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리포트] 美 차기 대법관 임명, 대선 '빅이슈'로 떠오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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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리포트] 美 차기 대법관 임명, 대선 '빅이슈'로 떠오른 까닭은
  • 권혜미 뉴욕통신원
  • 승인 2020.09.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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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긴스버그 대법관 사후 차기대법관 임명 강행
민주당 "차기 대법관은 대선 후 신임 대통령이 임명해야"
진보진영 아이콘 긴스버그 장례식 25일 의사당서 거행
권혜미 뉴욕 통신원.
권혜미 뉴욕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권혜미 뉴욕통신원] 미국은 지금, 최근 20여년간 사회적 가치와 문화를 결정 지었던 한 대법관의 퇴장으로 인해 정계와 선거판이 뒤흔들리고 있다.

미국 진보진영의 아이콘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Ruth Bader Ginsburg)대법관이 지난 18일(현지시간) 87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대선을 앞 둔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긴스버그에 대해 추모하면서 공석이된 대법관 임명을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40여일 앞으로 다가 온 이번 대선에 긴스버그 후임 대법관 임명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종신직인 대법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대선 후보이기도 한 트럼프 대통령이 공석이된 대법관에 누구를 임명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떨어지는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민주당 진영은 그동안 관례를 앞세워 대선이전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을 반대하고 있다. 긴스버그 대법관이 “차기 대법관은 이번 대선이후 새 대통령이 정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것도 민주당이 차기 대법관 임명 반대의 명분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미국 긴스버그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지난 1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미국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선이전 대법관임명 강행 모드 

트럼프 선거캠프는 대법관 이슈를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키면서 신임 대법관으로 보수쪽 인사를 임명해, 보수적 유권자를 결집시키고 부동층도 끌어모으겠다는 전략이다. 

긴스버그 별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 이전 새로운 대법관을 인선하고 상원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공석이된 대법관 임명을 통해 자신의 약점인 코로나 대응 실패와 실업 문제를 포함한 경제 문제로부터 유권자들의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지난 18일 긴스버그 대법관이 세상을 떠난 후 미치 맥코넬 (Mitch McConnell)공화당 상원 원내 대표는 "대법관 청문회와 인준을 밀어붙이겠다"고 발표 했다. 공화당이 다수 당인 상원에서 상원 의원 표가 51표만 있어도 대법관을 인준할 수 있다. 

현재 공화당 상원의원이 53명이고 민주당이 47명인 상황에서 이탈표가 생겨 50 대 50인 상황이 와도 상원 의장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이 선택한 후보가 대법관이 될 가능성은 높다. 

대법관 임명에는 보통 70일이 걸리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는 11월 3일 대선까지 42일 남은 상황에서 대법관 임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반면 민주당과 바이든 후보 측은 새로운 대통령이 대법관을 인선해야 한다면서 인준을 서두르는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 선거 캠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척 슈머(Chuck Schumer) 민주당 상원 원내 대표는 “새로운 대통령이 뽑힐 때까지 인준을 강행하면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인들은 새로운 대법관에 대한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면서 오바마 정부 말기인 2016년 안토니 스칼리아 판사를 임명했을 때 공화당이 똑같은 이유로 반대한 성명을 트위터에 올렸다. 

긴스버그 대법관 사후, 차기 대법관 임명을 놓고 조 바이든(왼쪽) 민주당 대선후보와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정반대 입장을 내놓고 지지자 결집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긴스버그 대법관 사후, 차기 대법관 임명을 놓고 조 바이든(왼쪽) 민주당 대선후보와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정반대 입장을 내놓고 지지자 결집에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장례도 안끝났는데...백악관은 이미 대법관 후보 검증 중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긴스버그 대법관 후임을 여성 판사 중에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인증 기간을 줄이기 위해 이전부터 대법관 후보로 떠오른 여성 후보 5명를 검토 중에 있다. 이 중에 가장 유력하다고 알려진 후보는 에이미 코니 바렛 (Amy Coney Barrett) 판사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고 7명의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한 바렛 판사는 낙태 반대 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현지 언론은 강경 보수인 바렛 판사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보수진영 표를 끌어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이미 바렛 판사를 백악관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다. 

바렛 판사에 대해 성소수자(LGBT)를 포함한 진보 진영의 반발은 거세다. 미국 법원 역사상 지난 1973년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기념비적인 로 대 웨이드 (Roe v. Wade)판례는 '동성 결혼이나, 고용 시 젠더에 따른 성차별 금지 등 기존의 인권 관련 주요 대법원 판결에 대해 보수화된 다른 판결을 할 수있다'고 명시한바 있다.

백악관이 검증 중인 다른 후보에는 히스패닉계 판사도 있다. 이 역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낮은 히스패닉계 표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쿠바 난민의 딸인 히스패닉계 바바라 라고아(Barbara Lagoa)판사는 플로리다 출신으로, 대부분의 대법관 후보들이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경력을 쌓은 것과는 달리 커리어를 히스패닉이 많은 플로리다에서 보냈다.

만약 라고아 판사가 대법관 후보에 오른다면 미국 역사상 히스패닉계로는 두 번째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24일 플로리다 유세 때 라고아 판사를 만날 계획이다.

