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전망은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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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전망은 '흐림'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0.10.06 14:4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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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수상 토빈 교수 제안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핀란드 중앙은행, '아반트'라는 디지털 화폐 발행...세계 최초 실험
디지털 화폐, 장점 보다 단점이 더 크다는 평가...금융위기 초래 우려도
암호자산 시장에 금융위가 관여하는 것 바람직하지 못해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관한 관심이 뜨겁다. 언론뿐만이 아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많은 중앙은행들이 CBDC 구축을 목적으로 컨설팅을 받거나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디지털 유로’라는 상표등록까지 출원했다.

이쯤 되면, CBDC 발행이 머지않은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글은 그런 추측을 하는 분들에게 “소설 쓰신다”고 알려드리는 데 목적이 있다.

CBDC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토빈 교수가 이미 1987년 제안했다. 중앙은행이 컴퓨터를 이용하면 지점망을 넓히지 않고도 민간을 상대로 직접 요구불예금을 수취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예금보험제도가 필요 없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상당히 전위적인 주장이었다.

5년 뒤인 1992년 토빈의 제안이 핀란드에서 현실화되었다. 블록체인기술이나 예금보험제도와는 상관이 없었다(핀란드의 예금보험제도는 2011년에서야 도입되었다). 핀란드는 인구가 적어 조폐기관을 별도로 유지할 형편이 못 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전 국민을 상대로 직접 아반트(Avant)라는 카드형 디지털화폐를 발행한 것이다(영업난에 허덕이던 핀란드의 조폐기관은 2005년 결국 덴마크 소재 민간기업에 매각되었다. 현재 핀란드에는 조폐시설이 없다). 아반트는 전위(前衛)라는 뜻이다.

핀란드중앙은행이 발행했던 스마트 카드 아반트.
핀란드중앙은행이 발행했던 스마트 카드 아반트.

최초의 CBDC는 핀란드가 이미 시도해

아반트는 일정 금액을 충전해서 쓰고, 분실하면 재발행이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통카드와 똑같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전위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핀란드중앙은행은 1995년 발행을 돌연 중단하고 그 사업을 민간은행에 매각했다. 중앙은행이 선불카드 사업을 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회의론 때문이었다. 중앙은행이 민간을 상대로 직접 자금을 수취하는 것은 전위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행적이다.

약 50만장 정도 발행되다가 중단된 아반트 카드는 CBDC의 모의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경험을 통해 핀란드중앙은행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우선 CBDC를 발행하려면, 발행의 당위성부터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또한 법률 장벽도 높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반트 카드는 법화(legal tender)로 인정받지 못했다. 스마트카드를 인식하는 단말기가 없으면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은 “모든 거래에서 무제한 통용”되는 법화의 기본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문제가 그 정도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CBDC 발행은 금융시스템에서 통화정책에 이르기까지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 기술개발과 보급에만 신경을 썼던 핀란드중앙은행은 그런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1995년 아반트 사업을 서둘러 중단하고 민간에 매각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지난 4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과 관련한 업무추진 일정 이다. 자료=한국은행
지난 4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과 관련한 업무추진 일정 이다. 자료=한국은행

CBDC는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어

은행권과 주화가 사라지고 CBDC가 보급되면 금융시스템과 통화정책에 어떤 일들이 생길까?

CBDC가 전 국민에게 본격적으로 발행되면, 상업은행의 요구불예금이 사라진다. 안전성 면에서 중앙은행이 상업은행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여 가계와 기업들이 요구불예금을 중앙은행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그로 인한 장점은 금융위기 때 뱅크런(bank run) 즉, 예금인출소동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예금보험제도가 불필요해 진다. 그것이 첫 번째 효과이고, 토빈 제안의 핵심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순간 우체국예금도 사라진다. 중앙은행이 전 국민을 상대로 일일이 예금을 수취하고 그 영업수익을 정부에 납입한다면, 정부가 우체국예금제도를 따로 유지할 이유가 없다.

한편, 요구불예금이 중앙은행으로 흡수되어 사라지는 현상이 상업은행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협적이다. 가장 저렴한 자금조달수단이 사라짐으로써 저축성예금과 은행채 등 금리가 높은 수신상품만 남는다. 결국 상업은행들은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게 된다. 그만큼 금융시스템은 불안해진다. 그것이 두 번째 효과다.

세 번째 효과는 사회적 후생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단기 수신수단을 잃은 상업은행들은 장기조달-장기운용의 방식으로 살아남게 된다. 상업은행의 존재이유는 단기로 수신한 자금을 장기로 운영하는 만기전환기능(maturity transformation)에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지면 사회적 후생수준이 하락한다.

한편,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더라도 여신은 여전히 은행을 상대로 실시될 것이다. 그때 은행이란, 단기 운전자금이 아닌 장기 설비자금(장기 운용)을 공급하는 기관이다. 상업은행이 사실상 투자은행이 되고, 중앙은행이 투자은행의 투자 밑천을 제공하는 기구가 된다.

