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 칼럼] 국가채무와 부동산 감독기구 신설 '정답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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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칼럼] 국가채무와 부동산 감독기구 신설 '정답 아니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 승인 2020.08.1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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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U 독립재정기구 설치...재정적자 줄이는데 '실패'
국내 학자들 "독립재정기구 설치를"...오히려 면죄부될 가능성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 논의, 주식과 부동산은 성격 달라
일물일가 시장 아냐...장외에서 거래되고 브로커 역할도 인정
"새로운 기구 설치 대신 기존 행정기관들이 제대로 역할해야"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경제학자에 관한 유머 한 가지. 경제학자들은 ‘다른 한편(on the other hand)’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판단을 유보하고 한발 물러나는 모습이다. 판사 출신인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그런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나는 외팔이 경제학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다른 한편’이라는 말을 못하죠(I want a one-armed economist, that way he cannot say ‘on the other hand’)”라고 꼬집었다.

경제학자들의 이상한 버릇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경제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 생산성 향상이라고 말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도, 노동력 급감 현상도, 잠재성장률 제고도 생산성 향상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생산성 향상이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요술방망이인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은 경제학자들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엔지니어(기술), 교육가(노동), 경영인(전략·자원배분), 정치가(법률·제도)들에게 달려있다. 거기서 경제학자의 입지는 별로 넓지 않다. 결국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능력 밖에서 경제문제의 해결을 구하고 있다. 인간 너머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는 종교지도자들과 비슷하다.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에 대해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에 대해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립재정기구 설치는 건전재정의 정답 아냐

생산성 향상만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주어진 환경 안에서 찾기 보다는 새로운 기관의 출현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기적을 바라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세 차례나 추경을 편성했다. 그 바람에 국가채무가 1년 동안 97조 7천억원이나 늘어나 금년 말에는 명목GDP 대비 국가채무비중이 40%를 돌파할 예정이다. 야당은 이런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재정학자들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재정건전성을 회복시킬 장치나 계기를 찾는 것이다.

지난 6월 학자들의 모임(한국재정학회 학술대회)에서도 그 문제가 논의되었다. 거기서 제시된 해결책은 좀 엉뚱했다. 재정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독립재정기구(independent fiscal institution)’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발표자는 국회와 행정부 사이의 중립지대에 설치되는 새로운 기구는 “여야간 정파적 대립에서 자유롭고, 객관적인 정책분석에 근거하여 정치적 고려에 좌우되지 않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예산 심의는 국회의 존재이유다. 그러므로 '국회와 행정부 중간지대'에 예산을 다루는 기구를 두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예산은 여야의 대립과 타협 속에서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진통이 따른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느 학자가 제안한 독립재정기구란 국가재정에 관한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피리 즉,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그런 기구를 신설하자는 주장은 생산성 향상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이라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현실도피일 뿐이다.

우리나라에 독립재정기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 국가채무가 빠른 속도로 늘어날 때 당시 야당 출신의 박관용 국회의장은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재정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기에는 여당도 반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2003년 10월 국회법 개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국회예산정책처다. 국가의 예산결산·기금 및 재정운용과 관련된 사항에 관하여 연구분석·평가하는, 국회에 소속된 기구다.

독립재정기구를 국회에 둔 것은 미국의 의회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대륙에서는 그런 기구를 행정부에 두기도 한다. 재정정책을 집행하지는 않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재정상황을 평가하고 권고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들을 통틀어 독립재정기구라고 부른다.

기대와 달리 독립재정기구는 재정건전성을 개선시키지 않는다. 미국의 CBO는 국가채무가 폭증하던 1974년 설치되었지만, 그후 미국의 국가채무는 훨씬 많이 늘어났다. 유럽의 독립재정기구들은 재정의 건전성을 촉구하기는커녕 재정악화를 방조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1992년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는 재정적자는 명목 GDP의 3% 이내에서, 국가채무비율는 60% 이내에서 유지할 것을 규정한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부터 잘 지켜지지 않았다. 건전 재정의 모범생이었던 독일부터 통일 직후 재정적자가 불가피하여 수년 간 조약위반에 대한 벌금을 물었다.

독일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준수할 상황에 이르자 이번에는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채무 문제가 불거졌다. 이들 나라는 벌금을 물 수 있는 형편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은 벌금을 부과하는 대신에 회원국들에게 독립재정기구를 설치토록 요구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면죄부를 준 것이다.

실상이 이러하니, 우리나라에 국회예산정책처 이외에 별도의 독립재정기구를 추가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교수 출신이 기관장을 맡는, 그저 그런 관청 하나가 늘어나는 효과밖에 없을 것이다.

