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고양이 시선으로 바라보기...이지음의 ‘강남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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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고양이 시선으로 바라보기...이지음의 ‘강남 사장님’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23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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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스타 고양이 ‘강남’을 사장님으로
젊은이의 예측 불가능한 아르바이트 체험기
실제 네 마리 고양이 ‘집사’이기도 한 작가
길고양이 돌보는 아이 사진 보고 영감 얻어
능청스럽고 독보적인 고양이 캐릭터와
열두 살 아이의 코믹한 대사
'강남사장님' 비룡소 펴냄.
'강남사장님' 비룡소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이번에는 어린이 문학을 골랐다. 나는 동화나 동시를 좋아하기도 하고 어린이 문학 작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지금도 공부 삼아 어린이 문학책을 많이 읽고 다른 매체에 그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오피니언뉴스> 독자에게도 어린이 문학을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올린다.

그 특별한 작품은 ‘이지음’ 작가의 장편동화 ‘강남 사장님’이다. 저자는 이 작품으로 2020년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어린이 문학 전문 출판사인 ‘비룡소’에서 주관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이지음 작가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며 고양이 네 마리를 기르는 집사라고 한다. 아마도 이 작품의 영감을 집과 직장에서 모두 받았을 것이다. ‘강남 사장님’은 이지음 작가의 데뷔작이다.

어린이 문학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넓게는 ‘어린이 독자와 어린이 감수성을 지닌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쓰인 작품을 말한다. 동화나 동시는 나처럼 나이 많은 아저씨도 동심에 빠져들게 하는 큰 매력이 있는 문학 장르다.

잘 쓰인 어린이 문학 작품은 그 시대를 담는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70년대나 1980년대처럼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는 충성하라는 직접적인 교훈을(혹은 잔소리를) 더는 담지 않는다. 지금은 작품이 쓰인 시절의 중요한 시대성과 사회성을 담는다. 그리고 당시를 사는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높은 트렌드를 담아내기도 한다.

 

'강남사장님'.비룡소 펴냄.
'강남사장님'.비룡소 펴냄.

이지음 작가의 ‘강남 사장님’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소재로 삼았다. 어쩌면 요즘 어린이들은 유튜브를 TV보다 많이 시청할지도 모른다. 게임부터 학습까지 유튜브 콘텐츠는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이런 인기 때문에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대형서점 어린이 문학 매대에는 ‘유튜브’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여럿 보인다. 어쩌면 이지음 작가가 출품한 ‘황금도깨비상’에도 유튜브를 소재로 한 응모작들이 많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심사위원들도 이런 경향을 심사평에서 다름과 같이 언급했다.

“기존 유튜브를 다룬 작품들이 유튜브를 향한 어린이의 단편적인 욕망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유튜브의 뒷모습까지 파헤치려고 하는 시의성 있는 소재가 특별했다.” (제26회 황금도깨비상 심사평 중)

지금 활동하거나 데뷔를 앞둔 경쟁 작가들도 관심을 가지는 소재로 작품을 쓴다면 뭔가 달라야 하고 자신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이지음 작가의 ‘강남 사장님’이 그랬나 보다.

열두 살 지훈이는 아르바이트 모집 전단지를 보고 어느 집을 찾아간다. 지훈이를 맞이한 사장님은 다름 아닌 유튜브 스타 고양이 ‘강남’이다. 상자 속에 드러누워 거만하게 인사를 건네더니 갑자기 한물간 ‘강남 스타일’ 춤까지 추는 뻔뻔하고도 능글맞은 고양이가 사장님이다.

주인공 지훈이는 사업에 실패한 아빠 때문에 가세가 기울었다.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서 고양이를 사장님으로 모시는 극한 알바에 나선 것이다.

지훈이는 인생 첫 사회생활이 녹록지 않으리라 예감한다. 사장님 식사 준비, 화장실 청소, 발톱 관리부터 유튜브 영상 촬영 및 편집, 구독자 댓글 관리까지. 거기다 뜨뜻하다며 키보드나 무릎 위에 자꾸 올라오는 사장님을 옮겨 놓기 바쁘다.

 

인기 어린이 유튜버 길라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기 어린이 유튜버 길라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유튜브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다. 자막 폰트와 배경음악도 저작권에 걸리지 않는 걸 써야 한다든지, 댓글이 올라오면 성심성의껏 답글을 달아야 한다든지 하는. 시청자들 눈에 보이는 영상뿐 아니라 촬영장 뒷모습까지 묘사하여 아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라고도 할 수 있는 ‘유튜브’에 관한 다양한 모습을 구석구석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제목부터 이야기 곳곳에 ‘강남’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강남’이라는 지역성이 대표하는 이미지를 익살맞게 풍자하는 것이다. 사실 지훈이는 예전에 강남에 살았던 걸 자랑하여 ‘강남 밥맛’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든 인간이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진실된 마음과 나와 다른 이들을 향한 열린 자세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담아낸다.

꼭 공부를 잘하거나 돈이 많거나 젊고 건강하거나 쓸모 있는 행동을 해야만 사랑받는 건 아니란 사실을 사장님을 보며 느꼈다.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도, 사람 눈에 쓸모없어 보이는 행동만 해도, 나에게 아무 이익을 주지 않아도 그냥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91쪽)

고양이 시선에서 바라본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세상 모습 역시 생각해볼 만하다. 우리 사회는 철저히 인간 관점에서 정의되고 구분 지어진다. 이런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특히 삶의 터전을 빼앗긴 데다 멸시받기 일쑤인 길고양이, 그리고 그런 길고양이와 닮은 우리 사회의 그늘로 내몰린 작은 존재들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지 깊숙이 고민해 봐야만 하는 질문을 남긴다.

“사람들은 뭐든 ‘누구 것인가’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누구 땅, 누구 집, 누구 밥, 쓰레기라도 말이죠. 뭐가 되었건 다른 사람 걸 침범하면 싫어해요.”
“뭐라고냥? 고양이들이 남의 쓰레기를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다냥. 숲, 들판, 시냇물까지 몽땅 시멘트로 덮어 버려서 우리가 사냥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 건 사람들이다냥.” (68쪽)

‘강남 사장님’에는 성인 캐릭터도 나온다. 이들은 사업에 실패해 도피하는 인물로 나온다. 이들이 사업을 성실히 하다 실패했든지 무리하게 확장하다 계획이 어그러졌든지 그 피해는 오롯이 집에 남은 가족들이 입는다는 걸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이지음 작가는 ‘돈의 위대함’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혹시 상처받거나 방황하는 가족이 있다면 지훈이처럼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다 울고,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의 방을 만들어 보라고 독자들에게 조언한다. 여기서 가족은 피로 묶인 관계만 의미하지 않는다. 함께 하면 가족인 거다.

작가 이름으로서 ‘지음’은 참 좋은 뜻을 가진 것 같다. 이야기를 짓고 만든다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이름이다. 이런 뜻도 있지 않을까. 지음(知音). 서로 마음이 통하는 벗을 의미한다. 독자와 마음이 통하는 좋은 벗과 같은 작가가 될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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