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 우리 땅에선 서로 다른 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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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우리 땅에선 서로 다른 말을 썼다
  • 김인영
  • 승인 2015.12.29 15:38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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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통일하면서 신라어가 한국어의 원형이 되다

 

오늘날 우리민족은 단일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고 교육을 받아 고대 이래 이땅에 산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로 사용했을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사료를 살펴보면 다양한 종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고, 신라의 영토확장 및 통일 과정은 신라어를 중심으로 하는 언어의 통합 과정으로 볼수 있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터전을 마련한 동이족들이 통역이 없으면 언어를 소통할수 없었을 정도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하나의 언어, 즉 한국어를 사용했을까.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그 시기는 신라가 3국을 통일한 이후부터였다. 이전의 언어는 부족별로, 나라별로 달랐다.

크게는 두 줄기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 하나는 부여-고구려-백제 지배층-왜로 이어가는 갈래고, 다른 하나는 신라어다. 언어학자들은 신라어가 대체로 오늘날 한국어의 원형이 되고, 고구려어와 백제어가 일본어의 원형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 무용총 수렵도에 나타난 고구려인과 신라토우에서 드러난 신라인. 두 나라의 언어는 서로 달랐다고 한다.
①고조선

고조선의 어휘가 남아있는 경우는 희박하다. 사료에 ‘단군(檀君), 왕검(王儉)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했다’는 고유명사가 있을 뿐이다. 王儉의 ‘검’은 신라어 이사금(임금)의 ‘금’과 비슷하고, 阿斯達에서 ‘아사’는 중세 국어의 ‘아ᄎᆞᆷ(朝 )’, 일본어의 ‘asa(朝)’와 관련이 있고, ‘달’은 고구려어의 ‘달(山)’과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다. 箕子朝鮮의 ‘기자’는 백제어에서 임금을 ‘긔ᄌᆞ’라고 한 점에 비추어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②『삼국지』 「동이전」이 전하는 고대어

기원 전후에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예(동예)의 부족들이 웅지를 틀었다. 당시의 언어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3세기말)에서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고구려에 대해 ‘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부여의 별종으로, 언어와 여러 가지가 부여와 같은 것이 많다)’고 했다. 옥저에 대해선 ‘其言語與句麗大同 時時小異(그 언어는 고구려와 크게 같으나 조금 다른 것도 있다)’고 했다. 동예의 언어에 대해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언어와 법속은 대체로 고구려와 같다)’고 했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할 때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등 만주와 한반도 북쪽 지역의 부족들은 대체로 같은 언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국지』 「동이전」에서 말갈족의 조상인 읍루(挹婁)에 대해선 ‘言語不與夫餘 句麗同(언어는 부여와는 다르고 고구려와는 같다)’고 했다. 고구려어와 부여어가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고, 읍루어와 부여어 사이에 차이가 커졌음을 알수 잇다. 뒤이어 『북사(北史)』 「勿吉傳」(659년)에는 ‘在高句麗北 言語獨異(고구려의 북쪽에 위치하며, 언어가 홀로 다르다)’라며 고구려 말기에 말갈어가 고구려어와 뚜렷한 구분을 가지고 달라져 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 만주와 한반도 북부의 언어는 부여어를 모태로 해서 고구려가 강대해지면서 일대의 언어적 지배를 했고, 고구려가 약하지면서 언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한반도 남쪽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할거하고 있었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진한에 대해 ‘其言語不與馬韓同(그 언어가 마한과 같지 않다)’고 했고, 변한에 대해선 ‘弁辰與辰韓雜居 言語法俗相似(변진은 진한과 섞여 살았는데, 언어와 법속은 서로 비슷했다)고 했다. 진한과 변한의 언어는 비슷했지만, 마한과 달랐다는 것이다. 진한과 변한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남동부에서 가까이 위치했으므로 언어의 유사성이 컸고, 마한은 한반도 중부와 남서부에 위치했으므로 지리상 언어의 차별성이 강조됐을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통해 고대 언어를 비교할 때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에선 부여를 원류로 해서 고구려가 언어의 맥을 이어갔고, 한반도 남쪽에서는 삼한이 북부와는 다른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③고구려어

