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스가, 아베의 '입'에서 '계승자'로 등극
상태바
[Who is] 스가, 아베의 '입'에서 '계승자'로 등극
  • 이상석 기자
  • 승인 2020.09.14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돼 차기 총리로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행적에 눈길이 쏠린다. 사진=AFP/연합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돼 차기 총리로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행적에 눈길이 쏠린다. 사진=AFP/연합

[오피니언뉴스=이상석 기자]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14일 집권 자민당 총재로 선출돼 차기 총리로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행적에 눈길이 쏠린다.

스가는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발족 후 8년 가까이 관방장관으로 재임했다. 대외적으로 '일본 정부 대변인', '아베 정권의 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매일 정례 회견을 하지만 신중하게 발언해 민감한 이슈는 질문 취지에 들어맞는 답변을 좀처럼 내놓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심은경 주연 영화 '신문기자'의 모티브가 된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 도쿄신문 기자가 2017년 6월 8일 회견 때 사학재단 의혹 등에 대해 23차례에 걸쳐 집요하게 캐물었음에도 스가는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회견 때 매우 자주 하는 말은 "코멘트(발언·논평)를 삼가겠다"는 것이다. 스가의 '철통 방어' 기자회견이 여러 의혹이 쏟아지는 와중에 아베 정권을 지탱하는데 기여한 셈이다.

좀 더 살펴보면 스가는 관방장관으로서 대변인 외에도 여러 역할을 수행했다. 이전에는 다른 기관을 담당하며 정치인으로 여러 색깔을 남겼다.

총리관저 2인자···위기관리·인사권 장악

관방장관은 총리 부재중에 위기관리를 책임지는 자리로 각 성청(省廳, 중앙행정기관)을 가로지르며 주요 정책을 총괄·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자민당 주요 파벌이 코로나19(COVID-19)가 확산한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스가를 지지한 것은 관방장관의 이런 역할도 한몫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가 본인도 아베 총리를 계승하겠다고 한데다 아베 정권의 정책을 속속 꿰뚫은 인물이라는 점은 별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스가가 아베 정권에서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내각관방(內閣官房)에 각 성청(省廳·중앙 정부 기관) 심의관급 이상 고위 관료 약 600명의 인사 실무를 담당하는 내각인사국을 2014년 5월 신설했다.

각 성청의 조직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스가의 실권을 키워주고 관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관방장관이 인사 대상자의 적격성 심사나 간부 후보 명단 작성을 담당하고 총리와 임면 협의를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각인사국 설치는 차기 총리로서 스가를 성장시킨 원동력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아키타현 부농의 장남···취업했다가 늦깎이 진학

스가는 1948년 12월 6일 일본 아키타(秋田)현 오가치(雄勝)군 아키노미야무라(秋ノ宮村),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유자와(湯沢)시에서 스가 와사부로(菅和三郞)·다쓰(タツ)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스가에게는 누나 2명, 남동생 1명이 있다. 부친 와사부로는 전쟁 중 남만주철도에서 일했고 만주에서 패전을 맞은 후 아키타현으로 돌아와 농사로 성공했다.

그는 농가를 조직해 출하 조직을 만들고 도쿄, 오사카 등지로 판로를 개척하는 등 지역 특산 '아키노미야(秋ノ宮) 딸기'의 흥행에 앞장선 인물로 꼽힌다.

도호쿠(東北)지역 일간지 가호쿠신포(河北新報) 등에 따르면 와사부로는 16년(4선) 아키노미야무라 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스가의 아버지는 부농이며 지역 유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스가는 고교를 졸업한 후 상경해 도쿄의 박스 공장에 취직했고 이후에는 쓰키지(築地) 시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동기들보다 2년 늦게 호세이(法政)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스가는 당시 사립대로서 가장 학비가 싼 곳을 골랐다며 "입학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역시 여러 직장에서 일해 학비를 벌며 대학을 졸업"했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비서 11년만에 시의원···세습 의원과 차이·무파벌 눈길

스가는 대학 졸업 후 겐덴(建電)설비 주식회사(현 주식회사 케이네스)에 취업했으나 머지않아 정치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호세이대 출신 선배 국회의원실의 소개를 받아 1975년 4월 오코노기 히코사부로(小此木彦三郞) 중의원 의원의 비서가 된 것을 계기로 정치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됐다.

그는 11년간 오코노기의 비서로 활동한 후 1987년 4월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浜)시 시의원으로 당선돼 자신의 이름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스가는 최근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반(조직·지지기반), 간판(지명도), 가방(선거 자금) 등 선거 승리에 필요한 3가지 조건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선됐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하고서 자신이 온갖 고생을 하며 성장한 정치인이라고 강조했다.

총재 선거의 경쟁자였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이 부친의 표밭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이 된 이른바 세습 정치인인데 이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파벌 정치와 관련해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 스가는 현재 파벌을 기준으로 다케시타(竹下)파, 기시다파, 고가(古賀)파 등에 몸담기도 했으나 2009년 9월 "파벌은 낡은 체질"이라며 고가파를 탈퇴한 것을 끝으로 무파벌로 머물고 있다.

당내에 스가 그룹으로 불리는 측근 의원이 30명 정도 있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도 당내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의 지지를 받아 초반에 대세를 결정하는 등 파벌 정치 구도를 이용해 권력을 잡은 상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