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세계 1위' 키운 이건희 회장 별세
상태바
'삼성전자 세계 1위' 키운 이건희 회장 별세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0.10.25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3년 '신경영선언'으로 초일류 삼성 시동걸어
10년여만에 TV 세계 1위, 반도체 세계 1위, 스마트폰 1위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며 혁신 잃은 한국 질타
고독한 유학생활 하며 '업의 본질' 꿰뚫는 통찰력 가져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다.

삼성은 이날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조화와 조문도 사절했다.

이 회장의 별세는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만이다.

고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강남 삼성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까지 받고 소생해 치료를 이어왔다. 이후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고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87년 선진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갑작스런 별세 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당시 현대그룹과 함께 국내 1,2위를 다투던 삼성그룹이었으나 이 회장이후 반도체 신화, 스마트폰 신화를 직접 창조해내면서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기업으로 키우는 '이건희의 신화'를 전세계에 알렸다.

향년 78세의 일기로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사진제공= 삼성
향년 78세의 일기로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사진제공= 삼성

고인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건희 회장은 1953년 부친의 뜻에 따라 일본 유학을 떠나 고독한 일본 유학생활을 보냈다.

영화 감상과 애완견 기르기 등에 심취했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에는 레슬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홍 여사는 당시 중앙일보 경영을 맡고 있던 홍진기 사장의 장녀였다.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 눈밖에 났다. 호암이 밀수 사건 내부 제보자로 이맹희 회장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신경영선언', 세계의 삼성이라는 비전 제시

2대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93년 그 유명한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비전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삼성가 분할이 거의 완료된 뒤 삼성전자 고위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작심 발언으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전까지 국내 1,2위 전자업체라는 평판을 가졌지만, 달리 뉴욕 등 선진국의 주요 전자매장에서 '저품질'로 창고에 처박혀있는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두눈으로 목도한 것이 계기였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질경영,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장 취임 당시 10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그의 취임 25주년이던 2012년 380조원에, 30년쯤인 2018년에는 386.6조원으로 성장했다. 10조원이 조금 넘던 그룹 자산은 2018년 878조원이 됐다.

10년여만인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특히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한국 정치사회를 질타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이 회장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단독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조직 재정비와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헌신했다. 삼성전자가 카피캣의 오명을 씌운 애플을 추월하는 데도 고인의 집념이 큰 역할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이건희 삼성회장은 2014년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6년 5개월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사진=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회장은 2014년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진 후 6년 5개월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사진= 연합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