야 한다. 유래 없는 경제난을 맞아 정부가 할 일도 많은데, 금융기관을 억지로 동원하여 몇 푼 되지도 않는 국채를 판매하는 것은 결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명목 GDP대비 국채발행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유럽 국가나 일본이 왜 개인들에게 직접 국채를 팔지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조건 미국만 좇아가는 '숭미주의'는 지양해야 한다.

국채 바이백은 본질에서 벗어난 '잔재주'

2년 전 우리 국민들이 충격적인 뉴스(신재민 사무관 폭로)를 통해 배운 전문용어가 있다. 국채의 바이백(buy-back)이라는 말이다. 바이백은 조기상환(early redemption)과 다르다.

조기상환은, 재정자금이 예상 밖으로 여유가 있어 국채를 만기 전에 매입하여 소각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 정부의 영구채 조기상환이 그 예다. 국가채무를 낮추는 조기상환은 전형적인 재정정책에 속한다.

바이백은, 만기도 되기 전에 미리 빚을 내서 이전의 빚을 갚는 노력이다(그러므로 ‘만기 전 차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만기가 1년이나 남은 채권을 일단 사들이고(바이백), 다시 3년 만기 국채를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국채의 발행과 상환이 쌍을 이루는 바이백은 국가채무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재정자금에 여유가 없더라도 시도할 수 있다.

바이백은 바보짓이다. 민간기업이라면, 바이백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 재무담당자가 그 따위 쓸 데 없는 노력이나 기울이면, 사장이 당장 해고할 것이다. 만기가 1년이나 남은 채권을 미리 사들인다는 것은 애초에 장기 채권을 발행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이자부담도 낮출 수 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바이백보다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 생산에 주력하는 것이 민간기업이 할 일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책 의도가 잘 구현되도록 재정지출에 주력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만기도 되지 않은 특정 종목의 국채를 바이백하는 것은 재정정책이 아니다. 이미 국채를 산 사람에게 그 처분을 도와주는, 특혜 제공에 불과하다. 공짜로 풋옵션을 주는 것과 같다. 은행으로 치자면, 요구불예금에 정기예금 금리를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이백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들도 시도하지 않는다. 미국도 클린턴 행정부 시절 서머스 재무장관의 제안으로 2000년 도입되었다가 지금은 거의 실시하지 않는다. 금년에는 8월에 단 한 차례 2500만 달러를 바이백하는 것으로 그쳤다. 비상시에 대비한 연습이 목표였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느닷없이 바이백을 활성화하고 교환(국채 종목 간 교환)제도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잔존만기가 1년 이상 남은 장기 국채까지 바이백하거나 희망하는 종목으로 바꿔준다는 것이 골자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는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업무태만으로 불필요한 이자지급(장기채권은 단기채권보다 금리가 높다)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장기국채 발행을 국고국 직원들의 심심풀이 정도로 생각한다는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다.

황당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인의 장기 국채투자를 유도하기 위해서 가산금리와 세제혜택까지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국채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당장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흑자 경제주체)들인데, 그들에게 가산금리와 세제혜택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 굳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그 가산금리와 세제혜택의 재원은 바로 고소득자에게서 나온다. 결국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의미하며, 행정비용만 커진다. 다른 나라들이 그런 방법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종합해 보건대, 기획재정부는 숭미주의를 극복하고 유럽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영국의 영구채 발행을 참고하고, 미국식 소매 판매(개인 앞 국채판매)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위 바이백과 국채 교환제도는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좋다. 엄청난 경제난을 헤쳐 나가는 데 재정정책의 경계를 헤아리고, 그 울타리를 잘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경제원론 교과서가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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