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⑯ 최초로 백악관 상영 영화-'국가의 탄생'(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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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⑯ 최초로 백악관 상영 영화-'국가의 탄생'(하편)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0.09.1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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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편집기법사용, 현대영화문법 마련
주류문화에 영화 편입 시킨 상징적 영화
문동열 레드브래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래스 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은 앞서 세계 영화사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그 중 가장 큰 공헌이라고 평가받는 부분이 바로 이 영화가 현대 영화 기법 특히 주로 영화 편집상의 기술 진보에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다. 

‘국가의 탄생’이 보여준 이전 영화와 다른 점을 몇 가지 꼽자면, 당시 초기 영화들의 대부분은 하나의 장면에 하나의 컷이라는 기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무대에 배우들은 움직이고 이를 고정된 카메라가 촬영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탄생’은 하나의 장면에 여러 개의 컷이 사용되는데, 이는 화면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물과 배경, 상황 설명 등을 영상으로 묶어 하나의 장면에 많은 내용을 담는게 가능해졌다. 

‘국가의 탄생’에서는 2부에서 흑인들에게 습격당하는 백인들과 이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가는 KKK단의 장면 등에서 주로 이 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리피스는 이 기법을 통해 여러 장면을 종합적으로 조합하여 스토리 상의 타임라인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한번에 볼 수 있게 하여 관객들이 보다 스토리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몽타주 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이 기법은 현대 영화의 클라이막스 액션 신에서는 빠질 수 없는 기법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탄생' 영화 장면. 이전의 영화와는 달리 카메라가 피사체에 최대한 근접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유튜브화면 캡쳐.
'국가의 탄생' 영화 장면. 이전의 영화와는 달리 카메라가 피사체에 최대한 근접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유튜브화면 캡쳐.

거기에 더해 그리피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 크로스 컷팅, 클로즈 업, 컷 백, 플래시 백 이라는 다채로운 영화 기법을 구사하며, 이전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화면을 선사했다. 여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클로즈 업 기법인데, 그는 피사체와의 거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이전의 영화들은 대부분 장면 하나에 배경과 인물을 몽땅 집어넣는 이른바 ‘풀 샷’들이 대부분이었다. 영화가 아직 연극같은 무대 예술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피스는 그 동안 불문율처럼 내려오던 샷의 거리를 무너뜨리고, 와이드 샷, 바스트 샷, 클로즈 업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구성했다.

D.W. 그리피스 감독. 사진=위키피디아.
D.W. 그리피스 감독. 사진=위키피디아.

비록 소리가 없는 무성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리피스 감독이 보여준 이 다양한 영화 기법은 이후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나 찰리 채플린같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며, 영화라는 콘텐츠가 현대 대중 문화의 꽃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덧붙이자면, ‘국가의 탄생’은 전용 OST가 있었다. 물론 무성영화라 영화 내에 음악이 삽입된 건 아니었지만, 전용 악보가 제공되어 각 극장에서는 동일한 장면에 동일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연 영화

‘국가의 탄생’은 무성 영화의 황금기를 연 영화다. 유럽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화 산업 역시 침체기를 맞는 동안,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에서 꽃을 피운 영화 산업을 상징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국가의 탄생’이 보여준 영화의 스케일도 이전 초기 영화와는 극명하게 구별된다. 제작비 규모만 봐도 어마어마했다. 10년 전에 대 흥행했던 영화 ‘대열차 강도’의 제작비가 150달러 수준이었는데 반해 국가의 탄생은 약 1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가 투입 되었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보면 이 영화에 동원된 인원만 18,000명에 출연한 말만 해도 3,000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현대 블록버스터에 못지 않은 인원 동원이다. 

‘국가의 탄생’은 영화라는 산업 자체가 거대한 흥행 산업으로 가기 위한 첫 발자욱이기도 했다. 2달러라는 당시로서도 고가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개봉 이후 44주 넘게 상영되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개봉 후 2년 동안 2500만명이 봤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미국 인구가 막 1억을 넘었던 시점에서 25%의 사람이 이 영화를 봤다는 것은 엄청난 기록이다. 이러한 관객 동원과 함께 당연하겠지만 막대한 흥행 수입도 들어왔다. 글로벌 박스 오피스에서 1000만 달러 이상을 미국에서만도 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북군을 습격하는 KKK단,.박진감 넘치는 이런 전투신은 이후 현대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됐다. 사진=위키피디아.
북군을 습격하는 KKK단,.박진감 넘치는 이런 전투신은 이후 현대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됐다. 사진=위키피디아.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현존하는 미국 영화에서 가장 흥행 수입이 높은 영화가 바로 ‘국가의 탄생’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영화가 낮은 입장료로 그저 그런 영화들을 보여주었다면, ‘국가의 탄생’은 고액의 입장료로도 충분히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그러한 ‘볼거리’를 선사했고, 이는 앞으로의 현대 영화 산업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주류 문화가 된 영화

이 영화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에서 상영된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대통령이면 우리나라에는 ‘민족자결주의’로 유명한 윌슨 대통령이 관람했다. 이는 영화가 더 이상 뒷골목 서민들의 오락거리가 아닌 주류 문화로 편입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정치적인 의미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탄생’은 영화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콘텐츠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내전이 끝난 지 5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 아직 그 상처가 미국 사회 전반에 남아있던 가운데 개봉된 이 영화는 당시 미국인들, 특히 백인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당연 이러한 인종차별적인 영화에 대해 흑인들과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이들의 비난을 받았다. LA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경찰관들이 보호했고, 이후 시카고 등의 몇몇 도시에서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고작 ‘영화’따위에 사회가 논란에 휩싸이다니, 그만큼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의 위상이 올랐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 백악관에서 국가의 탄생 영화를 상영해 논란이 됐다.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윌슨 대통령. 백악관에서 국가의 탄생 영화를 상영해 논란이 됐다. 사진=위키피디아.

이렇듯 ‘국가의 탄생’이라는 영화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이지만, 인종차별적인 영화 스토리로 인해 영화사에서 언급을 길게 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 흑인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인 스파이크 리는 뉴욕 필름스쿨 재학 시절에 교수들이 ‘국가의 탄생’을 가르치면서 영화 기법상의 우수성만 이야기하고 인종차별적 메시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자, 교수에게 대드는 바람에 퇴학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고 한다.

현대 영화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영화이면서 영화계에서는 여전히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영화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영화라는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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