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노는 언니’가 정유인을 검색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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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노는 언니’가 정유인을 검색하게 했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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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노는 언니’
기존 예능 서사와 다른 모습으로 화제
출연진들은 여성과 운동선수로서의 경험을 진솔하게 고백
대중들은 그녀들의 진정성 있는 모습에 환호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휴머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제작자의 뜻과 다른 '오진'같은 비평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박세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림픽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는 사람이라면 남현희가 어떤 종목 선수인지 알 것이다. 여자 배구 중계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한유미 해설위원을 알 것이다. 김연아의 밴쿠버 동계 올림픽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함께 출전한 곽민정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정유인의 이름은?

정유인은 국가대표 수영 선수다. 수영 팬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스타였지만 나는 티캐스트 예능 ‘노는 언니’를 통해서 정유인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그런데 낯설기만 했던 그녀의 이름이 여러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노는 언니’가 화제성을 몰고 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노는 언니’는 박세리(골프), 남현희(펜싱), 한유미(배구), 곽민정(피겨), 정유인(수영) 등 여성 스포츠 스타들을 출연시킨 예능이다. tvN 등 유명 채널을 보유한 CJ E&M이 아닌 E채널, 스크린, 드라마큐브 등을 보유한 ‘티캐스트’가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 도전이 시청자들에게 통한 모양이다. 각종 포털 검색어와 TV 화제성 조사에서 ‘노는 언니’와 출연진들이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7회가 방송된 이번 주 현재 ‘노는 언니’는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어떤 점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 방송을 기획한 ‘조서윤’ ‘티캐스트 예능 제작 총괄’은 “전적으로 캐스팅의 승리’라며 출연진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기존 예능 출연진들이 보여주지 못한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여성 스포츠 스타들 덕이라는 거다.

티캐스트 ‘노는 언니’ 사진=E채널
티캐스트 ‘노는 언니’ 사진=E채널

예능 프로그램 기획은 인물 찾기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공중파가 독점하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고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종편과 케이블 등 다채널이 무한 경쟁하는 시절이 되었다. 최근에는 유튜브까지 예능 전쟁에 뛰어들었다. 예능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더욱 새로운 것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예능 프로그램의 발전은 어쩌면 새로운 얼굴의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전직 아나운서들이나 개그맨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을 잘하거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전직의 장점을 살리며 예능 프로그램들을 조금씩 장악했다. 그들은 차츰 전직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는 현직 방송인이 되어갔다. 그들은 거의 모두 남성들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함과 식상함은 위험한 적이다. 익숙함은 화제성을 떨어뜨리고 식상함은 피로감을 준다. 이러한 이상 신호를 포착한다면 제작진들은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야 한다. 마침 대중들이 여성 개그맨들에게 환호하고 남성 스포츠 스타들이나 셀럽(연예인은 아니지만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에게서 신선함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이들이 예능 방송을 장악했다.

대중의 관심은 잘 달아오르기도 하지만 빨리 식어버리기도 한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 그럴 때가 많다. 젠더 감수성과 진정성 관련한 이슈가 터지면 대중은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댄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러한 논란이 일 때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나타났다. 마치 새로운 서사가 필요할 때 나타난 영웅과도 같은 모습이다.

전·현직 여성 스포츠 스타들 ‘노는 언니’ 되다

과거 김연경이나 박세리가 혼자 게스트로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들은 있었지만 여성 운동선수들이 단체로 나오는 방송은 ‘노는 언니’가 처음이다. 나는 호기심에 첫 방송을 시청한 이후 매주 화요일 저녁이면 ‘노는 언니’ 본방송을 기다린다.

나는 왜 이 예능 프로그램에 호기심을 느꼈을까. 아마도 방송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여성 운동 선수들의 관찰 예능이라는 사실이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온 것 같다. 평생 운동을 위해 달려온 전 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소 늦게나마 ‘일탈’을 꿈꾸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들을 쌓아나간다는 기획 자체가 내게 참신함을 느끼게 했다.

‘노는 언니’는 멋진 집과 그들끼리 어울리는 연예인들을 보여주는 여느 예능 프로그램과는 뭔가 많이 다르다. 꾸미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겠지만 ‘노는 언니’ 출연진들은 운동을 떠나서는 뭔가 부족한 여동생이나 언니처럼 보인다.

지난 5회와 6회 캠핑 편에서의 한유미와 김유미가 그렇다. 그녀들이 공들여 요리한 김치찌개는 결국 곱창전골이 되었다거나, 비좁은 캠핑카 안에서는 벌칙 같던 큰 키가 영화 스크린을 달 때는 유용하게 쓰인다는 식이다. 하지만 7회에서 배드민턴 시합을 할 때는 배구선수와 농구선수의 장점인 큰 키를 이용해 (박세리, 남현희, 정유인이 뭉친) 단신 팀에 승리한다.

‘노는 언니’ 출연진들의 대화는 특히 새롭다. 여성만이 공감하는 주제에 운동선수만이 겪는 경험을 녹여서 더욱 그럴 것이다. 6회에 나온 생리와 관련한 대화가 대표적이다. 수영장에서, 배구장과 농구장에서, 혹은 골프장에서 그녀들이 겪었던 불편을 이야기하고, 제작진은 그 내용을 방송에 그대로 내보낸다.

이렇듯 성공한 여성 운동선수들이 나누는 진솔한 대화는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얻게 한다. ‘노는 언니’가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프로그램을 위하여

반면 남성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JTBC ‘뭉쳐야 찬다’는 최근 평가가 예전 같지 않다. 시청률은 유지하고 있지만 큰 대회를 마친 후 목표가 없어진 느슨함이 보인다는 거다. 특히 지난 몇 주는 게스트의 화제성에 의존하는 모습이었다. ‘노는 언니’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노는 언니’는 다음 회가 궁금해지는 프로그램이다. TV를 돌리다 ‘노는 언니’ 예고편이 나오면 리모컨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정유인처럼 낯선 이름의 운동선수가 나오면 나처럼 검색하게도 만든다. 시청자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노는 언니’가 대중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오래도록 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하기를. 그리고 성적뿐 아니라 운동선수들의 땀방울에도 관심을 갖게 만든 프로그램으로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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