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무당층을 키우는 중도수렴부재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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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원 칼럼] 무당층을 키우는 중도수렴부재의 정치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9.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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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층 급격히 늘어...정치불신· 혐오 심각
엘리트의 정치적 양극화, 국민 대다수의 '중도이념성향' 반영못해
정당간 이념과 적대감 과잉 최소화하고, 국민의 실생활과 소통해야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교수] 4·15 총선 이후 처음으로 ‘무당층’이 33%로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갤럽이 18일 밝힌 9월 셋째 주의 정당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36%, 국민의힘 20%, 정의당 4%, 국민의당 3%, 열린민주당 3%이고,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한 무당층은 33%였다.

이어서 이념 성향별로 정당지지율을 보면, 진보층의 67%가 민주당을, 보수층의 46%가 국민의 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도층이 지지하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37%, 국민의힘 17% 순이었고, 35%가 지지하는 정당을 답하지 않았다. 연령별 무당층 비율은 20대에서 55%로 가장 많았다.

20대에서 무당층 55% 나와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무당층의 증가다. 지난주에 비해 4%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33%의 무당층은 집권당의 지지율인 36%에 가깝다. ‘여당도, 야당도 다 싫다’는 무당층이 33%까지 대폭 늘어난 것은 우리 정치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무당층 33%’라는 수치는 국민 3명 중 1명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런 결과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상황과 한국정치의 적신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유권자와 대표자간의 소통과 대의과정이 원활하지 않다는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치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여야가 정치혁신을 놓고 경쟁에 나선다면, 그 결과에 따라 무당층의 선택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조사결과는 크게 세 가지를 중요하게 시사한다. 첫째는 민주당 지지도가 지난주에 비해 3%p 줄어 36%로 하락하고, 무당층이 4%p 늘어 33%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지지도가 하락한 것은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에 대한 국민적 영향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당층의 증가는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탈한 유권자들이 야당인 국민의 힘으로 옮겨가지 않고, 무당층으로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야당에 대한 불신도 여당만큼이나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둘째는 집권당인 민주당의 하락 그리고 야당인 국민의힘으로 이동하지 않는 무당층의 증가는 여야 정치권 모두에 대한 국민의 정치적 불신과 정치혐오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국민의 민의를 수렴하고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가 위기상황에 빠졌음을 웅변한다. 즉,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을 놓고 벌어진 여야정치권의 무한적인 대립으로 인해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치혐오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무당층 비율이 20대에서 55%로 가장 높은 것은 추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 등으로 20~30대가 ‘불공정 이슈’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웅변한다. 20~30대가 ‘부모찬스’를 사용했다는 불공정 의혹과 이 문제를 공정하게 다루지 않는 정치권의 위선과 무능에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셋째는 ‘여당도, 야당도 다 싫다’는 33%의 무당층의 증가와 이와 연관된 중도층의 증가는 극단적인 좌우진영정치에 실망한 무당층의 반발과 저항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온 대화와 타협없는 여야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진영논리의 정치가 초래한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저항의 결과이고, 그래서 정치적 양극화의 본질을 ‘중도수렴부재의 정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양극화 현상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을 놓고 벌어진 여야정치권의 대립으로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치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을 놓고 벌어진 여야정치권의 대립으로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정치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 대통령, 정치 양극화 현상 우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의 원인에 대해 누구보다도 일찍이 많은 고민을 제기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19일 ‘국민이 묻는다-2019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인사문제는 송구스럽다”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문제는, 제가 그분을 지명한 그 취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에게 갈등을 주고 국민을 분열시켰다. 정말 송구스럽다. 다시 사과의 말 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국회와 정부가 힘을 합쳐서 국민을 통합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오히려 정치권이 앞장서서 국민을 분열 조장하는 건 옳지 않다”며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일 이낙연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주요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도 “지금 국가적으로 아주 위중한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 어느 때보다 협치가 중요하게 됐다”며 협치 복원을 위한 노력을 역설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9월 18일 “협치나 통합은 정치가 해내야 할 몫인데 잘못하고 있다. 정치에서 갈등이 증폭되다 보니 심지어 방역조차 정치화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들은 협치부재의 책임과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이 국민이 아닌 정치권의 양극화전략에 있음을 웅변한다. 즉, 정치적 양극화의 원인이 국민이 아니라 정치권의 ‘극단적 진영논리’에 있다는 것이다. 국민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조정하고 타협시켜야 할 정치권이 거꾸로 자기 진영결집의 이득을 위해 국민들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갈라치기를 부추기면서 중도수렴으로 가고 있는 국민의 성향과는 정반대로 가는 것이 양극화의 문제이다. 

