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로만 기억되는 숀 코네리?...그의 숱한 영화들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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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로만 기억되는 숀 코네리?...그의 숱한 영화들 '소환'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11.0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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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0세...아내는 "치매로 투병 중에 숨졌다"고 밝혀
007 시리즈 초대 제임스 본드...총 6편으로 독보적 캐릭터 구축
007 은퇴후 명감독들과 작품 활동...'언터처블'로 오스카,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왕이라 불리운 사나이', '대열차 강도', '붉은 10월', '인디애나 존스', '더 록' 등
20세기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됐던 숀 코너리. 초대 제임스 본드로 이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세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은 배우였다. 사진=네이버영화
20세기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됐던 숀 코너리. 초대 제임스 본드로 이후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많은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은 배우였다. 사진=네이버영화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My name is Bond, James Bond.
"본드, 제임스 본드요."

영화팬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만한 대사. 제임스 본드는 20세기 영화 산업계 최고의 캐릭터였고 지금도 제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는 수트를 입고 정의를 위해 위해 종횡무진하고 있다. 007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초대 제임스 본드로 기억되고 있는 배우 숀 코너리가 지난 달 31일 세상을 떠났다. 1930년 8월 25일  에딘버러의 가난한 트럭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던 90세의 나이로 바하마 나쏘 휴양지에 있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미국 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따르면 숀의 아내는 그가 치매로 투병 중이었다. 지구상 가장 섹시하고 용감한 이미지의 제임스 본드가 기억을 못하는 병에 걸렸다는 건 밝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숀은 1989년에는 People지  선정 '가장 섹시한 남자'였으며, 1999 년에는 '20세기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혔던 배우다. 당시 숀은 69세였다.

총 6 편의 007 시리즈를 마쳤으며 그후로도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키 188cm에 선 굵은 외모, 다부진 체격의 숀은 가정 형편 때문에 13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우유 배달부와 벽돌공과 같은 일로 생계를 이어가다 단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첫번째 출연작 '위기일발'.사진=네이버영화
첫번째 출연작 '위기일발'.사진=네이버영화

에딘버러의 우유배달부, 제임스 본드 돼다

숀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파운틴브릿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청소부였고 그의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다. 가난한 가정환경 탓에 숀은 우유 배달부, 트럭 운전사, 부두노동자, 에딘버러 예술 대학의 누드모델 등 다양한 일을 하다 16세에 영국 해군에 입대했지만 위궤양 때문에 군을 떠났다. 축구에 소질을 보여 23세 당시 프로축구 선수와 배우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는데 배우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이는 '자신이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훗날 회고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몸을 만들어 1953년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해 3위에 입상, 연예계로 직행한다. 에딘버러에서 뮤지컬 단역으로 출연하며 연기수업을 쌓았고 1957년 영화 'No Road Back'(1957)을 통해 주연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어 섹시 스타 라나 터너의 상대역으로 미국 영화 '다른 시간 다른 장소'(1958)에 캐스팅돼 할리우드에 입성했으며 '지상 최대의 작전'(1962)에는 존 웨인, 로버트 미첨, 헨리 폰다 등 당대 최고 스타들과 함께 출연했다.

1962년. 드디어 '007 살인번호'에 초대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된다. 007시리즈는 영국 정보국 MI6의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소설로 기자 출신 이안 플레밍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정보국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던 연작 소설이다.

이안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 역에 캐리 그랜트를 낙점했지만 '데일리 익스프레스'지에서 개최한 '제임스 본드에 어울리는 배우'를 뽑는 이벤트에서 숀 코너리가 쟁쟁한 배우들을 물리치고 1등을 차지했다. 스코틀랜드 노동자 출신의 숀보다 귀공자 스타일 캐리 그랜트를 좋아했던 이안 플레밍은 하지만 시사회가 끝난 뒤엔 "큰 실수를 할뻔 했다"면서 "숀이 바로 제임스 본드"라고 추켜세웠다.

숀은 '007 살인번호'(1962) 이후에도 '007 위기일발' (1963), '골드핑거'(1964), '선더볼 작전 1965' 에 출연했으며 1967년 '007 두번산다'를 끝으로 본드 역에서 은퇴했다. 매년 007 작품들이 해외 로케를 거치며 제작되는 것에 지친 데다가 제임스 본드 역할로 이미지가 굳어질 것이 두려워 스스로 본드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2대 본드를 맡았던 조지 레젠비의 '여왕폐하대작전'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출연해 달라는 제작사의 간곡한 부탁으로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1971)에 출연해 그가 출연한 007 시리즈는 총 6 편이다. '네버세이 네버어게인'(1983)은 007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게 통례다.  

