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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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0.09.24 17: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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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의 지역경제 살리기 '절박함' 이해해야
지역사회는 동질성의 '운명공동체'...예산지원 옳아
지역화폐 논란, 국책연구소와 지자체간 대화로 '즐겁게 풀자'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코로나19 위기의 극복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얼마나 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은 좀 어색하다. 사회는 사람들이 뭉쳐서 만든 집단이나 무리를 말하므로 거리두기와는 정의상 어울리지 않는다. ‘슬픈 코미디’처럼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사회'는 축제를 의미했다

사회(社會)라는 말에는 주술적 성격이 담겨있다. 사(社)는 대지의 신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서 대지의 신은, 곡식의 신 직(稷)과 함께 국가를 상징했다. 거기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회(社會)란 대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먹고 마시던 축제를 의미했다. 거기에 비해서 서양의 society에는 기능적 의미만 있다. 따라서 일본이 만든 ‘사회’라는 표현은 실패한 번역이다.

청나라의 교육가이자 사상가인 옌푸(嚴復)는 society를 군(群)이라고 번역했다. 여기에는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다. 군은 논어의 ‘군이부당(群而不黨)’ 즉, 무리를 이루어 어울리면서도 사사로이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왔다. 군이부당을 빗대어 말하자면, 오늘날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군이부접(群而不接)이라고 할 수 있다.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지만, 너무 가까이 붙는 것은 경계한다는 뜻이다. 현재 정부의 방침은 군이부접이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들은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지자체들은 비대면 방식의 전자상거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전통시장이나 지역 소상공인 점포에서 대면접촉을 통해 상거래를 하되, 많이 뭉치지 않기만을 바란다. 지자체들의 입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접이불군(接而不群)이다.

지역사회의 화폐 즉, 지역화폐는 접이불군(接而不群)의 요긴한 수단이다. 지역화폐는 동네 구멍가게들의 매출을 촉진하고, 지역사회의 구매력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다. 그런데 그 편익과 비용을 두고 국책연구소와 지자체의 생각이 크게 다르다.

불과 1년전만 해도 명절을 앞둔 지역 전통시장은 활기로 넘쳤다. 언제쯤 활력을 회복할수 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사진= 연합뉴스
불과 1년전만 해도 명절을 앞둔 지역 전통시장은 활기로 넘쳤다. 언제쯤 활력을 회복할수 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사진= 연합뉴스

국책연구소와 지자체간 '지역화폐' 논란

국책연구소는 지역화폐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본다. 모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동시에 사라진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러시아워를 피해서 모든 사람이 1시간 일찍 출근하면, 일찍 출근하는 효과가 사라지는 것을 생각해 보라.

경쟁관계도 고려대상이다. 2000년대 이전 각 지자체는 다른 도에서 생산된 막걸리가 반입되는 것을 막고, 지자체 안에서 생산된 막걸리만 판매하도록 했다. 소위 막걸리 판매지역 제한조치다. 이 조치는 품질개선 노력을 저하시켜 결국 막걸리 시장을 위축시켰다. 경쟁재인 소주, 맥주, 양주 시장만 키운, 실패한 정책으로 끝났다.

지역화폐의 경쟁재는 무엇일까? 말할 필요도 없이 현찰(한국은행권)과 신용카드다. 전국 어디서나 쓸 수 있는 현찰에 비해서 지역화폐는 확실히 열등하다. 신용카드처럼 마일리지 적립도 안 된다. 그래서 지역화폐는 저렴하다. 액면가치보다 10% 정도 할인되어 거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역화폐 발행이 늘어날수록 정부와 지자체가 부담하는 할인비용도 늘어난다. 그것이 국책연구소의 지적이다.

그러나 국가나 지자체의 운영원리는 기업의 운영원리와 다르다. 시장에서 경쟁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정책적으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 지방 문화예술공연이 그 예다. 지방 문화예술공연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흔쾌히 보조금을 지급한다.

지역화폐도 마찬가지다. 지역상권이 위축되고 지역 영세 상공인들의 판매가 심각하게 부진하다면,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화폐 발행에 보조금을 부담할 수도 있다. 그것이 지자체의 기본 시각이다.

어느 쪽의 접근이 옳을까?

경제 논리로만 바라봐선 안되는 까닭

모름지기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당연히 국책연구소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역사회는 local society가 아니라 local community다. community의 어원 commune은 '동질성(common)'을 뜻한다. 동질성을 유지하는 데는 경제원리만 내세울 수 없으며, 포용과 타협도 필요하다.

community는 society보다 훨씬 끈끈한 개념이다. society는 의지적 공동체인 반면, community는 운명적 공동체다. 바로 이것이다. 지역화폐를 둘러싼 국책연구소와 지자체의 견해 차이는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이 잘못 번역한 동음이의어(community, society)에서 초래된 차이다.

지역화폐는 local society currency가 아니라 local community currency다. 그렇다면, 접이불군(接而不群)의 수단인 지역화폐 발행은 운명공동체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다. 경제 이외에 정치적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화폐는 결국 정치의 문제다. 국책연구소가 그 점을 놓쳤다.

정치인은 귀에 거슬리더라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실패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The road to failure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는 격언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실패한 정책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귀에 거슬리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편을 나누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공자가 말한 군이부당(群而不黨)의 정신이다. 국책연구소의 이야기도 경청해야 한다.

그러면 당장 정리해야 하는 것이 드러난다. 바로 정부의 예산배분이다. 기획재정부는 지역화폐 발행 보조금을 전국에 골고루 뿌려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전자상거래를 촉진하는 방법을 골몰하고 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벌어지는 ‘슬픈 코미디’다. 2021년 예산에는 제발 이런 일이 없기를 충언한다.

이제부터라도 지역화폐 문제에 관하여 국책연구소와 지자체가 허심탄회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원래 사냥을 마친 뒤 함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커뮤니케이션의 어원도 commune이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제목(Eat Pray Love)처럼.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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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용 2020-10-05 07:37:4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차분히 잘 읽었습니다 주변에 떠 날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