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교수의 「韓·日 쌍둥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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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교수의 「韓·日 쌍둥이론」
  • 김인영
  • 승인 2015.12.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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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인은 BC 400년경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의 후손”

 

지금의 일본인이 한국에서 건너간 이주민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대해 일본 사람들은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생리학자가 이런 주장을 해 흥미롭다.

바로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교수다. 그는 별도의 논문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에서 “현재의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주자의 후손이며, 지금의 일본어가 고구려어, 백제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을 요약한다.

현재의 일본인은 BC 400년경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이다. 벼농사를 하는 이주민은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대체했다. 앵글로색슨족이 6세기경 유럽본토에서 영국으로 이주해 오늘날 영국인이 된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19세기 이전에 현재의 일본인은 규슈, 시코쿠, 혼슈에 주로 거주했고, 아이누족은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 수렵 채취생활을 하며 살았다. 일본인은 유전자와 두개골 형태, 외모가 중국북부, 시베리아 동부, 특히 한국인들과 흡사하다. 이에 비해 아이누족은 지문이나 귓밥 형태등 여러 유전적 형질을 고려할 때 유라시아 대륙을 가러질러 일본에 정착한 코카서스 인종(백인)에 속한다. 일본어는 아시아의 알타이어족 중에서 터키, 몽골, 시베리아 동부의 퉁구스어에 포함되는데 한국어도 대체로 이 어족에 속한다.

 

아이누족 선조가 만든 조몬문화

빙하기가 끝날 무렵 일본 열도는 큐수 지역에서 한반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고, 홋카이도와 사할린을 연결하는 곳에도 다리가 있었다. 석기시대 유물을 보면 일본 북쪽에서 시베리아와 중국 북부의 석기와 유사하고, 남쪽은 한국과 중국 남부의 것과 흡사하다.

일본 석기시대를 ‘조몬(繩文)문화’라고 한다. 조몬인들은 토기를 사용했다. 조몬 토기는 1만여년전의 것이 규수에서 출토되고, 그후 북쪽으로 전파돼 9,500년 도쿄 일대, 최복단 홋카이도에는 7000년쯤 당도했다.

조몬인들의 주식은 견과류였다. 밤, 호두, 도토리, 침엽수 열대과일등이다. 가을에 견과류를 대량으로 수확해 땅을 파고 지하에 저장했다. 그 외에 딸기류, 과일, 씨앗, 나물, 구근, 새순등을 먹었는데, 고고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조몬 시대 쓰레기 더미에서 확인된 식용 식물이 64종에 이른다. 조몬인들은 해산물도 소비했다. 돌고래를 곤봉이나 작살로 잡았고, 물개와 연어도 해안가 또는 강에서 수확했다. 어망을 이용하거나 뼈를 깎아 낚시 바늘도 사용했다. 멧돼지와 사슴, 산양도 사냥했다. 조몬인들은 1m나 되는 크고 무거운 토기를 사용함으로써 수렵·채집의 유목 문화에서 정주 문화로 생활 패턴을 바꾸었다.

▲ 아이누족의 생활모습

 

한반도 이주민이 야요이 문화를 이끌었다

BC 400년이 되면서 일본 고대문화의 양태가 급변한다. 새로운 생활양식은 규슈 북쪽 해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한해협을 두고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곳이다.

새로운 양식은 철기가 사용되고, 농경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논에 물을 대고 벼를 경작하기 시작했으며, 수로와 댐, 제방과 논을 갖추었다. 벼의 유물도 출토됐다.

일본인들은 조몬인들의 생활양식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화를 야요이(彌生) 문화라고 명명했다. 야요이 시대의 토기는 완전하게 한국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다. 확실하게 한국적이다.

야요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작물은 벼였지만, 27종의 곡류가 새롭게 선보였다. 돼지도 사육했다. 야요이인들은 여름에 논에 물을 대 벼를 경작하고, 겨울엔 그 땅이 마르면 기장·보리·밀등을 재배해 2모작을 했다. 야요이인들은 집약적인 농법으로 수확량이 많아졌고, 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났다.