삼국 통일 이전에 가장 강대했던 고구려였지만, 멸망한후 그 언어도 자취를 감추었다. 고구려어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지명으로 남아있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지리지」에서 신라가 고구려 땅을 빼앗아 한자식으로 지명을 바꾸기 전의 옛 고구려 지명을 적어두었다. 언어학자들은 「지리지」에서 고구려어 단어를 100개 정도 추출했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발견한 로제타석과 다름없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던 고대 이집트어가 로제타석의 문구 해독을 통해 빛을 발한 것처럼 「지리지」는 사라진 고구려에서 어휘 몇 조각을 소중하게 얻는 기회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水谷城郡 一云 買旦忽(수곡성을 다른 말로 매단홀이라고 불렀다)’라는 문구에서 ‘매(買)’는 물(水)을, ‘단(旦)’은 골짜기(谷), ‘홀(忽)’은 성(城)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구려어의 흔적을 남겼다.

언어학자 이기문 교수는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추출한 어휘를 통해 볼 때 고구려어는 분명하게 알타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매(買)’를 들었다. 이 것은 ‘물(水)’을 뜻하는 말로, 에벤키어의 ‘mû’, 만주어 ‘muke’, 중세몽고어 ‘mören’, 일본어 ‘midu’와 유사하며, 중세 국어의 ‘믈’로 이어져 현대 한국어 ‘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기문 교수는 고구려어 어휘가 중세 국어에 많이 전해져 한국어를 풍부하게 했다고 밝혔다.

고구려어 ‘於斯(橫=어ᄉᆞ)’가 중세국어엔 ‘엇’으로 변했으며, ‘파혜(波兮)’가 ‘바회(巖)’으로, ‘수(首)’가 ‘쇼(牛)’로 각각 변해 우리말의 조상이 됐다고 한다.

 

④ 백제어

서기 629년에 편찬된 중국 『양서(梁書)』에 백제에 대해 ‘今言語服章 略與高驪同(언어와 복장이 고구려와 대략 같다)’고 서설했는데, 이기문 교수는 백제의 지배족의 언어가 고구려의 언어와 비슷하다는 내용을 기술한 것으로 보았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내려온 지배족이 마한족을 지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지배족과 피지배족 사이에 종족이 달랐고, 언어도 달랐다. 이에 대해 636년에 편찬된 『주서(周書)』 「이역전 백제조(異域傳 百濟條)」에 ‘王姓夫餘氏號於羅瑕 民呼爲鞬吉支(임금은 성이 부여씨인데, 어라하라고 칭했고,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불렀다)’라고 썼다. 지배족은 임금을 ‘어라하’라고 불렀지만, 피지배족은 ‘건길지’라는 다른 칭호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라하의 ‘하(瑕)’는 ‘馬加·牛加·猪加’ 등 고구려에서 부족장을 칭하는 명칭에서 ‘가(加)’와 비슷하고, 이는 몽골어 ‘칸(qan)’, ‘카(qa)’와 같은 계열이라고 한다. 신라 임금을 뜻하는 ‘거서간(居西干)’의 간(干)도 알타이 계통의 표현이다.

또 백성들이 쓰는 ‘건길지’라는 어휘에서 ‘건(鞬)’은 ‘크다’라는 뜻이고, ‘길지(吉支)’는 임금을 뜻하는 말이므로, ‘큰 임금’이라는 뜻이다. 일본서기엔 백제왕을 ‘kisi’라고 적었고, 조선 선조 8년(1575년)에 간행된 千字文 광주본에는 왕(王)의 새김을 ‘긔ᄌᆞ’라고 적혀있다. (이기문, 국어사 개설)

지배족과 피지배족의 언어가 달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지배층은 부여어 또는 고구려어를 썼고, 피지배족은 마한어를 쓴 것이다.

성(城)을 뜻하는 고구려어 ‘홀(忽)’은 백제에서도 사용됐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의 형 비류(沸流)가 도읍을 정했다는 ‘미추홀(彌鄒忽)’이라는 어휘에서도 고구려의 냄새가 난다.

