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소스 멀티 유즈' 편한 콘텐츠 IP의 힘
게임 플레이보다 영상 시청 선호하는 Z세대의 소비형태
스토리 편집·영상화 제작비 등 한계도 여럿
[오피니언뉴스=김상혁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요의 증가는 게임업계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게임업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이들이 진출하는 영역은 엔터테인먼트다.
영역 확장의 이유는 성장 동력을 게임 하나만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의 주 고객층인 Z세대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게임을 소비하게 된 것도 주요 원인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국산 드라마, 영화, 음악, 웹툰 등 'K콘텐츠'가 전세계에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해외 게임 유저들을 노크하는 업체들의 글로벌 전략과도 맞닿아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도 여럿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국내 게임업체들, 저마다 엔터 영역으로 뛰어들어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슈팅 게임 중 하나인 '배틀그라운드'의 크래프톤은 지난 26일 전략적 투자를 통해 드라마제작사 히든시퀀스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고 밝혔다.
히든시퀀스는 '미생', '시그널' 등을 기획한 이재문PD가 2016년 설립하고 대표로 있는 회사다. '구해줘', '복수노트' 중국 드라마 '미래적비밀'을 제작했다. 현재는 웹툰 원작 '이미테이션', 정신의학 드라마 '싸이키', 뮤지컬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 등을 제작 중이다.
크래프톤은 이번 투자를 통해 자사의 IP(지식재산권) 사업 확장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김창한 대표는 "배틀그라운드 등 게임 IP를 e스포츠, 드라마, 영화,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 포맷으로 확장하고, 게임화가 가능한 원천 IP를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한 자사의 게임 IP를 활용한 드라마, 영화 등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방침이다. 또 새로운 게임 제작을 위한 오리지널 IP 발굴에도 힘쓸 계획이다.
'리니지'의 엔씨소프트는 지난 7월 영상·웹툰·온라인 음악서비스·인터넷 방송 등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클렙'을 설립했다. 초대 대표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친동생 김택헌 엔씨소프트 수석부사장이다.
클렙은 엔씨소프트가 보유한 IP를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풀어가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앞서 엔씨소프트는 시각특수효과(VFX) 전문기업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 영화투자배급회사인 메리크리스마스에 각각 220억원, 100억원 대 투자를 집행했다. 이처럼 엔씨소프트는 영상과 웹툰 같은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등 자체 IP를 게임은 물론 다양한 미디어 영역으로 확장하는 한편 또 다른 신규 IP를 발굴하는 형태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며 “클렙 역시 엔터테인먼트와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비즈니스를 만드는 스튜디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엔터테인먼트와의 결합을 성공시켜 재미를 본 회사들도 있다. 넷마블은 2018년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2014억원을 투자해 25.71%의 지분으로 2대 주주에 올라섰다. 1대 주주인 방시혁 빅히트 대표는 방준혁 넷마블 의장과 친척 관계다.
넷마블은 지난해 BTS를 주제로 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BTS월드'를 선보여 국내외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얻었다. 그리고 최근 두 번쨰 BTS IP기반 모바일 게임인 'BTS유니버스 스토리'를 공개하고 사전등록을 개시했다. 이는 이용자가 직접 스토리를 제작하는 새로운 샌드박스 게임으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중국에서 서비스 중인 인기게임 '크로스파이어'를 드라마화 한 '천월화선(穿越火线)'을 텐센트 비디오를 통해 지난 20일부터 방송하고 있다. 현재 3분의 2정도 분량이 방송된 가운데 누적조회수는 16억 회를 넘어섰다. 또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만든 할리우드 제작사 오리지널필름과 계약을 맺고 영화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와 함께 스마일게이트는 국내 최초의 버추얼 유튜버 '세아(SE:A)'도 선보이며 다양한 방송활동 중이다. 또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특화된 AI 기술 개발 센터인 '스마일게이트.AI'를 세우기도 했다. 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방침이다.
넥슨의 경우 아직 위의 기업들처럼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일본 법인을 통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상장사에 15억 달러(약 1조8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자회사 네오플로부터 1조5000억 원을 차입하는 등 2조 원 가량의 '총알'을 장전했다.
