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배고픈 비상임 안무가의 저작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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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배고픈 비상임 안무가의 저작권 분쟁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
  • 승인 2020.09.2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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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 예술단체 계약 비상임 안무가, 자신의 작품 '저작권 보호' 못받아
'업무상저작물' 저작권, 예술가 아닌 법인 귀속 신중해야
'계약서' 쓰지않은 예술단체도 잘못...반드시 서면계약 체결해야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지난 달, 무용 안무의 저작권에 관한 새로운 판결이 나왔다. 시립무용단의 비상임 안무자가 정기 공연을 위해 창작한 안무의 저작자는 지자체가 아닌 ‘안무자’라는 것이다.

예술단체 안무자의 창작물은 누구 것?

작품을 창작한 자가 ‘저작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데, 해당 안무자는 1년이 넘는 소송을 치른 후에야 이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저작권에 관한 계약을 제대로 체결하지 않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단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기에,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사안은 작년 6월 위 시립무용단이 소속된 지자체 의회 행정감사에서 시작되었다. 한 시의원이 이 시립무용단이 소속된 문예회관의 관리 소홀을 지적하는 자리에서 "시립무용단 안무자가 시의 작품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무용제에 출전했다"고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해 지역 언론사가 "시립무용단 안무자가 시의 작품을 도용해 무용제에 출전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작품 도용을 기정사실화 하는 보도를 수차례 하였다. 이 보도는 방송 뿐 아니라 SNS등을 통해 무용계에 순식간에 퍼졌다.

안무자는 자신이 창작한 작품으로 무용제에 출전해 수상을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작품을 ‘도용’한 안무자가 되어 정상적인 활동조차 어렵게 되었다. 안무자는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작품 도용'은 허위사실이라는 주장으로 법원에 정정보도 청구를 한 것이다.

창작자주의 예외 '업무상저작물'이란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말하며(저작권법 제2조 제2호), 이를 저작권법의 '창작자주의'라 한다.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하는 순간부터 작품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인 "저작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창작자주의의 유일한 예외가 "업무상저작물"이다. 업무상저작물은 '법인ㆍ단체 그 밖의 사용자의 기획 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을 말하며(제2조 제31호), 업무상저작물의 저작자는 계약 또는 근무규칙 등으로 달리 정하지 않는 이상 그 법인 등이 된다(제9조).

구체적인 성립요건은 ①법인 등이 저작물의 작성에 관하여 기획할 것 ②저작물이 피용자에 의하여 작성될 것 ③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일 것 ④저작물이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될 것 등이다. 이는 사용자가 저작물의 작성을 구상하는 등 구체적으로 창작에 관여하고, 법인 등과 실제 저작자 사이에는 고용관계 내지 적어도 실질적인 지휘·감독관계가 인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안무자는 관리자의 어떠한 개입도 없이 독자적으로 안무를 창작했음은 물론, 공연의 기획부터 구상, 대본작성, 연출 등 대부분의 작업을 도맡아 진행했으며, 실제 공연 홍보물에도 안무, 대본, 연출에 안무자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당시 무용단의 연습시간은 주 6시간에 불과하여, 이러한 작업은 대부분 사적인 시간에 개인 연습실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2년 임기의 비상임 계약직이었던 안무자는 위촉 시 지자체와 어떠한 형태의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4대 보험, 퇴직금, 근로소득원천징수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 전형적인 프리랜서였다.

이처럼 이 안무자가 창작한 저작물은 업무상 저작물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시 안무자가 받은 적은 보수와 열악한 근무 여건 등을 고려하면 창작자에게 저작권마저 인정하지 않는 이 언론사의 주장은 그 자체로 권익 침해에 해당할 만큼 부당한 것이었다. 

비단 이 사안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계의 상황과 예술가들에 대한 처우를 고려하면 예술가가 창작한 작품을 '업무상 저작물'로 법인 등 단체에 귀속시키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이고, 가급적이면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소규모 무용단의 경우 명분상 '상임 안무가'라는 직책에 있지만 월급은커녕 공연에 사비까지 들여야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무용단들도 창립 초기에는 대부분 이러한 상황을 겪었고 특히 젊은 안무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무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어 무보수로 작업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 사안의 안무자 역시 월 180만 원의 수당으로 공연의 기획부터 안무, 대본, 연출, 심지어 홍보까지 모든 준비를 다 해왔다.

또한 이러한 소규모 무용단을 거쳐 몇 안 되는 소수의 안무자들만이 비로소 국공립 단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2~3년에 불과한 임기 중 그들이 창작하는 작품은 예술가로서 최고의 전성기에 창작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것이다.   

국립무용단 '회오리' 공연 모습. 칼럼 내용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국립무용단 '회오리' 공연 모습. 칼럼 내용과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월급도 못받고 최고 전성기 작품 창작했는데

럼에도 불구하고, 재임 중에 창작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쉽사리 그 저작권을 법인이나 국공립단체에 귀속시킨다면, 창작자는 자신의 대표작에 대해 일체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대부분의 예술 단체에서는 저작권에 관한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작품이 남용되거나 사장될 가능성도 높아 "공정이용을 통한 문화의 향상발전"이라는 저작권법의 목적에도 반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한편,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지자체가 안무자 위촉 시 저작권을 포함하여 서면계약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데도 있다. 당사자 간의 명확한 약정이 없으면 언제든 이번 사안과 같은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분쟁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지난 2016년부터 예술인복지법에서 서면계약을 의무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서를 쓰지 않는 풍토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면계약은 저작권을 지키고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예술가들과 예술단체 종사자들이 '잘 모르겠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이를 간과해왔다. 그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예술가들에게 돌아갔다.

이제라도 예술단, 특히 국공립 단체들은 저작권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을 가지고 저작권 관련 조항을 반드시 포함한 서면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 및 계약실무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작성된 계약서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하다. 모든 예술가들이 땀 흘려 창작한 작품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지켜내기를 바란다.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는 서울대 음악대 기악과(피아노 전공), 베를린 국립 예술대를 나왔다. 이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휘명에서 변호사로 재직중이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인,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정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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