백제어에 대한 자료는 삼국중 가장 적다고 한다. 언어학자들은 고구려어와 마찬가지로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몇 개 어휘를 추출했는데, 그나마 고구려어만큼의 어휘를 채칩하지 못했다. 국어학자들은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부여(夫餘)를 뜻하는 ‘소부리(所夫里)’에서 ‘부리(夫里)’가 ‘불(火)’을 뜻한다고 보았다. ‘熊津(공주)’은 ‘곰나루’라는 뜻인데, 이기문 교수는 조선조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고마ᄂᆞᄅᆞ’라는 표현이 백제의 잔영이 아닌가 했다. 일본어의 ‘kuma’(熊)와도 일치한다.

 

⑤신라어

신라는 서라벌(徐羅伐)을 중심으로 일어나 삼국을 통일했다. 따라서 신라의 팽창은 곧 신라어의 성장이요, 삼국통일은 신라어에 의한 언어통일의 성격을 띤다.

신라는 백제에 앞서 가야를 병합했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변한어는 대체로 진한어와 비슷하다고 했으므로, 가야어도 신라어와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국사기』 「열전 사다함조」에 ‘旃檀梁 城門名 加羅語謂門爲梁云(전단량은 성문 이름이다. 가라의 말로 문을 양(梁)이라 한다)’고 주석을 단 점에 비추어 가야어와 신라어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기문 교수는 통일신라의 성립은 국어 역사에 최대의 사건이라고 평하고, 통일신라가 10기초까지 계속되는 동안에 경주 중심의 신라어가 백제와 고구려의 옛땅에도 파급됐다고 파악했다. 이탈리아반도의 라티움(Latium)어가 로마제국의 언어가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신라어는 고려어로 이어졌다. 권력 형태는 경주 중심에서 개성 중심으로 옮겨졌지만, 언어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중부 방언이 중심어가 된 정도랄까. 조선어는 고려어를 이었고, 오늘날 한국어는 신라어를 원류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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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흥 2024-01-18 11:48:57
말이 달랐다는 건 대체적으로 동의를 하는데 너무 나간거도 좀 있는거 같은데

에네르기 2023-11-23 16:00:58
부, 보 등은 고구려와 신라가 동일하게 쓰는 단어였고 광개토대왕릉비에 적힌 이두 체계 역시 삼국이 같이 썻으며 조사 등도 그 당시 음가를 재구해보면 거의 비슷한 발음으로 읽히는 것을 볼 때 삼국의 언어는 같은 언어의 다른 방언 정도로 볼 수 있음.

에네르기 2023-11-23 15:46:15
고려를 세운 세력은 패서 고구려계 호족들인데 이 지방 사람들은 200년 간 고구려의 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사람들이고 200년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어족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거나 동화시킬 정도로 긴 시간은 아니고 만일 다른 어족을 밀어내거나 동화시켰다면 고구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다고 보기 어려움 이런 정황을 봤을 때 결국 고려어는 고구려어의 직계라고 봐야 함.

에네르기 2023-11-23 15:42:57
이상한 기사네.... 일단 백제어 목간에 담긴 수사를 보면 하나둘셋을 가덕읍 두터틉 세테읍 등으로 표기해서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하나둘셋은 똑같다는 걸 알 수 있고(ㅎ과 ㅋ은 서로 돌려쓸 수 있는 음가임) 비교언어학에서 수사의 동질성이 같은 어족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을 볼 때 현대 한국어가 백제어와 같은 어족임을 알 수 있음.
백제어가 이중언어였다는 점에 대해서도 반박하자면 어라하는 아라(크다) + 하(가, 간, 칸)의 합성어인데 건길지 역지 건(간, 칸) + 기지(높임말, 지, 이지, 기지, > 지, 치 > 거지 양아치 등등 비하하는 접미사로 변화) 했다고 볼 떄 실제로는 같은 말일 가능성이 높음. 요즘으로 치면 대왕과 왕님의 차이 정도인데 결국 훈차냐 음차냐의 차이일 뿐

쿠우쿠우 2021-03-08 15:46:12
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2/13/103417/2 보시면 삼국의 관직이나 왕명 등의 유사함을 볼 때 뿌리의 동질성은 보입니다. 다만 방언수준이냐 아니냐의 차이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