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역사에서 미래를 준비한다...‘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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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역사에서 미래를 준비한다...‘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0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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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태생 타밈 안사리...유년기는 이슬람 문화권, 청년기는 서양 문화권에서 보내
이중 문화권자로 남들보다 독특한 시선 갖춰...현재와 미래를 알기 위해 빅 히스토리 탐구
5만년 역사속에서 미래를 통찰하는 대서사시같은 책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매력적인 안내서
타밈 안사리.사진=MRTAMIMANSARY.COM
타밈 안사리.사진=MRTAMIMANSARY.COM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역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다. 어릴 적 내 책꽂이에는 ‘이야기 한국사’ 혹은 ‘세계사’와 같은 책들이 꽂혀있었다. 자라면서도 다양한 시각과 주제의 역사책들을 읽곤 했다. 요즘에 나는 특정 시기나 분야 혹은 지역을 다룬 조금은 전문적인 역사책을 찾는다. 하지만 서점 역사책 코너에 가보면 얼굴이 알려진 저자들이 쉽게 풀어쓴 책들이 많다.

처음에 난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도 같은 부류인 줄 알았다. 제목의 “다시 보는”이라는 문구와 “5만 년의 역사”라는 문구 때문에 세계의 역사를 쉬운 맥락으로 풀어쓴 스낵 같은 역사책으로 보였다. 그런데 표지의 ‘빅 히스토리’라는 홍보 문구가 이 책을 좀 더 살펴보게 했다.  “인류의 문화, 충돌, 연계의 빅 히스토리”라는 문구였다.

‘빅 히스토리, Big History’는 역사에 대한 관점을 인류나 우주 전체의 경과까지 넓게 확장하여 보는 학문적 움직임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이런 시도로 유명하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도 빅 히스토리의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도 호기심이 갔다. ‘타밈 안사리’라는 이름이 왠지 서구인 같지 않았다. 내가 아는 역사학자는 거의 유럽인 아니면 미국인이었으니까. ‘유발 하라리’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척 낯설었던 게 기억났다. ‘타밈 안사리’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아무튼 그는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접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저자일 것이다.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커넥팅 펴냄.
다시보는 5만년의 역사.커넥팅 펴냄.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해 이슬람과 서양 문화 양쪽의 관점을 같이 볼 수 있는 ‘타밈 안사리’의 독특한 시선이 드러난 책이다. 인류 5만 년 역사에서 나타난 갈등과 연계의 사례를 통해 인류가 싸우게 한 이유를 명확히 밝혀내고, 역사의 교훈에서 미래를 위해 전 세계적인 협력을 끌어낼 내러티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타밈 안사리’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역사책 세 권을 동시에 읽으며 시작되었다. 그 세 권은 중국 만리장성의 건설, 중동 아시아 유목민의 이동, 로마를 공격한 야만족 전사들에 관한 책이다. 언뜻 보기엔 세 사건은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저자 또한 세 권을 동시에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세 도서를 한꺼번에 보며 중국의 만리장성 건설은 중동 아시아 유목민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여파로 유목민들은 동쪽이 아닌 서쪽 로마를 공격하게 되었다는 역사적 흐름을 깨닫는다. 이 맥락은 굳이 세 종류의 책을 읽지 않더라도 한국의 역사 강사들이 풀어쓴 세계사 책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한 역사 지식을 전하는 것에서 그치려 하지 않는다.

‘타밈 안사리’는 인류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인류사의 상호 연계성에 흥미를 느끼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사회 사이에서 충돌과 연계가 일어나면 무언가는 변화하고, 다른 무언가는 변하지 않기도 하며 때로는 새로운 것이 창출되기도 한다. 그는 체스를 예로 들었다.

체스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놀이다. 하지만 6세기에는 체스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만 즐기던 놀이였다. 체스의 원조 ‘차투랑가’는 인도에서 페르시아에 전파되어 ‘샤트란지’가 되었고 중세에 이르러 샤트란지는 서유럽에 전래되었다. 그리고 체스가 되었다.

(인도에서 발생해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간 체스는) 외형적 특성은 바뀌고 있었지만, 놀이의 내부 구조, 즉 규칙은 유지되었다. 기물의 개수는 변함없었고, 기물이 움직이는 방식도 글대로였다. 코끼리는 주교로 바뀌었지만, 코끼리는 여전히 두 개였고, 대각선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이륜 전차는 성이 되었지만, 과거에 이륜 전차가 움직였듯이 성도 움직였다. 왕은 여전히 놀이판에서 가장 귀한 기물이었고, 놀이의 핵심도 예전처럼 거의 하는 일이 없이 잘난체하는 단 하나의 기물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16쪽)

체스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같은 일은 다른 인류 문화의 모든 요소에서 꽤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상호 작용하며 일어난 파급 효과로, 하나의 소용돌이에서 다른 소용돌이로 전달되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는 변하고 또 무언가는 변하지 않고 가끔은 새로운 것이 생기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체스는 6세기경에는 체스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만 즐기던 놀이였다. 체스의 원조 차투랑가는 인도에서 페르시아에 전파되어 샤트란지가 되었고 중세에 이르러 샤트란지는 서유럽에 전래되었다.사진=unsplash
체스는 6세기경에는 체스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만 즐기던 놀이였다. 체스의 원조 차투랑가는 인도에서 페르시아에 전파되어 샤트란지가 되었고 중세에 이르러 샤트란지는 서유럽에 전래되었다. 사진=unsplash

‘타밈 안사리’는 우리의 현재를 혁명적 ‘재발명’이라고 본다. 오래된 문화나 습관은 인간이 창조한 고리로 연결된 세상에 의해 재구성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원을 찾기 위해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든다. 전 세계 주요 문명과 그곳에서 일어난 다양한 충돌과 연계된 역사가 우리가 사는 ‘지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충돌과 연계의 역사 속에서 인류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재 세상을 살펴보면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충돌과 연계가 점점 많아지면서 갈등의 빈도와 심화도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그래서 타밈 안사리는 ‘우리는 왜 계속 싸우는 것일까’라는 시의적절한 질문에 과거의 서사를 다시 살펴보는 것으로 답을 찾으려 한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은 영원히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없다는 것이다. 한때는 문명이나 무력이, 때로는 종교나 사상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난 5만 년 인류 역사 관점에서 보면 그저 흘러간 잠깐의 순간일 뿐이다.

저자는 5만 년 역사를 숨 가쁘게 달려와서는 다음의 화두를 던진다. “오늘날처럼 놀랍고 광대한 세계에서 인류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한다는 과제를 위해 전 세계적인 협력을 이끌어서 보편적이고 글로벌적인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축할 수 있을까?”

책 한 권이 던진 질문치고는 매우 묵직하다. 오히려 버겁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실천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저자의 연구 범위가 방대한데에 비해 분석은 한 곳을 향한 느낌도 든다. 그가 세운 가설의 입증을 향해 달려온 듯한.

이 책을 덮고 나니 원제가 눈에 들어왔다. The Invention of Yesterday. 저자의 의도가 잘 드러난 제목이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서점에서 눈에 띄지는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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