대권 승리를 위해 선거인단 수가 많은 플로리다에서 꼭 승리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히스패닉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라고아 판사의 지명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현지언론에선 보도하고 있다.  

'투표에서 이기자'...민주당, 긴스버그 사후 선거자금 1억달러 모금    

한편 미국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결정하는 대법원 판사의 임명을 두고 정치 진영에 따라 유권자들의 반응이 선명하게 갈리고 있는 가운데 진보 진영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긴스버그 대법관의 세상을 떠난직후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번 대선과 함께 치뤄지는 상·하원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선거자금 모금 사이트인 액트블루(ActBlue)로 몰려들었다. 

긴스버그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90분 만에 이 사이트에는 620만달러가 기부됐다. 액트블루가 시작된지 16년 만에 ‘최단 기간·최대 정치 모금액’을 기록했다. 이 기록이 세워진지 한 시간 뒤에는 추가로 630만 달러가 더 모여 시간 당 10만달러 이상이 민주당 후보 선거자금으로 몰려들었다.  

긴스버그 대법관 사후, 민주당 선거자금 모금은 새로운 기록을 연일 쓰고 있다. 현지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 강행 움직임에 반대하고, 긴스버그 대법관을 지지했던 민주당원들이 선거자금으로 결집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통령이 후임자를 결정하게 하라’는 긴스버그 대법관의 유언을 무시하고, 긴스버그가 세상을 떠난 당일 "11월 초 대선 전에 대법관을 임명하겠다"고 밝히자, 즉각 액트블루에 민주당원 120만 명이 몰려들어 706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로써 긴스버스 별세 이후 28시간 만에 민주당은 총 1억 달러를 온라인 선거 자금으로 모았다. 

이를 지난 8월 한 달 동안 대선 선거자금으로 트럼프와 공화당은 2억 1000만 달러, 바이든과 민주당은 3억 6450만 달러를 모금한 총액과 비교하면 적은 액수지만, 긴스버그 대법관 사후 단 20여시간 만에 모금된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엄청난 열기가 느껴지는 한 장면이다.  

이는 트럼프가 최근 유세에서 ‘새로운 판사를 임명하자! (Fill that seat!)’를 지지자들에게 외치라고 주문하고 새로운 선거 구호로 외치자 긴스버그의 업적을 존경하고 지지하는 민주당과 진보주의자들이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의 낙선을 보고야 말겠다는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美 대법, '박빙대선' 투표결과 최종판단

미국인들이 사법부의 최상위 기관인 대법원의 9명 판사의 지명에 정치적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대법관의 성향에 따라 미국인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사회, 문화적 주요 결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 인준에 성공하게 된다면 그는 한 번의 임기 안에 세 명의 대법원 판사를 임명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된다. 전임자인 오바마, 부시, 클린턴 대통령도 두 번의 임기 내에 두 명의 대법관만 임명했었다. 세 명을 임명한 유일한 대통령인 레이건 대통령이 있지만 두 번의 임기에 걸쳐 임명했었다. 

그 동안 진보 보수 정권을 교차하는 동안 9명의 판사의 성향이 적절한 균형을 이뤘었는데 이 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보수주의자를 새로운 판사로 임명하게 되면 종신 임기인 대법관의 특성 상 한 동안 미 대법원의 판결이 우경화 될 수 있다. 

이 경우 보수주의자들과 종교계의 숙원인 낙태 금지는 물론 긴스버그 대법관이 지켜 온 성소수자(LGBT) 인권, 종교적 자유 문제, 민주당이 추진한 의료보험인 오바마 케어 등이 재해석 될 수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는 미국 투표권에 대해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권한이 대법원에 있다는 점이다. 우편 투표가 실시되는 올해 대선 투표 이후에 느린 개표와 개표 결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차기 대통령을 결정할 수도 있다.

지난 2000년 공화당 조지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맞붙은 대통령 선거에서 미 대법원은 플로리다주 재검표를 중단시키고 결과를 확정지은 적이 있다. 향후 미 대법원 판사의 임명 과정이 바로 미 정치의 최대 쟁점이 되는 이유이다.  

故 긴스버그 장례식, 의사당서 25일 거행   

故 긴스버그 대법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1993년 미국 역사 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한 후 지난 27년 동안 양성 평등, 여성 권리, 인종 문제 등 미 진보적 가치의 수호자이자 페미니스트와 진보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명성을 쌓아 왔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미국 국민들은 조화와, 촛불, 사망 소식을 전한 신문 전면 기사와 사진 등을 대법원 앞으로 들고와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런 대중의 애도 열기에 힘입어 지난 21일 긴스버그 유가족, 미 대법원, 미 하원은 추도문을 발표하고 23일부터 24일까지 양일간 미 대법원에 유해를 안치해 대중이 조문할 수 있도록했다. 유해는 25일 미 의회로 옮겨져 장례를 마무리 하게 된다. 진보진영의 큰 별이었던 긴스버그 대법관은 미 의회에서 처음으로 장례식을 치루는 여성으로 기록됐다.   

● 권혜미 뉴욕 통신원은 콜럼비아 대학원에서 조직 심리를 전공한 후 뉴욕에서 부동산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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