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나훈아가 던진 ‘대한민국 어게인과 테스형’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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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나훈아가 던진 ‘대한민국 어게인과 테스형’ 화두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10.03 15: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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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솔직한 발언, 진정한 예인(藝人)이자 자유인 풍모 보여줘
공익 보다 불공정·부정의 둘러싼 진영대결로 허송세월 보내는 현 정치권 비판
여야정치권, 협치와 대의민주주의 운영에서 정상적 복원 필요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교수] 이번 추석민심을 보여주는 화제중 하나는 나훈아 열풍이다. 15년 만에 방송에 출연해 열정적인 무대와 특유의 입담을 선보인 가황(歌皇) 나훈아에 대해 국민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의 변함없는 가창력과 열정에 시청자는 열광했다.

그가 공연 사이마다 던진 “아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 등 소신발언들은 ‘촌철살인’으로 정치권의 화제가 되었다.

KBS가 지난달 30일 방송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전국 시청률 29.0%(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당일 지상파 시청률 1위를 당당히 차지했다. 이런 시청률은 이번 공연이 시청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자아내고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국민들의 열광에 정치권 반응도 다양

나훈아는 2시간 반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 총 30곡을 열창하며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했고 거침없는 소신 발언으로 진한 감동과 함께 시원함을 더했다. 시청자들의 나훈아 열광에 대해 정치권도 반응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늦은 밤인데 가슴이 벌렁거려서 금방 잠자리에 못 들 것 같다. 나훈아 때문”이라며 “저만 이런 것 같진 않다. ‘가황(歌皇)’이 추석 전야에 두 시간 반 동안 온 국민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힘도 나고 신이 났다. 그런데 한켠으론 자괴감도 들었다. 이십 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나름대로 애를 쓰곤 있지만 이 예인(藝人)에 비하면 너무 부끄럽기 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반응했다.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훈아 콘서트 기사를 공유하면서 “인생의 고단함이 절절히 녹아들어 있는 그의 노래는 제 인생의 순간들을 언제나 함께했고 그는 여전히 저의 우상”이라며 “그런 나훈아님의 ‘이제 내려올 때를 생각한다’는 말에 짧은 인생의 무상함도 느낀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조금 더 오래 팬과 대중 속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코로나가 걷힌 언젠가 실황 공연장에서 사인 한장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이번 공연에서 특이한 점은 ‘대한민국 어게인’을 향한 나훈아의 소신 발언이 정치권을 들썩이게 만든 점이다. 어째서 그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을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에는 70살이 넘는 나이에도 찢어진 청바지와 난닝구를 입고 “대한민국 어게인”과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를 화두로 꺼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돈과 권력에 아첨하지 않으며 주눅이 들지 않는 양심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말하는 진정한 예인(藝人)이자 자유인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그의 솔직하고 용기있게 말하는 모습은 그리스 말로 ‘파레시아스테스(parresiastes)’와 닮았다. ‘파레시아’는 고대 그리스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모든’을 뜻하는 ‘pan’과 ‘말’을 뜻하는 ‘rhesis’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말로, ‘진실을 말하는 용기, 위험을 감수하는 말하기, 비판적 태도’ 등으로 다양하게 일컬어진다. 한마디로, 파레시아는 ‘남김없이 모두 다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이다.

그래서 ‘파레시아’는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에 따라 설득 대신 정직을, 허위나 침묵 대신 진실을, 생명과 안전 대신 죽음과 위험을, 아첨보다는 비판을, 도덕적 무력이나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도덕적 의무를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에서 파레시아 정신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실천가를 파레시아스테스(parrhesiastes)라고 칭했다.

소크라테스를 소환하며 나훈아가 한 말은 

대표적인 파레시아스테스는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왕의 권력과 아첨꾼들의 궤변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는 민중을 현혹하며 자기 기만에 빠진 아첨꾼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언행과 양심의 불일치를 돌보고, 배려해서 자유로운 주체로 바로 설 것을 당부했다. 소크라테스는 선동가들의 아첨과 함께 자기 자신의 내면을 현혹하는 나르시시슴적 아첨을 경계했다.

당시 파레시아스테스와 경쟁했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서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우중정치와 선동정치로 몰고 간 아첨꾼의 상징인 소피스트와 포퓰리스트였다.

파레시아스테스로서 나훈아의 화법은 조국사태, 윤미향 사태, 추미애 장관 아들사태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불공정과 부정의 여부를 놓고 다투는 정치권의 ‘자기진영 감싸기’와 ‘자기진영 아첨’과 달랐다.