오웬 마호니 넥슨 CEO는 "강력한 IP를 다양한 시장을 통해 창출하고 유지한다는 넥슨의 비전을 장기간, 여러 형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엔터 영역 확장에 중심에는 'IP'
게임업체들의 엔터테인먼트 영역 확장의 중심에는 IP가 있다. 기본적으로 콘텐츠는 '원 소스 멀티 유즈'가 편하다. 때문에 게임업체들은 검증된 IP를 통한 영역 확장으로 새로운 수익 창출의 밑바탕을 삼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우선 게임업체들은 최근 게임만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는 숫자로도 나타난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분기 매출 5386억 원, 영업이익 2090억 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1%, 61% 상승했다. 당기순이익도 36% 증가한 1584억원으로 나타났다. '리니지' 형제의 힘이 컸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다른 업체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낮은 부분이 늘 지적 받고 있다. 1분기 국내 매출비중이 86.6%, 2분기 79.3%에 이르러 해외 매출비중이 20% 수준에 그친다. 넥슨은 50% 안팎, 넷마블은 7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또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IP 하나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90%에 달해 편중이 크다. 그런데 '리니지2M' 일 매출액이 감소하며 최근 주가는 최고점이었던 7월초 대비 15% 가량 낮아지기도 했다. 때문에 엔씨소프트 입장에서는 사업의 다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젊은 층의 엔터테인먼트 소비 형태도 달라진 것도 영역 확장의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모바일 앱 분석업체 앱애니의 'Z세대: 모바일 세계 질서 재정의'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10~20대)는 게임 플레이보다 동영상 시청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10개국의 월 사용자 기준 앱 분석 결과 게임보다 비게임 영역에서 월 평균 1.2배 더 시간을 사용하고, 1.3배 더 접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은 사용시간 1.5배, 접속 횟수 1.7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그리고 비게임 영역의 분포도를 살펴보면 트위치나 아프리카TV 등 엔터테인먼트, 동영상 플레이어 관련 앱이 1,2위를 차지했다. 즉 Z세대는 이전세대보다 게임보다는 엔터테인먼트 동영상 시청에 더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임희정 앱애니 사업개발 전략 이사는 "오는 2020년에는 Z세대가 전체 소비자에서 40%를 차지할 전망으로 Z세대는 모든 기업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세대"라고 말했다.
국내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만 봐도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매번 순위권에 들 만큼 국산 영상 콘텐츠의 경쟁력은 시청자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면서 "게임의 경우 검증된 IP를 영상화 한다면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입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극복해야 할 한계도 분명
하지만 게임 IP를 엔터테인먼트로 연결 시키는 것이 마냥 낙관적이거나 쉽지만은 않다. 업계에서는 극복해야할 문제점이 여럿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단 게임 IP는 영상화가 편하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그래픽을 통해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접근 난이도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게임 유저나 시청자들의 눈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대 최고의 MMORPG로 칭송 받는 블리자드의 'World of Warcraft(WoW)'를 영화로 만든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4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두며 역대 게임 원작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중국의 힘이 절대적으로 이외 지역에서의 수익은 좋지 않다.
'와우'는 20년 이상 쌓아온 대서사를 바탕으로 한 게임이다. 3시간짜리 영화 '전쟁의 서막'이 담고 있는 부분은 '와우'의 역사 중에서도 초창기인데, 그것조차도 몇 년 간 게임과 소설로 만들어 낸 서사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상당부분 칼질하고 이어 맞추다보니 원작팬 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경우가 많았다.
영화업계 관계자는 "영화나 드라마는 제한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소설이든 게임이든 영상화를 시키면 스토리에 편집을 가할 수 밖에 없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원작의 팬들은 영상과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그들이 원작을 가장 잘 아는 만큼 혹평을 내린다면 그 여파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전적인 문제도 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게임 내 영상을 스크린이나 스마트폰 화면에 비슷한 수준으로 옮기려면 엄청난 돈이 들게 된다.
국내 한 VFX업체 관계자는 "와우의 시네마틱 영상은 5분 안팎인데 이 정도 수준으로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드려면 한 편에 1000억원은 넘어갈 것"이라며 "한 편이 아니라 시리즈 물로 만든다면 조 단위의 돈이 든다. 물론 이건 CG쪽으로만 한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게임제작자와 영상제작자가 다르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영상제작진이 해당 게임에 대한 마니아가 아닌 이상 게임에 대한 이해도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 흥행 여부를 떠나 IP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의 다른 결과물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캡콤의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영화로 만든 '레지던트 이블'이 대표적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의 수요층과 영상의 수요층이 다른 것도 문제"라며 "게임의 위상이 달라졌다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대중성에 있어서는 게임이 영화를 따라가긴 어렵다. 이 간극을 극복해야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