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망가진 의료 전달체계...어떻게 고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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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망가진 의료 전달체계...어떻게 고칠 것인가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20.10.06 17:2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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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료기관을 '공공의료원'으로 만들 순 없어
환자와 의료기관이 원하는 체계를 만들자
환자와 의료기관 자율성 높이는 방안 찾아야
김장한 울산대·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울산의대에 근무하는 기초 교수인 필자는 본의 아니게 서울아산병원을 배경으로 가지게 된다. 그러면 환자를 보지도 않으면서, 능력에 어울리지 않게 병원 외래 진료, 입원 부탁을 받게 된다. 그나마 김영란법이 제정 이후로 핑계거리가 생겼지만, 개인적으로는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다.

시골이나 서울이나, 부탁하는 이들의 입장은 절박하다. 아들, 부모, 배우자, 배우자의 부모, 친척, 친구가 아픈데 원인을 알건 모르건, 치료 방법이 있건 없건 무조건 서울 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한다. 필자가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하면, ‘그러지 말고 힘 좀 써보라’고 한다. 굳이 올라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럴 것 같으면 앞으로 날 볼 생각하지 마쇼.’다. 시골에 계신 누님의 응급실 입원을 부탁하는 후배에게 내 권한 밖의 문제라고 했다가 전화상으로 절교를 당한 씁쓸한 기억도 있다.

'의료는 공공재'라고 말하지만

‘의료는 공공재’라는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참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 같다.

정권 초기 ‘문재인 케어’는 병원 특실이나 2인 입원실을 줄여서 다인실을 만들고 비싼 MRI, CT, 초음파 검사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들이 서울에서, 특히 소위 '빅 5' 병원에서 저렴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럼 그래야지. 돈 없는 사람도 큰 병원가서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야 좋은 나라 아니겠어!’ 선거 표에 도움이 되면서 정의 관념에조차 합당하니 정치인 공약치고 이보다 좋은 것은 없을 듯하다. 지지도에 도움이 되는 듯하니 좀 더 많은 질환에 초음파, MRI 급여를 확대하는 정책을 만들게 된다.

의료 접근성을 낮추는 것에 힘입어서 이제는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아프실 때 서울에 있는 병원에 모셔서 치료받게 하지 않으면 불효자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됐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상급종합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초진을 받기 위한 대기 시간이 몇 달씩 늘어지는 대신에 외래에서 교수님을 만나서 진료하는 시간은 2, 3분을 넘기 힘들게 됐다. 

대형병원 진료는 자동화 공장 시설처럼 돌아가고 경영진은 진료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과도한 진료량을 소화하는 의사들에게 급여를 더 주는 '진료 인센티브'를 강화해 나갔다. 그 사이에 중소급 병원과 의원의 환자 수가 급감하는 의료 양극화가 진행됐다. 경영난을 버티지 못한 병·의원의 폐원과 규모 축소로 인해, 지방 의료에 공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병원내 내원객들이 진료 대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서울대학교병원내 내원객들이 진료 대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서울대병원/연합뉴스

정부의 정책 목표가 애초에는 복잡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측컨대 의료 보험 재정 지출이 좀 많아지지만,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감안하면 견딜만하다고 본 것 같다. 하지만 예상외로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가 심해지면서 건강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국민들의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정치인들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급여 확대 정책은 스스로 심한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정부는 지역 의사제와 공공의대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의사라는 직업이 인기가 좋으니까 이것을 이용해 좀 쉽게 의사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이렇게 길러진 인력을 시골 지역이나 공공 의료 영역에 투입하는 계획이다.

혹자는 전교 1등을 한 의사가 아닌 인간미가 풍부한 의사로부터 치료받고 싶다고 하지만 공부 잘한다고 인간미가 없는 것도 아닐텐데, 밑바닥 정서에는 의료는 공공재니까 인력 투입을 못할 이유는 없다가 다시 깔리게 된다. 시골 사람들도 이제는 서울 큰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또 원하면 시골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상 낙원급' 정책을 만든 것이다. 모두가 행복할 것 같으니까 여야, 국민 모두 찬성하게 되고, 반대하면 '의료 이기주의'라고 한다.

