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랜선 방청객, 대중들의 역할 확대 어디까지
상태바
[대중문화 오지날] 랜선 방청객, 대중들의 역할 확대 어디까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12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택트 시대의 해결사로 등장한 랜선 방청객
‘코미디 빅리그’ ‘백파더’ ‘트롯신이 떴다’에서 랜선 방청객은 방송의 흐름까지 결정
대중들의 적극적 참여가 끌어내는 방송 환경 변화는 어디까지일까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휴머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제작자의 뜻과 다른 '오진'같은 비평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시청자 참여는 방송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특히 음악 방송이나 공개코미디처럼 방청객의 리액션이 중요한 방송이라면 더욱 그렇다. 녹화할 때 방청객 반응으로 시청자들 반응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그 분석을 방송분 편집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청객 리액션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출연자에게 흥을 돋우고 TV 앞에 앉은 시청자들에게도 그 흥을 전달할 수 있는 데에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방청객 동원에 직격탄을 날렸다. 방청객이 중요한 방송 요소가 되는 음악 방송과 노래경연 프로그램 그리고 공개코미디 프로그램까지 그 영향을 받았다. 방송 콘셉트를 갑자기 바꾸기도 어렵고 방청석을 비우기도 어려운 제작진들은 자구책을 내놓았다.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하는 것이다.

KBS는 ‘개그콘서트’ 마지막 몇 주를 개그맨들에게 방청객 역할까지 맡겼다. 곧 일자리를 잃게 될 개그맨들은 자기들이 만든 마지막 코미디를 방청석에 앉아서 봐야만 했다. KBS ‘불후의 명곡’은 자기네 직원인 아나운서들을 방청석에 앉히고 투표까지 시켰다. MBC ‘복면가왕’은 연예인 패널들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방청객 투표로 우승자가 결정되는 '불후의 명곡'과 '복면가왕'이 투표 모수가 상대적으로 작아진 지금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는지 의문이다.

MBC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 사진=MBC
MBC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 사진=MBC

랜선, 새로운 방송 환경을 모색하다

‘랜선 방청객’은 언택트 시대의 해결사로 등장했다. 방청석에 설치한 모니터에 인터넷으로 연결한 시청자들을 띄우는 방송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현상은 유튜브와 줌(Zoom) 등 모바일 방송 환경에 익숙한 시청자들과 이를 재빨리 방송에 접목한 제작진이 있어서 가능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랜선 시청자는 방청객 대체재로 존재했다. 유튜브 개인 방송에서 영감을 얻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은 먼저 인터넷으로 생방송을 내보냈다. 인터넷 생방송 중 벌어진 재미있는 부분만을 방송용으로 편집한 본방송은 그 후에 공중파로 송출했다. 마리텔은 시청자들의 활동 영역이 TV라는 디바이스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걸 세상에 알린 프로그램이다.

개인 미디어의 발전으로 방송 환경에 익숙하게 된 시청자들을 방송국은 주목한다. MBC ‘놀면 뭐하니’가 좋은 사례다. 본 방송 전에 인터넷 방송으로 불러모은 시청자들에게 방송 콘셉트와 방향을 정하게 한 것이다. 어느 정도 제작진이 의도한 것이겠지만 시청자들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그래서 ‘싹쓰리’라는 팀이름이 만들어졌고 음악도 결정됐다.

지금은 랜선 방청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예전부터 있던 방송도 있고 이 콘셉트에 맞춰 새로 생긴 프로그램도 있다.

랜선 방청객, 프로그램 방향에 관여하다

tvN ‘코미디 빅리그(코빅)’는 2011년에 첫 방송을 한 거의 10년 된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공개코미디인 만큼 방청객 반응과 투표가 매우 중요한 방송 요소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일반 방청객을 받지 못하자 여러 대안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개그맨들이 방청석에 앉아서 리액션을 보여주고 투표도 했다. 방송국 직원들에게 그 역할을 맡겼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랜선 방청객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무대에 오른 개그맨들은 방청석에 설치된 수십 개 모니터를 의식하며 공연한다. 모니터들에는 랜선으로 연결된 방청객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시청자에 머물지 않고 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리액션은 개그맨들만큼이나 과감하고 망가지는 분장도 불사한다. 그래야 무대 위 개그맨 눈에 띄고 카메라에 잡힌다는 걸 아는 것이다. 심지어 랜선 방청객들은 방송 흐름도 결정한다.

'코빅'의 여러 코너가 이들 랜선 방청객 반응으로 공연을 끌어간다. 어떨 때는 개그맨들이 랜선 방청객들에게 자기가 다음에 어떤 대사를 해야 할지 물어보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평범한 대사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포복절도할 대사를 내놓는다. 이 부분은 대본에도 없는 백 퍼센트 즉흥 대사일 것이다. 그만큼 공연하는 개그맨들과 랜선 시청자들 간 합이 중요하다.

MBC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는 아예 랜선 시청자들을 방송 전면에 등장시킨다. 요린이, 즉 요리 못하는 어린이와 같은 시청자들에게 백종원이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콘셉트다. 여기서 MBC는 큰 모험을 하는데 이 방송을 실시간 공중파로 송출한다는 것이다. 모니터로만 보이는 수십 명 랜선 시청자들에게 그것도 생방송에서 요리를 가르친다는 건 많은 변수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방송 초기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지금도 시간에 쫓기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MBC는 생방송을 편집해 ‘확장판’이라는 이름으로 재방송한다. 거기에는 랜선 시청자들이 벌이는 각종 활약이 편집이라는 옷을 입고 재미있게 등장한다. 요르신, 요리를 못하는 어르신이라는 캐릭터를 가진 어느 일반인은 이미 화제의 인물로 등극했다. 핸드폰 등 개인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다른 랜선 시청자와 달리 구미에 사는 요르신에게는 방송 제작진들이 파견될 정도다.

SBS ‘트롯신이 떴다’도 랜선 시청자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공연을 즐기는 방청객에서부터 점수를 매기는 심사위원 역할까지. 이들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만큼 방송에 적극적이다. 트롯 공연에 걸맞은 의상과 분장을 갖춘 시청자들이 다수다. 물론 랜선 너머로 진행되는 공연도 흥겹게 즐기는 건 기본이다.

SBS ‘트롯신이 떴다’ 사진=SBS
SBS ‘트롯신이 떴다’ 사진=SBS

'대중들의 적극성'이 끌어낸 방송 환경 변화

한때 모니터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대중들이 모니터 안쪽에 등장하게 된 것은 방송 환경 변화와 기술 발전 덕분이다. 많은 사람이 소유한 핸드폰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도구로도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와 발전도 대중들의 적극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집중호우에도 대중들의 적극성이 큰 힘을 발휘했다. 거의 모든 뉴스 미디어가 일반인들이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받아서 뉴스로 송출했다. 기자들의 취재가 개론이었다면 대중들의 참여는 각론이 되었다. 오히려 대중들이 제공한 영상이 이번 집중호우의 심각성을 더욱 잘 드러내기도 했다.

방송 기술 발전은 분명 전문가들이 일구었고 방송 환경 변화도 어느 정도 전문가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니터 바깥쪽에 있던 시청자들이 많은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이러다 랜선 제작진까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랜선 작가. 랜선 피디 등등. 어쩌면 그 시도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