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윤희숙 의원 연설과 정치인의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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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인사이트] 윤희숙 의원 연설과 정치인의 화법
  • 권상희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8.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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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 권상희 문화평론가] 정치인의 연설을 이토록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5분 남짓 짧은 시간에 윤희숙 의원은 개정된 임대차 보호법이 갖고 있는 맹점을 가감 없이 비판했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시각으로 여당이 파악하지 못한 사각지대까지 날카롭게 파고들어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뿔난 민심에 공감대를 얻었다.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흔히 주제를 막론하고 이념론에 빠져드는 우(愚)를 범하지도 않았다. 우리 삶에 있어 주거의 문제는 '먹고사니즘'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애초부터 진보, 보수가 끼어들 여지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동산이 경제 영역을 벗어나 정치 영역으로 재편되면서 정쟁거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그러니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리 만무하다.

윤 의원의 화법은 경제전문가이자 생활인으로서의 그것이었다. 정치 논리로부터 거리를 두었기에 그녀의 발언에 국민들이 아주 오랜만에 호응하는 것이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말의 과잉, 그러나 합리적인 비판 없는 정치권

말이 넘쳐나는 대표적인 곳이 정치 1번지 여의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억에 남는 말, 울림을 주는 말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그녀는 예측 가능한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전에 없었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화법에 충실한 이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윤의원은 어려운 수사(修辭)로 초선의원인 자신을 드러내거나 청중을 설득시키려 들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쉬운 언어로 할 말을 제대로 했고 그것이 국민들의 정서에 가 닿았다. 공감은 그렇게 이뤄진다. 

제대로 된 비판이 실종된 곳에서 비판을 가장한 비난이 난무한다. 국회 5분 연설이 화제가 되면서 여당 의원들은 그녀가 임차인인 동시에 임대인이라는 사실로 공격을 하고, 급기야 서민들 사정은 나 몰라라 하는 ‘월세옹호론’까지 내세웠다.

이쯤 되면 엇나가도 한참은 엇나간 ‘아무말 대잔치’다. 게다가 공격에 나선 이들은 다주택자 정치인들이다. 역풍을 예상하지 못한 거라면 국민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든가 아니면 정치인으로서 감각이 뒤떨어진 것 일게다. 잘못된 말이 설화(舌禍)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매력적인 화법의 시작은 듣는 것에서부터

비판의 사전적 의미는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단지 힐난(詰難)일 뿐이다.

정치인의 말은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건 국민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신중해야만 한다. 말이 갖고 있는 무게감이 어느 누구보다 무겁다. 무조건적 ‘비난’과 합리적 ‘비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은 하기 쉽다. 그러나 말을 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입을 먼저 열어서는 결코 말을 잘 할 수 없다. 그 이전에 두 개의 귀를 먼저 열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귀 막고 입만 연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 그러니 정치권은 ‘소음제작소’다.

매력적인 화법을 구사하려면 먼저 경청하라. 민심의 소리부터 들어라. 그것이 정치인 화법의기본이다. 

 

●권상희는 영화와 트렌드, 미디어 등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글을 통해 특유의 통찰력을 발휘하며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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