야요이 농경문화는 빠른 속도로 규슈에서 시코쿠, 혼슈로 전해졌다. 규슈에서 도쿄까지 200년, 혼슈 최북단에는 그로부터 100년만에 전파됐다. 철기와 우수한 농법을 보유한 야요이인들이 조몬인들을 쫓아내거나 흡수한 것이다. 야요이 철기는 초기엔 주로 한국(가야)에서 어마어마한 양으로 수입됐고, 열도에서 자체 생산하기까지 수세기의 시간이 걸렸다. AD 300년 초반에 야요이인의 후손들이 일본 열도를 정치적으로 통일한다. 일본 역사에 이른바 ‘고분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무렵 열쇠구멍처럼 생긴 거대한 흙더미의 고분이 혼슈의 기내(畿內) 지방에 형성된다. 일본 사학자들은 이를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고 한다. (이런 형태의 무덤은 한반도 남부에서도 발굴되고 있다. /편집자주)

기내 지역은 일본에서 가장 비옥한 농경지대이며, 오늘날에가 가장 비싼 고베 소고기가 생산되는 곳이다. 1868년 수도가 도쿄로 옮겨지기 전까지 도읍지였던 교토와 나라, 오사카가 위치한 곳이다.

▲ 전방후원형 고분의 대표적인 인덕천황능
DNA 조사에서 일본인이 한반도 이주민임이 밝혀져

그러면 조몬인을 쫓아내고, 오늘날 일본을 건국한 야요이인, 즉 일본인의 조상은 누구인가. 세가지 학설이 있다.

① 조몬인이 점차 야요이인으로 진화하고, 현대 일본인의 먼 조상이라는 설. 현대 일본인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주장이다. 한국인의 유전자가 전해졌다는 설을 일본인들이 환영할수 없기 때문이다.

② 엄청난 수의 한국인이 농업기술과 문화, 유전자를 가지고 이주했다는 설. 조몬에서 야요이로 전환할 때 한반도에서 무려 7만5000명이 이주했다는 주장도 있다.

③ 한국에서 이주민이 건너왔다는 증거는 인정하지만 엄청난 규모가 아니라는 견해. 적은 수의 이주자가 빠르게 불어나 원주민인 조몬인을 압도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5000명이 건너왔다고 하면 700년 이후에 이 이주민은 500만명이 되고, 철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몬인을 제압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첫 번째 학설은 근거가 없고,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학설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는 다수냐, 소수냐의 차이가 있을뿐, 한번도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이 오늘날 일본인의 조상이라는 주장을 지지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두가지 근거를 들었다. 하나는 DNA 조사이고, 두 번째는 언어학적 분석이다.

유전학자들이 최근 몇 년간 고대 인류의 유골에서 DNA를 추출해 현대 현대 일본인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에서 조몬인과 야요이인이 쉽게 구분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조몬인들은 키가 작고 상대적으로 팔이 길며 다리가 짧다. 얼굴은 둥글 넓쩍하고 눈 사이가 멀고 눈두덩이 솟아 올라 있다. 이에 비해 야요이인은 조몬인보다 평균 3~5cm 크고 얼굴은 길고 좁으며, 눈 사이가 멀고 눈두덩이와 코는 평평했다.

조몬인의 두개골은 현대 일본인과 다르고, 현대의 아이누인과 유사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반면에 야요이인의 두개골은 현대 일본인과 닮았고, 한국인과 비슷하다. DNA 구성비율로 조사할 때 현대 일본인은 한국인-야요인 쪽이 우세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일본인들은 한국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고구려어에서 유래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현대 일본어와 아이누어 사이에는 관련성이 거의 없다. 일본어와 한국어에 유사성도 있지만, 차이점도 뚜렷하다.

이에 대해 다이어몬드 교수는 이렇게 해석했다. 고대 한국은 신라·백제·고구려의 삼국에 의해 갈라졌고, 삼국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현대 한국어는 676년에 신라가 정치적 통일을 달성한 후 신라어에서 유래했다. 신라는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신라에 복속된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는 후세에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일부 전해지는 고구려 단어들을 보면 현대 한국어보다 옛 일본어와 더 유사하다.

고대 한국인이 일본에 이주한 BC 400년 경엔 한반도의 언어는 보다 다양한 성격을 띠었을 것이다. 현대 일본어의 기원이 된 한반도 언어는 한국어의 기원이 된 신라의 언어와 달랐을 것이다. 따라서 외모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은 닮았지만, 언어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고 다이아몬드 교수는 설명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아랍인과 유대인의 경우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같은 피를 나누었지만, 오랫동안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우며 반목해왔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이므로, 고대에 쌓았던 유대 관계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하는지 여부에 따라 두 나라의 정치적 미래가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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