그런데 단기 운전자금 공급(상업어음 할인)과 달리 장기 설비자금 대출은 부동산 담보대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담보물의 가치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현금흐름 기대액에 좌우된다.

그래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 대출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 고용이나 생산 등 현재 경제상황과 대출 간의 거리는 멀어진다. 결국 돈을 풀어도 고용이 늘어나지 않고, 물가도 꿈적이지 않는 상황이 초래된다. 그것이 네 번째 효과다.

중국은 인민은행이 중심이 되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에 맞춰 '디지털 화폐"를 유통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중국은 인민은행이 중심이 되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에 맞춰 '디지털 화폐"를 유통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기술에 집착하는 중국에게 금융패권은 그림의 떡

결론적으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은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현실화되기 전에 점검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발행을 서두르지 않는다. 법률적 측면과 금융시스템 상의 잠재적 위험까지 두루 검토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뉴스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만 특이하다. 현재 블록체인기술과 관련해 80여 개의 특허를 취득하는 등 IT 문제에 집착한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맞추어 CBDC를 정식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4개 지역에서 열심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반면 미래의 금융시스템 설계에 관하여 고민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중국이 그만큼 금융의 후진국이고, 그래서 미국을 좇아갈 수 없다는 반증이다. 중국은 2천 년 전부터 비단을 수출해 왔지만, ‘비단장수 왕서방’으로 그쳤다. 그 비단으로 세계를 주름잡은 것은 이탈리아였다.

화폐문제도 똑같다. 깨끗한 지폐를 쓴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신기술로 화폐를 만든다고 금융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새로운 금융시스템 설계에 관심을 두지 않고 기술에만 몰입할수록 금융 패권은 계속 미국에 머무를 것이다.

인구 14억 명의 중국이 모르는 것을 인구 600만 명의 핀란드는 알고 있다. 이미 CBDC를 발행한 실전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다. 중국인민은행이 CBDC를 통해 디지털 금융패권을 노린다는 말을 들으면, 핀란드중앙은행이 보일 반응은 뻔하다.
“소설 쓰시네.”

< 덧붙이는 말 >
중국인민은행이 CBDC를 발행한다면, 한 가지 효과는 확실하다. 민간 암호자산의 가격이 일제히 하락하는 것이다. 블록체인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실제 화폐가 아무 프리미엄 없이 유통되는데, 같은 기술이 적용된 민간 암호자산에 프리미엄을 지불할 이유는 없다.

지금도 암호자산의 가격은 기술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 희소성이나 주관적 선호, 유명세 등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 점에서 예술품이나 골동품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암호자산 유통시장은 금융위원회가 아닌 문화체육관광부가 감독하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처럼 암호자산 거래소를 금융위원회가 관리하면, 투자자들이 암호자산을 일반 금융상품(발행인에 대한 청구권)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만일 비트코인의 이름이 비트애플이었다면, 농림수산부가 관리했을까? 물론 아니다. 이름과 실체는 별개다. 정책당국은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암호자산을 개발한 사람들이 똑똑하다면, 그것을 다루는 정책당국도 똑똑해야 한다.

암호자산 문제에서 손을 떼는 금융위가 똑똑한 금융위다. (암호자산 거래소가 돈을 다룬다는 이유로 금융위가 이들을 관리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헌금과 시주를 받는다는 이유로 금융위가 교회와 절을 규율하려는 것과 같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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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학연 2020-10-06 19:19:00
미국 중국이 하니 한국같은 조무래기 나라는 따라갈수밖에없는거지 지가 뭔데 하네마네 ㅎㅎㅎ 위안화가 달러 잡아먹으러 디지털 화폐 시행하려 눈에 독을 품고있는데 이래서 시대흐름을 못따라오는 꼰대들은 명태퇴하고 젊은 감각의 새 젊은이들에게 일자리 넘겨줘야하는거임.......나라가 발전이없어 발전이 이런 쌍팔년도 살던 마인드때문에...이런 옜날 꼰대들은변화를 싫어해 스티브잡스봐라 어이구 한심 꼰대같이 해서 지금의 애플이 있었겠니? 자기얼굴에 침뱉기라는것도 모르고 칼럼을 이렇게 쓰네 ㅎㅎㅎㅎ 현찰은 언제까지 쓸꺼같니? 지금도 현금들고다니기 귀찮아서 간편하게 카드만 쓰는세상인데
디지털화폐와 암호화 화폐를 동일시 착각하고있네 ㄷㄷㄷ

Lee 2020-10-06 15:26:12
기존에 금융권인분이 쓴글이라서 그런거.. 부정적인게에 포커스를 두고 쓴거 같은데

김장현 2020-10-06 21:16:25
한국은행이 현 시대에 맞게 연구하고 정책대응을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와 지난번에 말씀하신 Redenomination도 중앙은행 몫으로 충분한 연구를 통하여 미리 마련하여 갖추어 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