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언어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언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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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언어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언어의 역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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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의 기원부터 일상생활 속 활용법까지
언어에 관한 모든 궁금증 풀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탈
말과 글의 의도 꿰뚫어 보는 통찰력 필요해
'언어의 역사' 영문 표지.사진=아마존
'언어의 역사' 영문 표지.사진=아마존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그 어떤 폭력보다 말이 주는 피해가 큰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과 글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의사를 표현하곤 하지만 때론 말과 글이 협박의 도구로 쓰이곤 한다. 특히 개인 미디어의 상업화는 자극적인 막말과 협박을 더욱 부추긴다.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는 그런 말들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유튜브 콘텐츠, 특히 극우 유튜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는 그들의 생각 수준을 보여주고 행동 방향을 예측하게 한다. 그러한 유튜브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또한 어느덧 유튜버의 말과 행동을 닮아간다. 언어의 작용이 그렇다. 타인에게 다가가 스며든다.

언어가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데도 우리는 그 중요성과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언어의 역사’에서 언어의 기원과 발달 그리고 미래가 왜 재조명되어야 하는지를 밝히며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어의 역사’의 저자인 크리스탈은 세계적인 언어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언어에 대한 여러 궁금증, 인간은 언제부터 말과 글을 사용했을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왜 서로 다르게 발음하거나 억양이 다를까,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신조어나 이모티콘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까, 갓난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떻게 말과 글을 배우고 익혀나갈까, 결국 인간에게 언어란 무엇이며, 더 효율적이고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와 같은 궁금증들을 파헤친다.

 

언어의 역사. 소소한 책 펴냄.
언어의 역사. 소소한 책 펴냄.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수많은 언어가 가지는 공통적인 특질도 설명한다. 6000여 개에 달하는 전 세계의 언어는 제각각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발음 규칙, 문법, 어휘, 대화 규칙이 서로 다르고 문자로 표기될 때 언어마다 나름의 철자법과 구두법이 있다. 말하기와 쓰기 스타일, 악센트와 방언, 문학 등도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인간의 언어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거다.

영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영어로,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중국어로 말을 배우지만 엄마와 아기가 나누는 대화나 언어습득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는 거다. 수천 년 동안 진화해오면서 인간은 성대를 이용해 말을 하게 되었고, 여성이 남성보다 고음이고, 아이가 글자를 인식하고 학습하는 과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그렇다면 언어의 역사에서 말과 글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 말을 할 수 있으려면 갖가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발성 기관과 소리를 단어 또는 문장으로 변환시키는 뇌가 필요한데, 연구자들은 유골로 남아 있는 두개골과 목뼈의 형태를 현대인과 비교함으로써 기원전 3만 년경에 인간의 말과 어느 정도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냈다는 결론을 끌어냈다고 한다.

인류 최초 문자는 기원전 3만 년경에 동굴 벽면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호 형태로 남아 있다. 이후 기원전 3400년경에 필경사들이 점토판에 부호를 새겨 넣는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 체계가 개발되었고, 그로부터 약 1000년 후에는 갈대로 쓴 쐐기 모양의 부호 집합체, 즉 설명문자로 바뀌었다.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 발전사에서 최초의 진정한 글쓰기 체계는 설형문자인데 이집트, 중국, 중앙아메리카 등지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각기 고유한 문자를 개발해왔다고 한다.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탈. 사진=위키피디아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탈. 사진=위키피디아

언어의 변이 과정 또한 흥미롭다. 같은 영어나 프랑스어라도 사회계층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발음과 억양, 철자가 생겨나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표준’이라는 지위를 누리게 되면서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한 나이와 성별, 인종 집단 등에 따라 어투나 어법이 달리 나타나는데, 언어는 한 개인이 속한 사회계층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어떤 관계인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주고받는 말과 호칭이 달라지고, 장소가 말하는 방식을 결정짓기도 한다고. 법정이나 의회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정해진 대로 지칭해야 하고, 신문이나 영상물에서는 목적에 맞는 문어의 형태를 취하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가 언어에 대해 알아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그들 특유의 말과 글을 통해 우리의 사고와 감정을 조작하려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359쪽)

사람들은 특정한 어휘나 발음, 문장 패턴 등을 효과적으로 선택하여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 이것은 정치가가 유권자를 설득하여 표를 얻기 위한 연설이나 마케팅 담당자와 광고대행업체가 소비자를 자극하여 특정 제품의 수요를 조장하려 할 때 즐겨 사용하는 전략이기도 하다는 거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부 유튜버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전략이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그들이 의도하는 바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게끔 한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 이상의 것이라는 거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 사용이 생활화되고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언어폭력과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인신공격성 발언과 악성 댓글로 인해 개인의 삶이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건강하고 시의적절한 말과 글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오늘도 뉴스에 일부 유튜버들의 말과 행동이 한 꼭지를 차지했다. 그 코너 아니더라도 그들이 만든 영상을 인용한 꼭지가 여럿 있었다. 그들이 인터넷이 아닌 공중파에까지 나오게 된 건 모두 그들의 말과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중파 뉴스까지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이 더욱 큰 영향을 끼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언어는 많이 노출될수록 퍼지는 힘이 강해진다고 이 책 ‘언어의 역사’는 말하고 있다. 품격있는 말보다 품격 떨어지는 말들이 더 그렇다고 경고한다. 세상에 흘러 다니는 말과 글의 의도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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