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양반 위해 싸웠다“는 북한 교과서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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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양반 위해 싸웠다“는 북한 교과서의 왜곡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5.12.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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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인민이 창제"…서옥식, '북한 교과서 대해부' 출간

 

"북한의 역사 왜곡·날조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제 식민정책에 대한 미화로 점철된 일본의 역사기술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서옥식 초빙연구위원은 "정부는 물론 학계나 시민단체가 북한의 역사왜곡 문제를 제대로 제기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북한부장과 편집국장을 역임하고서 10여 년간 대학에서 북한 실상을 강의해온 서 위원은 교과서를 중심으로 북한 문헌들의 역사 왜곡 실태를 살핀 '북한 교과서 대해부'(해맞이미디어)를 17일 출간했다. 북한의 초·중·고교 전과목 교과서와 노동신문 등 언론매체, 김일성 저작집 등을 정밀분석해서 집대성한 책이 국내에서 발간된 것은 처음이다.

'북한 교과서 대해부'를 보면 역사적 사실이 심각하게 조작됐음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는 90% 이상 날조ㆍ왜곡ㆍ과장됐다는 게 서 위원의 평가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공적을 폄하하고, 훈민정음을 언급하면서 인민이 창제했다는 식으로 서술한 것이 대표 사례다. 반면, 김일성 중심의 '백두혈통'은 출생 과정과 활약상 등을 신격화하고 심지어 나이까지 조작했다.

 

1967년 주체사상 채택 이후 이순신 평가 '반전'

저자에 따르면 1967년까지는 이순신을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조국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해낸 불세출의 명장으로 칭송해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1967년은 김일성 유일 영도체제를 뒷받침하는 주체사상이 북한의 통치이념으로 채택된 시점이다. 그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을 제외한 누구도 감히 명장이나 영웅으로 부각될 수 없었다.

북한 교과서와 역사서가 이순신, 곽재우 같은 장군들의 역할을 소개하면서도 공적은 철저히 낮춘 이유다. 이들은 양반 지주의 이익을 옹호했기에 현시대 영웅들의 진정한 애국심과 거리가 멀다고 기술했다.

이순신이 왜란 당시 나라를 잘 지켜 싸운 것은 맞지만 양반지주계급이었고 또 무관이었으므로 어디까지나 인민이 아닌 봉건왕권에 충성해 지배계층을 위해 싸웠다는 것이다. 고교 1학년에 해당하는 고등중학교 4학년용 조선역사 교과서는 "리순신 장군 같은 옛날의 이름있는 장군들의 애국심은 물론 좋은 것이었지만 인민이 주인인 사회주의 조국을 위해 싸운 우리 시대 영웅들의 진정한 애국심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썼다.

이런 인식은 김일성 저작집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김일성이 저술했다는 이 책에는 "지금 일꾼들은 마치도 리순신 장군을 우리 시대의 영웅보다 더 나은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려 하고 있다. 조국해방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 가운데는 리순신보다 나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우리 일꾼들은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도 리순신 장군만 자꾸 내세우고 있다"고 적었다.

국가 변천과정이나 왕의 업적을 다룰 때도 특정한 왕명을 거론하지 않고 연도만 기록한다. 지배층에 대한 극단적 반감 탓이다.

고구려의 영토 확장은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럼에도 광개토왕, 장수왕 등의 역할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한글 창제는 조선 인민들의 창조적 활동의 결과라고만 소개했다.

역사서에 왕명이 거론된 인물은 왕조별 건국자, 의자왕과 같은 국가 멸망 당시의 왕, 연산군 같은 폭군에 한정된다.

 

또 훈민정음은 '인민이 만든 민족글자'라고 서술했다. 고등중학교 4학년용 조선역사 교과서는 "1444년 1월 우리 인민은 세상에 자랑 높은 우수한 민족글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우리 인민은 이미 단군조선때부터 우리의 고유한 민족글자인 신지글자를 만들어 써왔다. 그 후 우리 선조들은 인민들이 쓰기 좋으며 우리 말은 적는데 잘 맞는 보다 새로운 글자를 만들 것을 요구하였다"고 썼다.

이어 "봉건통치배들도 저들의 통치를 더욱 강화하는 데 새 글자가 필요하였다. 이리하여 당시 왕이었던 세종은 성삼문, 정린지, 신숙주 등 우수한 학자들을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에 모아놓고 새 글자를 만들기 위한 연구사업을 하도록 하였다"고 덧붙였다.

 

영어 교과서엔 '(남)조선에 거지들 많아' 영작

'북한 교과서 대해부'에는 황당한 내용도 수두룩하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유일지배체제를 신격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소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김정일이 어머니 김정숙과 함께 어느 소학교에 들러 세계지도에 조선과 일본이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먹으로 일본땅을 새까맣게 칠했더니 갑자기 일본 전역이 암흑천지가 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는 일화가 실렸다.

교과서에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북한 골퍼들은 외신과의 인터뷰 등에서 김정일이 1994년 평양골프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골프를 쳤는데 홀인원을 열 한차례나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참고서'에는 김정은이 3살 때 총을 쏘고 9세 때는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켰다고 기술됐다.

이러한 교과서와 참고서 등의 신격화 대상의 원조는 김일성이다. 저자는 "교과서를 비롯한 주민 교육용 교재 등에는 김일성이 항일 무장 투쟁 시절 모래로 쌀을,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으며 축지법을 쓰는가 하면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는 황당한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영어 교과서는 영어 소통능력을 위한 내용이 아닌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와 주체사상을 소개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교과서 문장과 어휘 수준은 우리 영어 교과서와 거의 비슷하다. 내용은 김일성 부자 우상화와 사회주의체제 우월성 강조, 미국과 남한에 대한 적개심 표출 일변도다.

1990년 발행된 북한 고등중학교 1학년용 영어 교과서는 13개 과 중 생활용어 1개 과를 포함해 4개 과만 순수 영어였고, 나머지 9개 과는 대부분 정치사상 내용을 주제로 삼았다. 김 부자의 우상화를 위해 '경애하는 어버이 김일성 원수님의 참된 자녀가 됩시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원수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등의 영역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영작 문제로는 '(남)조선에는 빈 깡통을 차고 다니는 거지들이 많다'는 문장을 제시하고 영역하라는 것도 있다.

일부 한국사 검정교과서가 북한 교과서나 매체의 왜곡된 역사 해석을 그대로 옮겼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북한은 북한정부 수립이 마치 남북한 총선거를 통해 이뤄져 자신들이 합법국가인 것처럼 홍보하는데, 두산동아 교과서에 이런 주장이 버젓이 실렸다는 것이다.

두산동아 교과서는 정부 수립을 가져온 남한의 5·10 총선거에 대응하고 북한 정부 수립에 형식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치러진 북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를 북한의 주장대로 무비판적으로 소개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저자는 "이는 북한의 교과서를 베껴 가르치는 것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역사 왜곡과 날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논란을 넘어서 사회의 혼란과 분열을 부추기고 남남갈등을 일으켜 통일의 걸림돌이 된다는 게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지금 북한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남한의 대북전단과 확성기방송 중단에 사활을 거는 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김일성의 항일투쟁과 백두혈통의 허상 등 거짓이 탄로 날까 두렵기 때문이죠."

저자는 "과거 동서독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의 통일운동은 북한에 진실을 전파하는 운동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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