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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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0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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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보건 교사 안은영...‘퇴마사’로 변신하다
10개 독립된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구성...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스트리밍 중
문제아 혹은 소수자로 찍힌 아이들의 영혼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캐릭터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명랑 판타지 시리즈.사진=넷플릭스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명랑 판타지.사진=넷플릭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정세랑의 소설은 따뜻하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마찬가지다. 평범해 보이는 보건교사가 학교와 학생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피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다만 안은영이 근무하는 학교는 평범하지 않다. 물론 주인공인 안은영도 실제로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소설 속 안은영은 보통의 인간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가 어린 시절 이사한 집 벽 속에 “얼굴은 좀 상했지만 친절한 아줌마”가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 아줌마가 “조용히 웃으며 내려다” 보는 모습에서 나쁘지 않은 존재라 판단한 은영은 함께 지낸다. 물론 엄마에겐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안은영은 좋은 존재와 나쁜 존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일찍부터 발달한 것이다.

안은영은 병원 간호사에서 M고등학교 보건교사로 자리를 옮긴다. 학생들은 그녀에게 “아는 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름과 발음이 비슷해서 대충 붙여준 거다. 그만큼 개성 없어 보이는 주인공이라는 걸 상징한다.

하지만 존재감 없는 보건교사 안은영 앞에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괴이한 존재들이 학생들과 학교를 큰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은영은 장난감 칼과 총으로 그 괴이한 존재들을 무찌른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펴냄.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펴냄.

그렇다. 그녀는 학생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보건교사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을 처치하거나 때로는 위로해서 떠나보내는 ‘퇴마사’ 혹은 ‘심령술사’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함께 하는 이가 있다. M고등학교 설립자의 손자이자 한문 교사인 ‘홍인표’. 그는 나쁜 기운이 범접지 못하는 좋은 기운을 지녔다. 안은영은 홍인표와 그 기운을 공유하며 학교에 나타나는 괴이한 존재들을 무찔러 간다. 그런데 그들이 함께 싸워나가는 과정이 어쩐지 썸으로도 느껴져 읽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작품을 쓴 소설가 정세랑은 ‘지구에서 한아뿐’, ‘덧니가 보고 싶어’, ‘이만큼 가까이’, ‘재인, 재욱, 재훈’ 등의 소설로 참신한 상상력과 따뜻한 이야기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정세랑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즐겁게 쓴 이야기라 영원히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고도 밝힌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왠지 공감되는 작가의 말이었다.

 

원작자 정세랑 작가.사진=넷플릭스
원작자 정세랑 작가.사진=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은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10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구성되어 있다. 독립된 단편의 연작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튼 각각의 이야기는 나름의 결론을 맺으며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 전체를 한 호흡으로 읽기도, 나눠서 읽기도 좋다.

난 이 작품을 몇 년 전에 읽으면서 영상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주인공인 안은영에게서 어떤 배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유미라는 배우다. 엉뚱한 면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모습과 사악한 존재들에게 어설프게도 장난감 무기로 대항하는 모습에서 정유미가 떠오른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떠올랐다.

그런데 이 소설이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뉴스에서 감독과 작가의 말이 눈에 띄었다. 두 사람 모두 원래부터 정유미를 주인공으로 생각했었다는. 물론 여배우에 대한 립서비스로 그런 극찬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의 독자들은 감독과 작가의 선택에 지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소설을 읽으며 어떤 배우의 모습이 떠오를 만큼 ‘보건교사 안은영’은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 스토리와 그 안의 사건들이 소설을 끌고 가는 작품이 있다면 이 작품은 보건교사이며 퇴마사인 주인공이 철저히 끌고 가는 소설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스트리밍 중인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한문교사 홍문표 역을 맡은 남주혁.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스트리밍 중인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한문교사 홍인표 역을 맡은 남주혁.사진=넷플릭스

안은영은 플라스틱 칼과 비비탄 총으로 악귀와 혼령을 물리치며, 통굽 슬리퍼를 신고 뛰어다닌다. 급할 때는 맨발로 스타킹이 찢어지도록 뛰기도 한다. 학생들의 갖가지 고민을 스스럼없이 들어주며, 엇나갈 것 같은 학생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도한다.

사람을 해치는 나쁜 존재와 자신의 힘을 악용하는 자는 가차 없이 응징한다. 하지만 사연이 있는 영혼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기도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아래는 은영이 크레인이 사람보다 비싸서 낡은 크레인을 타다 사고로 죽은 옛친구의 영혼을 보며 한 생각이다.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189쪽)

소설 속 주인공 안은영은 발랄하고 용감한 여전사이자 다정하고 유쾌한 언니 혹은 누나가 되어 맹활약한다. 한마디로 수동적이지 않고 주체적이며, 감상적이지 않고 감각적인, 아는 형 삼고 싶은 주인공이다.

안은영이 활약하는 M고등학교는 우리나라 교육 현장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우등생이나 모범생은 나오지 않는다. 소설이 아닌 세상에서는 주변부로 밀려날 법한 아웃사이더들을 주인공으로 불러온다. 그들은 문제아 혹은 소수자로 찍힌 아이들이기도 하고 왕따로 소외된 아이들이기도 하다. 정세랑 작가가 그 아이들을 안은영 보건교사의 눈으로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은은한 빛이 반짝인다.

잠든 은영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약간 빛이 어려 있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정말로 빛이 나는 건 아닐 텐데 잠든 은영의 손을 잡아주거나 가볍게 안아 주면 은은하게 발광했다. (272~273쪽)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된 ‘보건교사 안은영’에 대한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소설책 활자들이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점점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번 주말에 난 넷플릭스에 가입해서 시리즈 정주행을 할지도 모른다. 그 전에 소설을 한 번 더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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