부동산감독기구 신설도 정답 아냐

독립재정기구 신설이 일부 학자들의 공염불(空念佛)이라면, 부동산감독기구 신설은 행정부의 공염불이다. 지난 10일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 대책의 실효성을 위해 필요시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운을 뗀 후 정부와 여당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개념을 갖고 기구부터 신설하는 것은 정책의 효율성만 낮춘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위기의 예방과 관리를 위한 컨트롤타워의 설치다. 금융위기는, 매번 다른 이유와 모습으로 예고 없이 닥치기 때문에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10월 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을 일으켰던 블랙 먼데이 사건 이후 미국은 대통령령으로 ‘금융시장 대통령실무그룹(President’s Working Group on Financial Markets, PWG)‘이라는 협의기구를 만들었다. 금융위기 예방과 대응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 조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아무 일도 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도드-플랭크법을 통해 새로 조직된 것이 금융서비스감시위원회(FSOC)다. 재무장관 등 8명의 기관장들이 정보교환, 정책조율, 리스크평가 등에 관하여 협의한다. 하지만 이 기구 역시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한 일이 별로 없다. 만일 FSOC가 법률대로 작동했다면, 여러 기관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서 문제 해결만 늦어졌을 것이다. 미국의 국가재난사태 선포 직후 재무장관과 연준 의장이 따로 만나서 거의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SK글로벌 사태, 북핵 위기, 신용카드 대란 등 경제 분야의 교란이 끊이지 않자 범정부 차원에서 조기경보시스템(EWS, early warning system)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다가오는 위험을 각종 경제지표로 파악하고 대비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별로 신통하지 않아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지금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재 우리 정부가 구상 중인 부동산시장 감독기구도 비슷한 결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적 방안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외국의 사례를 찾기 어렵고 개념 자체가 매우 물렁물렁하다. 그래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그 감독기구를 통해 정부는 “호가조작, 허위매물, 집값담합, 거짓 정보 유포” 등의 적발과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들은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은 주식시장과 생리와 구조가 다르다. 그래서 정부의 계획에 동의하기 어렵다.

주식은 거래소(장내시장)에서 거래되고 일물일가의 법칙이 작용하는 반면, 미술품·골동품, 부동산은 거래소가 아닌 장외시장에서 거래된다. 장외시장에서는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브로커가 거래를 주선한다. 거래가 성사되기까지 브로커의 흥정에 대해서는 호가조작, 담합, 거짓정보라는 죄를 씌우기 어렵다. 주식시장과 전혀 판이 다른 것이다.

100년 전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살림이 궁핍해진 귀족들이 명화들을 대거 미국에 팔았다. 인상파 화가 작품들이 유럽보다 미국에 더 많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때 대륙 간 미술품 거래의 중개를 맡았던 조세프 듀빈(Joseph Duveen)은 영국의 몰락한 귀족이었다. 그는 미국의 신흥부호 JP 모건과 맬론 등에게 높은 가격으로 많은 미술품을 팔기 위해서 호가조작, 허위매물, 담합, 거짓정보 유출 등 온갖 일을 꾸몄다. 그러나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미술품 중개상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여당 의원은 “두 살짜리 아이가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한 채 임대사업을 하고 열한 살짜리 중학생이 19채의 주택을 소유한 게 우리 부동산시장의 현실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탈세의 문제이지, 부동산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정부에서나 청와대 직원을 사칭한 사기꾼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이 청와대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청와대 감시기구를 두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의 경우 금융기관의 영업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한다. 정부가 설립을 인가한 금융기관이 일차적 감시 대상이고, 개인과 기업은 부수적이다. 이에 비해서 부동산시장 감시기구는 온 국민의 매매와 임대차 계약을 감시한다. 온 국민을 향한 '전방위적' 조사·감독은 사생활을 침해하기 쉽고, 실효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올해 2월 발족한 부동산시장 불법행위 대응반. 특별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올해 2월 발족한 부동산시장 불법행위 대응반. 특별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결론: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없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정부가 조기경보체계(EWS)를 구축할 때 필자는 청와대 행정관으로서 지표구축 작업의 일부를 담당했었다. 그때 용기가 없어서 만류하지 못했던 것이 무척 아쉽고 송구스럽다. 지금 청와대 직원들은 비슷한 후회가 없기를 바란다.

부동산시장 감독기구 설치를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나왔다. 국민을 향해서 직접 확정적으로 약속한 것이 아니므로 물러설 길은 충분히 있다. 부동산과 관련한 탈법과 탈세는, 국세청 등 기존의 행정기관들을 활용하는 것이 정답이다. 필요하면 인원은 보강할 수 있다. 거기에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육사 시인은 못마땅한 현실을 타파하는 초월적 존재를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라고 말했다. 라틴어에서는 이를 ‘기계를 타고 내려오는 신(deus ex machina)’이라고 한다. 머리 위에서 누군가 기계를 타고 내려와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책은 문학이나 신학이 아니다. 정책을 펼 때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나 ‘기계를 타고 내려오는 신’을 기대할 수 없다. 새로운 기구만 만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것은 고대 사회의 오래 된 미신 즉, 물신숭배사상(fetishism)과 다르지 않다. 외팔이 경제학자가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듯이, 새로운 기구도 당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은 한국은행에서 36년째 근무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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