우리 정치권은 지난해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기댄 국민분열의 정치로 홍역을 치룬 바 있다. ‘딸 대학입학 특혜 의혹’을 받았던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을 놓고 서초동파와 광화문파가 극단적으로 분열했다. 진영논리에 갇혀 극명하게 대립하고 국론을 분열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로 국정이 마비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런 사태를 학술적 용어로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비토크라시’(vetocracy)’라고 부른다. 비토크라시란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은 모두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가리킨다. ‘거부’라는 뜻의 ‘비토(veto)’와 ‘정치체제’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합성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비토크라시의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정치불신에 따른 반발로 무당층의 증가를 부른다.

이번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결과 대로 기존 정치에 지지를 유보하고 이에 반발하는 33%의 무당층이 등장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줄곧 정치권의 논쟁과 주장이 일반 국민의 민심과 다른 정치권만의 정치적 양극화였음을 시사한다. 즉,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의 ‘실체’가 사실은 다수의 국민과 유권자들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되고, 이것이 정치엘리트들인 정당, 언론, 지식인, 시민단체로 전달되거나 반영되어서 정치적으로 양극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이다.

그래서 정치적 양극화는 정당, 언론, 지식인, 시민단체 등 정치엘리트가 다수 국민의 이념적 성향이나 민심과 무관하게 너무 좌우로 기울어져서 상대진영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을 부추겨서  발생한 ‘자기들만의 양극화 현상’이라는 점이다. 정치엘리트수준의 정치적 양극화가 국민 대다수의 이념성향이 중도로 수렴되는 최근의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실체는 ‘중도수렴부재의 정치’에 해당된다.

따라서 정당들이 이념적 양극화를 보이는 것은 정치엘리트가 극단적인 전략을 편향적으로 동원해 발생한 갈등의 결과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각종 민생현안과 정책이 국민의 실생활의 필요와 문제점에서 출발해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방식으로 추진되기보다 자기 진영과 지지층 결집이라는 진영논리의 틀에서 출발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정치엘리트수준의 정치적 양극화는 곧 우리의 국회와 정당이 그동안 어떻게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왜 그토록 거칠게 몸싸움을 벌이며 자신의 진영과 지지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상대진영에 적대적으로 행동했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이러한 정치엘리트수준의 정치적 양극화가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 정치는 갈등과 분열을 합리적으로 수렴하거나 반영해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더욱 조장하거나 증폭시키게 된다. 결국 정당과 의회가 국민통합의 대표기관이 아니라 교착과 파행으로 갈등 조장의 주범으로 전락하게 되고, 국민으로부터 강한 불신을 받아 정당과 의회 무용론이 나오게 된다. 당연한 결과로 민생법안과 민생정치는 물론 공화국의 공공성은 실종된다.

'강제당론'과  '당정청 일체' 관행 없애야 

따라서 이것의 실체와 심각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대처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세 가지다. 첫째, 여야협치와 국회토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당론으로 의원들을 구속하기 보다는 ‘강제당론’을 폐지하여 의원 개개인의 양심에 따라 토론하고 판단하도록 의원자율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국회내에서 초당적인 교차투표가 나와야 한다.

둘째, 바람직한 여야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집권당과 청와대 및 행정부가 하나가 되는 ‘당정청일체의 내각제적 관행’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삼권분립의 공화주의적 대통령제 정부 임에도 내각제의 당정일체처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대통령과 행정부 장관들을 견제하는 입법부 역할보다 통법부와 청와대 경호실 역할에 충실했던 게 사실이다. 권력분립의 대통령제와 국회의 국민대표 역할을 무시하는 ‘당정청일체의 내각제 관행’을 약화시키고, 미국처럼 ‘건설적인 당정청분리’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생활민생정치’와 ‘중도수렴의 실용정치’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념과 진영대결의 눈으로 민생과 생활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민생과 생활세계의 눈으로 이념과 진영대결의 정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정당간의 이념과 적대감의 과잉문제를 최소화해서 국민의 실생활과 소통할 수 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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