나훈아의 솔직한 발언은 부와 권력의 자식세습을 위해 진영논리에 아첨하고 ‘빠’의 결집을 선동하며 비루하게 사는 소피스트와 포퓰리스트를 닮은 정치권의 구태와 대비된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본격적으로 나훈아는 ‘테스형’이란 신곡에서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그리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에게 형이라 부르며 “세상은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드냐”고 따져 묻는 논객의 역할까지 한다.

이 모습은 플라톤이 쓴 ‘국가론 Republic’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고 따져 물었던 트라시마코스와 닮았다. 또한 나훈아는 “왕이나 대통령이나 국민을 위해 죽은 사람 한명도 못 봤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공은 바로 국민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 역시 소크라테스에게 정치가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를 놓고 논쟁하는 트라시마코스를 닮았다.

이런 나훈아의 소신발언은 추석 연휴 이후 정치권의 협치를 촉구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야정치권은 연평도 해역에서 우리 공무원이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책임 소재와 진상 규명,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관련 의혹을 두고 공방을 해온 게 사실이다. 특별한 사정의 변화가 없는 한, 연휴 이후에도 국정감사를 앞둔 여야의 당리당략에 따른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여야의 적대적인 공방과 대립에 국민은 지쳐있고, 불신을 보내온 게 사실이다. 여야정치권은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과 혐오가 하늘을 찌르고 반감이 커질수록 기득권타파를 명분으로 대의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아 집권을 노리는 포퓰리스트에게 먹잇감이 되어 공멸할 수도 있음을 깨닫고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아첨하는 포퓰리스트들에게 희생양이 되지 않고 국민적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야정치권 모두 협치와 대의민주주의 운영부터 정상적으로 복원하는 게 필요하다. 

지난 9월30일 KBS에서 공연한 나훈아. KBS2 캡쳐
지난 9월30일 KBS에서 공연한 나훈아. KBS2 캡쳐

나훈아의 발언이 정치권 협치를 이끌까

여야협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나훈아 소신발언’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은 나훈아가 정치권에 던진 ‘대한민국 어게인’과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화두가 무엇인지, 그리고 국민들이 왜 거기에 폭발적으로 호응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나훈아는 어떤 발언을 했을까? 첫째, 그는 공연 초반부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내가 꼭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며 공연에 직접 나서게 된 배경을 말했다. 이런 발언은 ‘대한민국 어게인’이란 공연 제목처럼, 그가 대한민국에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한 공익목적에 얼마나 신경쓰고 헌신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공익목적을 위해 출연료를 받지 않고 ‘노개런티’로 공연을 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익추구와 부정부패를 일삼는 일부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행태와 대비된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온 국민과 함께 힘을 내고 희망을 전달하는 취지에서 기획된 공연인 만큼, 그가 얼마나 열과 성의를 다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공연 중간, 김동건 아나운서와 대화에서는 그가 국가훈장을 사양한 사연을 털어놓으며 가수로서 직업적 소명의식에 대한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세월의 무게도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운데 훈장을 달면 그 무게까지 제가 어떻게 견딥니까.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고 여러분 앞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훈장, 지위, 감투에 연연하면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정치인과  공무원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가 부와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예인(藝人)으로서 직업적 소명을 다하고 있는 대목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셋째, 공연 중 그는 신곡 ‘테스형’을 부른 후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렇고 세월은 또 왜 저러냐고 물어봤더니 테스형도 모른다고 하더라. 세월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훈아는 “두고 보세요. KBS, 거듭날 겁니다” “KBS가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KBS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이런 모습들은 부드러운 위트와 함께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언론권력이 양심의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지적했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파레시아스테스’와 닮았다.

넷째, 공연 후반부에 그는 코로나 사태에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힘을 내자고 독려했다. 그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힘들고 많이 지쳐 있습니다. 저는 옛날 역사책을 보든 살아오는 동안을 보든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는 바로 오늘 여러분이 지켰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국가의 주인으로서 국민의 힘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나쁜)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 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 1등 국민입니다. 분명히 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들은 국민의 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쓴소리로 들린다. 왜냐하면 국민과 국가의 공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부와 권력의 자식세습 등 불공정과 부정의를 둘러싼 진영대결의 공방에 휘말려 허송세월을 보내는 현 정치권의 모습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나훈아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자기 성찰적 질문을 세상과 정치권에 던졌다. 정치권도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과 함께 ‘세상이 왜 이래’라는 나훈아의 질문에 진단과 처방으로 답할 때가 되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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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기 2020-10-03 17:23:59
“KBS가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