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이 벨 에포크 일 수도
[오피니언뉴스=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연재를 시작한 이래 하나씩 차례차례 더듬어 온 콘텐츠 산업에 대한 연대기는 이제 20세기를 지나 1910년으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는 각 콘텐츠 장르별로 하나씩 조명했지만 이번 편에서는 이 시점의 당시의 전체적인 사회적 상황이나 문화 조류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까 한다. 사진으로 시작한 영화, 애니메이션의 비디오 콘텐츠와 축음기에서 시작한 오디오 콘텐츠, 그리고 여기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현대 매스미디어의 기초까지. 이번 연재는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전 조각 조각 알아보았던 콘텐츠 산업들이 당시의 사회와 문화, 역사와 어떻게 엮이며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 주]
현대 콘텐츠 산업의 시작점을 어디에서부터 보는 가에 따라 조금 달라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화가 처음 나온 1890년대부터 라디오가 나온 1910년대를 그 시작점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굳이 분류하자면 현대 콘텐츠 산업 여명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알다시피 이 시기에 사진이나 영화, 축음기, 라디오 같은 현대 콘텐츠 산업의 초기 형태가 형성되었다. 왜 이 때였을까? 기술적인 기반이 이 시기에 몰려 나온 것도 있을테고, 천재 발명가들이 많은 것을 이 시기에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만이 왜 콘텐츠가 산업화되고 폭발적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이 시기에 현대 콘텐츠 산업이 싹트게 된 다른 이유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시대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콘텐츠 산업 (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 요소 중 하나는 우선 사회적인 안정이다.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속된 말로 콘텐츠 산업은 다른 산업들에 비해 ‘시대빨’을 좀 타고 날 필요가 있다.
사회가 혼란하고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제일 먼저 여가에 사용되는 시간과 돈을 절약한다. 생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쟁이나 자연재해, 경제적 공황 등이 생길 때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들도 부침을 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사회적인 안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시기는 콘텐츠 산업이 번성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현대 콘텐츠 산업이 싹트기 시작한 1890년부터 1914년까지의 시대가 그랬다. 바로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라고 불리는 시기다.
1871년에 보불전쟁이라 불리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끝나며, 유럽은 한시적인 평화의 시대에 접어든다. 1년 정도 걸린 이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질서는 재편되었다. 실질적인 승전국이었던 독일은 이 전쟁으로 인해 오랜 기간 프로이센의 숙원이었던 독일 통일을 완료하게 되며 패전국인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2제국이 무너지면서 공화국으로서 변모하게 된다. 프랑스 제3공화국이라 불리는 공화정의 시작이다.
제3공화국으로 인해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약 80년간 일곱 번이나 입헌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다시 제정으로 왔다갔다하며 안정되지 못했던 프랑스 정치 체계가 안정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초창기 왕정 복고나 헌정 위기 등 몇번의 위기를 겪긴 했지만 곧 이를 수습하고 안정된 정치 체계로 인해 평안을 얻은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서는 낙관주의가 들불처럼 번졌고, 자연스럽게 그 동안 정체되었던 문화나 예술에 대한 욕구가 터지면서 벨 에포크로 불리는 문화적 황금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의 파리는 세계 문화와 과학의 중심이었다. 비록 전쟁에서 패해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정치 체계가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유로운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많은 문화와 예술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파리 수도권에는 수 많은 공장들이 건설되어 전국에서 많은 노동자들을 흡수했고, 이 시기 거의 300만명에 가까운 인구들이 파리로 몰렸다. 교육이 전 계층으로 확대돼 가면서 시민들의 교양 수준까지 높아진 이러한 거대한 메트로폴리스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 영화같은 최신의 콘텐츠들이 파리에서 시작된 것도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요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시작된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물질적인 부(wealth)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파이가 커지면서 그 간 귀족같은 특권 계층이 독점하던 부를 나눠먹을 수 있게 되면서 부르주아 계급이 확대되었다. 노동 운동의 덕택으로 노동자의 권익 또한 전 시대에 비해 많이 성장했다. 노동자 계급 중 일부는 쁘띠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중산층으로 편입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긴 계층도 늘어났다. 사람들의 삶은 이전 시기에 비해 풍요롭고 행복해졌다. 거기에 전기의 보급으로 늘어난 활동 시간은 사람들에게 ‘여가’라는 잉여 시간을 선사했고, 많은 이들은 이 여가를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경로를 찾기 시작한다. 현대 콘텐츠 산업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콘텐츠의 역사를 중세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19세기 중반 이전의 콘텐츠들은 대부분 특권 계층의 것이었다. 특권 계층들만이 시간과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대 콘텐츠 산업의 역사가 기술적인 배경이나 환경이 갖추어진 이후에도 19세기 후반에 가서나 시작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후반 사회적인 안정과 함께 시간과 돈을 가진 계층이 점점 늘고 그 동안 여가 생활에서 소외되어 왔던 노동자 계급마저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며 사람다운 삶의 만족을 위해 자신의 여가를 즐길 거리를 찾게 되면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 사업기회를 놓칠리 없는 당대의 현명한 사업가와 발명가들이 너도 나도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게 되면서 나타난 것이 영화, 축음기, 라디오, 애니메이션 등등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들이다.
이 시기가 어땠는지 사실 이 시기를 글자 몇 자와 그림 몇 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어렵다. 보다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이 시기가 어떤 시기였는지 어떤 분위기였는지 느끼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우리 상황에 덧대어 설명해보면,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2002 월드컵의 분위기까지 탄 우리의 2000년대 초반이랑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벨 에포크 시대를 보면 볼 수록 지금 한국의 분위기랑 벨 에포크는 많은 부분 비슷하다. 위기를 극복한 낙관 주의에서 과학 혁명과 비슷한 디지털 혁명,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진 후에 태어나 자란 세대의 등장.
그리고 사회적으로 폭발한 문화적 욕구와 그로 인한 콘텐츠 산업의 급성장. 현재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K 콘텐츠 산업의 기반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면 현대 콘텐츠 산업이 벨 에포크 시대에 싹이 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듯 싶다. 한번 상상해보라. 그 시기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으면 ‘좋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말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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