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산책] '허무주의적 삶' 극복하는 신성한 예술노동자 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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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산책] '허무주의적 삶' 극복하는 신성한 예술노동자 김인
  •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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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자동차군집...물질만능 속 소외된 인간상 느끼게돼
주먹쥔 손과 브이표시 손가락 묘사는 개념 예술 표현
오는 21일부터 인사동 통인갤러리서 개인전 '끝없는 중력'전 열려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 화폭에 승용차들이 모여 있다. 한 방향으로 향해 있다. 작가들은 선이 뚜렷한 방향성이 있는 대상들을 좋아한다. 도로를 달려야 할 차들을 한 방향으로 군집화시켰다. 

'나폴레옹은 말을 탄 시대정신' 이라는 헤겔의 언급처럼 권력 자체였던 말을 대체한 자동차를 소유하는 욕망은 소외된 공간 찾기다. 작가 김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에 의지하는 소외된 인간을 그린 것이다. 

김인의 최근 자동차 소재 작품들은 기존의 질서정연함을 흩트리고 들쭉날쭉하게 그려져 있다. 그 무질서는 차분했던 화면이 갑갑한 공간임을 드러낸다. 그가 즐겨 그리는 자동차는 필자가 자동차 회사에 다녔던 경험으로 인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반면 그가 즐겨 그리는 주먹의 군집, 브이(V) 형태의 손가락 군집 그림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아톰이나 천불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인간의 냄새가 나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개인전을 불과 한 달도 남겨두지 않고 집을 떠나 3박 4일간 동료들과 같이 일하러 나선 작가에게 전화했다. “별 의미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알아도 말 못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몇 명 되지도 않는 주변 지인을 놀리고 농락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태도는 세상에 대해 시니컬하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car our 20th century arcylic on canvas 80*80 2020.
car our 20th century arcylic on canvas 80*80 2020.

작품이 반드시 메시지를 담고있어야 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 관련 글 쓰는 이에게 화가는 종종 그 사람 자체로 글의 주제이며 소재이기도하다. 

손의 제스쳐는 상징적인 힘이 세다. 꼭 쥔 주먹과 브이(V) 형태의 손짓은 무엇인가? 나는 여기에 대한 힌트를 만프레트 가이어(Manfred Geier)가 짓고 이재성 계명대 교수가 옮긴 ‘웃음의 철학’ 표지 그림에서 찾았다. 

‘지구 본’ 위로 몸을 숙인 젊은 남자는 폭소를 터트리며 새끼 손가락과 검지를 내민 약간은 파렴치한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그는 마치 세상을 농락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rainbowpunch arcylic on canvas 162*112 2020.
rainbowpunch arcylic on canvas 162*112 2020.

표지 그림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 출신의 화가 요하네스 모레일서(1602~1634)가 그린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란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인 데모크리토스의 우주론은 원자론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사물의 특성이 원자들의 형태와 크기, 배열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감각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원자 집적물의 밀도와 그 중심부에서 작용하는 중력의 차이가 사물의 1차적 성질이라고 본다.  

데모크리토스의 새끼 손가락과 검지는 세상에 대한 조롱이면서 신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인간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사물일 뿐이다. 중력은 인간의 노화를 가져온다. 인간은 땅에 묻힌다.    

“별 의미 없다”는 의미를 퍼즐처럼 맞추어 보니, 인간의 가장 비극적인 요소인 유한한 존재로서의 죽음이 담벼락처럼 가로막아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소멸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동차는 중력의 법칙을 견디나 바람과 햇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녹이 쓸고 용광로에 들어간다. 최고급 도장이 된 자동차도 그럴진대 쇠붙이로 된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이다. 자동차가 일정한 방향으로 모여있든 서로 엇갈려있든 꼭 쥔 주먹과 브이(V) 형태의 손짓이 패턴화하고 반복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기억하고 연대하라는 의미로 보인다. 

v arcylic on canvas 145*89 2020.
v arcylic on canvas 145*89 2020.

이렇게 놓고 보면 김인의 작품은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미술의 혁명가 마르샬 뒤상의 작품 ‘레디 메이드(Ready-made)’와 그 이후 일상에서 발견되는 평범한 기물을 작품으로 도입한 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 

김인 작품 제작 과정의 특징은 끝없이 몸을 움직여 일상의 평범한 기물을 생산하듯이 그려내는데 있다. 이는 신성한 예술 노동 행위이면서 허무주의적인 삶을 극복하는 한 방법이며, 작가가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인 듯 하다. 김인의 ‘끝없는 중력’전은 10월 21일부터 11월 5일 까지 서울 인사동 통인갤러리에서 열린다.

 심정택 미술칼럼니스트는 미술계 입문 12년차의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쌍용자동차 기획팀, 삼성자동차 기획팀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를 거쳤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상업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50여회의 초대 전시를 가졌고, 국내외 300여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하였다.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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