이 정도 상황이면 의료의 본질이 어쩌고, 소명 의식이 저쩌고 하는 것은 제레미 벤담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nonsense upon stilts)’라고 한 ‘자연권(natural rights)’이 된다. 이 정책이 과연 다수의 행복을 가져올 지, 그것만이 판단 기준이 된다.

가능한 비판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현 정책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 시골 사람들은 죽으란 이야기냐’고 바로 반론을 한다. 이 반론은 생명에 대한 권리는 너무나 소중해서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자연권 아닌가?). 하지만 의료 자원의 낭비는 결국 다수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중환자실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거나 응급실이 부족하여 치료를 못 받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결국 이 정책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도 선택하면 안된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청사. 사진=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 청사. 사진=연합뉴스

환자와 의료기관이 원하는 체계를 만들수 없나

그럼 해결책은 없을까? 흔히들 환자가 좀 불편해야 의료 전달체계가 확립된다고 하는데, 이건 완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현재 우리나라는 1차, 2차, 3차 의료 전달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있다. 개인 소유 의원들이 1차 의료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진정한 문지기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고, 환자의 욕구에도 반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정부도 환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 효율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장기적 관점을 가졌으면 한다.

현재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사실이 생태학적으로는 가장 정확한 균형점이라는 시각에 기반해 나름의 정책을 제언하고자 한다. 의료 체계는 환자가 몰리는 3차 병원을 시작점으로 하여 2차, 1차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회송하는 하방 전달체계를 원칙으로 보는 것이 맞다. 현재는 ▲3차 병원 외래 접수를 위해 진료 의뢰서를 발급받아 오거나(앞으로는 진료 회송 시스템을 이용하여 의사가 직접 의뢰한 경우를 우선 접수, 진료하게 하고, 환자가 요구하는 종이 진료 의뢰서는 폐지하거나 본인 부담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 중), ▲3차 병원 외래 수가를 높게 책정하거나(현재 상급 종합 병원은 가산수가 30% 지급), ▲경증 환자가 진료비를 많이 내도록(본인 부담률 60% 이상 상향)하는데, 이런 이상한 제도를 자꾸 만들 필요도 없다. 공단 관리 비용도 많이 든다.

3차 병원에서 외래를 자유롭게 보도록 하고(환자가 원하니까), 경증 환자들은 3차 병원에서 1, 2차 의료기관으로 알아서 회송하도록 수가를 책정하면 된다. 그러려면 3차 병원 외래 진료 수가는 낮추어야 하고 2차, 1차 의료 기관으로 회송한 환자 진료(회송 수가를 만들고)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에서 일정한 조건을 정하여(진료를 협업하면) 양측 의료기관에 원격 의료 수가를 인정하면 된다.

문지기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3차 병원 의사들은 진료 수입에 따른 인센티브 한도를 제한하거나 아예 못 받도록 하는 것도 좋다. 이에 더하여 자영업자인 1차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을 선택제로 하는 것이 좋다. 국민건강보험을 사보험과 서비스 경쟁을 하도록 하고, 1차 의료기관이 사보험을 선택하면 국민건강보험 환자는 받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 매년 의료 수가를 정하는 문제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 비급여 통제 문제, 공공 의료를 위한 의료 인력 증원 문제나 주치의 제도 도입과 같은 의료 제도 개선에 사회적으로 토의할 여유가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관리 모형은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에 유럽식 사회주의 제도를 엎은 체계 모순이 있는 억압적 구조이다. 그래서 의료 제도가 바뀌는 작은 문제에도 사회적 갈등이 심하게 발생한다(그래서 대한의사협회는 투사형 회장을 선호하고, 정부는 곧잘 공청회를 생략한다). 모든 의료기관을 공공 의료원으로 만들 계획이 아니라면, 의료제도에도 숨 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와 의료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새로운 의료전달체계 해결책으로 제시해 본다.

●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 의대와 법대 및 동 의대, 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하고 법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법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두루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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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동이 2020-10-08 11:03:24
칼럼을 읽으면서 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만큼 좋은 의견을 내시는게 같습니다. 다만 민간의료 보험과 분리하면 나중에 공공의료 서비스 질이 점점 떨어지지는 않을지 우려됩니다.

큰그릇 2020-10-08 08:35:32
지당하신 말씀에 적극 찬성 합니다.

홍마리오 2020-10-08 11:16:47
좋은의견에 공감합니다.

모바일큰손 2020-10-06 19: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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