 

숀 코너리의 마지막 출연작 '젠틀맨 리그'. 사진=네이버영화
숀 코너리의 마지막 출연작 '젠틀맨 리그'. 사진=네이버영화

007 은퇴후 거장 감독들 구애받으며 왕성한 활동 펼쳐

숀은 본드 은퇴 후 많은 거장 감독들의 러브 콜을 받았다. 숀은 '골드핑거'(1964)를 찍던 해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마니'에서 도벽이 있는 경리비서에게 청혼하는 사업가 역에 캐스팅됐다. 거장 존 휴스턴의 '왕이라 불리운 사나이'(1975)에서는 사기꾼 모험가를 연기했으며 같은 해 캔디스 버겐과 함께 '바람과 라이온'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넓혀 나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리차드 아텐보로의 대작 '머나먼 다리'(1977)에 출연했고 '주라기 공원' 원작자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 감독의 '대열차 강도'(1979)에도 출연했다.

그에게 유일하게 오스카를 안겨준 작품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언터처블'이다. 고집 세고 노련한 아일랜드계 형사 제임스 말론 역을 맡아 오스카 남우조연상과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상업영화 007 시리즈는 물론 수많은 주연작품에서도 받지 못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다이하드' 감독으로 유명한 존 맥티어난의 '붉은 시월'(1990)에서는 라미우스 선장을 연기했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에서는 해리슨 포드의 아버지로 분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초대형 액션물 '더 록'(1996)에서는 미국의 악명 높은 감옥 알카트라즈에 수감됐다가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했던 영국 MI6의 전직 스파이 존 메이슨으로 등장, 예전의 본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숀은 66세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난도 액션을 소화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3년 그가 새롭게 도전했던 장르인 판타지 영화 '젠틀맨 리그'를 끝으로 스크린에서 은퇴했다.

'미스터빌리'.사진=네이버영화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미스터 빌리'. 사진=네이버영화

스코틀랜드 위한 마지막 작품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

숀은 16세에 해군에 입대하면서 오른팔에 '스코틀랜드여 영원하라' (Scotland forever)는 문신을 새길 만큼 뼛속깊이 스코틀랜드인이었다. 연기 인생 내내 어쩌면 단점일 수도 있었던 스코틀랜드 억양을 버리지 않았고 그 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든 배우였다.

2000년 스코틀랜드 홀리루드궁에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지만,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당시 그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했으며 스코틀랜드 독립운동단체에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북쪽을 뜻하는 '하이랜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하이랜더'에서 숀은 '맥클라우드(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친구이자 스승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공식 은퇴 후였지만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미스터 빌리:하일랜드의 수호자'에 목소리 더빙 뿐만 아니라 제작에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주인공 빌리는 영국 황실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은 점잖은 70대 할아버지지만 스케이트 보드를 즐기면서 다져진 근육과 함께 용맹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마치 숀 코너리에 대한 오마주로 탄생한 캐릭터로 여겨질 정도.  

완전무결한 캐릭터를 연기한 업보랄까. 숀 역시 구설수에 여러번 오르기도 했다. 007 시리즈에 출연 당시에는 본드걸들과 숱한 염문을 뿌리기도 했고 그의 전처는 숀이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했다고 폭로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스스로를 ‘망명자’라고 칭하면서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엔 영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바하마에 정착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닐까 의심받았다. 바하마와 버뮤다 등지는 조세회피처로 잘 알려진 곳이기 때문.

'굿윌 헌팅'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2000)에서 자신의 아파트에 몰래 침입했던 청년이 두고간 노트에서 문학적 소질을 발견하고 그를 문학세계로 이끌어주는 노작가 포레스터를 연기한 숀. 인생을 관조하며 가르침을 주는 역할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포레스터는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꿈에서 멀어져 간다" 고 말한다. 배우로서의 성공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던 숀 코너리. 희끗희끗한 수염과 함께 깊은 울림으로 나즈막히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원한 전설, 아련한 노스탤지어.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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