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인포르메] 스페인 발칵 뒤집은 前국왕 ‘부패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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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인포르메] 스페인 발칵 뒤집은 前국왕 ‘부패 스캔들’
  • 최지윤 스페인 마드리드 통신원
  • 승인 2020.09.0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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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카를로스 1세 불미스런 사건...몰락하는 스페인 왕실
한때 군사쿠데타 진입하고 민주주의 지킨 국왕 칭송
1억달러 뇌물수수에 불륜스캔들까지 저질러...불명예 퇴진
스페인 국민들, 코로나에 국왕 파문까지...경제적 정신적 피로감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지윤 마드리드 통신원] 스페인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 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현재 국왕인 펠리페 6세는 아버지였던 후안 카를로스 1세를 뒤이어 2014년 왕좌에 올랐다. 선왕이었던 후안 카를로스 1세는 39년간 나라를 통치하며 스페인의 민주화를 이끈 인물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긴 여러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퇴임했다.

후안 카를로스1세, 지난 7월말 불명예 퇴진

스페인 현지 소식통은 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가 지난 7월 말, 아들인 펠리페 6세에게 편지를 남기고 스페인을 떠났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코로나 대유행 이후 매스컴에서는 코로나 관련 소식만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날 이후 전 국왕에 대한 방송이 계속해서 전파를 탔다.

카를로스가 포르투갈이나 도미니카공화국에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고 어디에 정확히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며칠 후 아부다비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으로서는 야속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카를로스는 스페인 왕실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일궈낸 인물로, 독재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프랑코 장군 이후 혼란의 시기를 겪던 스페인을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아부다비에 있다고 알려진 후안 카를로스 1세 스페인 전 국왕. 사진=elpais.com
현재 아부다비에 있다고 알려진 후안 카를로스 1세 스페인 전 국왕. 사진=elpais.com

스페인 민주주의를 재건시켰던 국왕

후안 카를로스는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47년에 스페인으로 처음 왔다. 그 후, 군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1962년에는 그리스의 소피아 공주와 결혼했다. 그는 1969년 프랑코의 민족운동에 충성하기로 했지만, 1975년 11월 22일 즉위한 후 훨씬 더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성향을 보였다.

1976년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위대한 총리로 꼽히는 아돌포 수아레스를 임명하고 정당 부활과 정치범 사면 등을 독려했다. 1981년 후안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초기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정부를 반동 노선으로 되돌리겠다고 위협한 군사 쿠데타를 진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고 이에 따라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80년 초반에는 이혼법과 낙태법이 통과되는 등 스페인은 자유를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평판은 나날이 떨어졌다. 딸인 크리스티나 공주와 사위의 탈세 및 횡령 사건을 시작으로 2012년 스페인 금융 위기 당시, 보츠와나로 호화 사냥을 떠나는 등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 국민의 공분을 샀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사업(약 9조 5000억 원)을 수주하며 사우디 정부로부터 받은 숨겨진 자금이 있다는 불미스러운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그간의 업적과 명예를 한순간에 잃게 되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왼쪽)와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는 중동의 왕족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사진=elpais.com
후안 카를로스 1세(왼쪽)와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는 중동의 왕족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사진=elpais.com

뇌물 수수에다 불륜까지 

현재 스위스 검찰과 스페인 대법원은 지난 2008년 사우디 정부가 후안 카를로스 국왕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진 1억 달러 수뢰혐의를 조사 중이다. 스위스 검찰은 특히 스페인 컨소시엄에 수주한 AVE 고속철도 건설계약에 대한 리베이트 의혹을 놓고 2012년 폐쇄된 계좌에 대해 수사를 벌여왔다. 그뿐만 아니라, 사우디 정부로 받은 1억 달러를 제외하고도 당시 약 170만 유로에 달하는 추가 예금이 있었는데 이는 카를로스 국왕이 바레인 왕에게서 선물로 받은 돈이었다.

계좌가 폐쇄되기 직전인 2012년, 나머지 5700만 유로는 후안 카를로스의 내연녀인 사업가 코리나 라르센에게 송금되었다. 라르센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내게 6500만 달러를 ‘감사’와 ‘선물’의 의미로 줬으며, 그 돈에 대해 숨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단순한 돈세탁의 개념을 넘어 자신의 내연녀에게 거액의 돈을 송금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스페인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고, 국민들은 엄청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스페인 정부와 대법원은 전례 없는 국왕의 스캔들 수사와 재판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페인 법률상 왕은 퇴위하기 전에 행해진 일에 대한 기소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퇴위 이후의 일에 대해서만 조사가 가능한 것.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내연녀로 알려진 코리나 라르센. 사진=elpais.com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내연녀로 알려진 코리나 라르센(오른쪽). 사진=elpais.com

후안 카를로스 전국왕과 내연녀 코리나 라르센은 지난 2004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국왕은 66세였고, 코리나는 39세였다. 왕의 내연녀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이렇다 할 물증은 없었다. 그렇게 둘은 몇 년간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했지만, 2012년 보츠와나 사건으로 인해 코리나의 존재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당시 스페인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실업률이 24%에 육박하는 상황이었는데, 나라에 힘을 실어주고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야 하는 왕이 내연녀와 함께 호화 사냥 여행을 떠난 사실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굉장히 분노했다. 이에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카를로스는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영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국민의 62%가 그의 퇴임을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돼 논란을 크게 잠재우지 못했다.

스페인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인물이지만 한순간에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했던 전 국왕에 대한 스페인내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반면, 왕비였던 소피아 여왕에 대한 지지는 높아졌다. 전부터 소피아 왕비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의 외도 소식이 전해져 왔을 때도 자신의 의무를 우선시하며 삶의 어려움을 모두 견뎌왔다.

그리스 출신인 소피아 왕비는 즉위 당시 스페인어가 어눌해 대중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많은 사회 공헌 활동과 스페인 왕실에 전념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지지율이 높아졌던 것이다. 

소피아 전 왕비와 아들인 국왕 펠리페 6세. 사진=bekia.es
소피아 전 왕비와 아들인 국왕 펠리페 6세. 사진=bekia.es

"카를로스 대학 이름 바꿔야" 여론까지

아들인 펠리페 6세 또한 아버지의 스캔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지난 3월, 후안 카를로스 1세에 대한 상속을 모두 포기한다고 밝혔다. 또한 카를로스가 받는 연간 보조금(약 2억 7천만원) 역시 지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펠리페 6세가 돈세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두 재단의 수혜자로 등장했다는 언론 보도에 이어 나온 것이다. 그러나 펠리페 6세는 자신이 재단의 수혜자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은 왕실 일원들은 이번 일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며 왕실의 좋은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현재까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온라인에는 마드리드에 있는 왕의 이름을 딴 후안 카를로스 대학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번 일로 인한 스페인 국민의 배신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의 잘못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독재 정권 후 스페인의 새 시대를 연 카를로스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앞으로 펠리페 6세를 비롯한 스페인 왕실이 이번 사건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예전의 좋은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세계 거의 모든 나라 국민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스페인 국민에게는 2020년이 경제적,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어려운 한 해가 되고 있다.

● 최지윤 통신원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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