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빈 매장 늘어가는 종로...임대료 '내리거나 vs 버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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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 매장 늘어가는 종로...임대료 '내리거나 vs 버티거나'
  • 정세진 기자
  • 승인 2020.08.08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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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1~3가 대로변에 2~4년째 공실인 곳 수두룩
종로 상권 최근 6개월간 매출 1년전에 비해 '반토막'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3가역 4번출구 인근 공실. 사진=정세진기자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3가역 4번출구 인근 공실. 사진=정세진기자

[오피니언뉴스=정세진 기자]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 3가역 4번 출구에서 종각역 방향으로 15m쯤 걷다 보면 1층에 198.35㎡(60평) 규모의 상가가 비어있다. 몇 달 전까지 화장품, 옷 등을 팔던 ‘깔세’매장이 있던 곳이다. 깔세는 보증금 없이 주, 월 단위로 임대차 계약을 맺는 방식.

깔세 세입자가 들어와 화장품이나 의류를 판 기간을 제외하면 이곳은 3년 이상 공실이었다. 커피와 패스트푸드를 파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은 4년 전 빠져나갔다. 이곳 임대료는 보증금 10억원에 월세 4500만원이다. 관리비 207만원은 별도다. 

공실이 된 법인 직영 매장

KT·나이키·파리바게트·에뛰드·뱅뱅… 종로 대로변에 있던 대기업 직영점들이다.

기업이 직영점을 운영하던 자리는 지금 상당수 비어 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종로3가역까지 직선거리는 778m. 7월 28일 현재 네이버 부동산 종합 사이트를 기준으로 이 대로 양측에 있는 공실은 최소 16곳. 공실 중엔 2~4년 이상 된 곳도 많다. 

종로 대로변에서 화장품 업체 E사가 직영점을 운영하던 곳. 사진=정세진 기자
종로 대로변에서 화장품 업체 E사가 직영점을 운영하던 곳. 사진=정세진 기자

화장품 업체 E사도 종로 대로변 1층 상가에서 작년 9월까지 직영점을 운영했다. 지하 1층에 12평, 지상 1층에 8평 규모의 매장이었다. 임대 계약기간은 내년 6월까지다. 3년전 시세로 보증금 2억5000만원에 월세 1700만원에 계약했다. 현재 매장은 폐점하고 월세만 계속 내는 상황이다. 

인근 부동산 업자 A 씨는 “종로 일대 건물주들은 여러 곳에 건물을 갖고 있다”며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에 이들 건물주는 버티고 있다”고 말한다. E사 직영 매장과 비슷한 크기의 주변 월세 시세는 1000만원 대 초반까지 내려갔다. 건물주 측도 건물 가치를 유지하고자 주변 시세를 최대한 반영해 입주자를 찾고 있다. 하지만 종로 상권이 예전 같지 않다. 

“종로 상권이 쇠퇴하고 있다”

조선시대 때부터 만들어진 종로 거리는 한때 대한민국 상권 1번지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와 경제 발전기를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도 종로의 명성은 이어졌다. 

KB 국민은행 리브온 상권분석 서비스는 종로 일대 상권을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전체시장 규모는 감소하고 평균매출도 감소해 시장이 쇠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종로 상권 2344개 점포를 분석한 결과 총 매출규모는 1079억7000만원이었다. 작년 5월에 비해 53.8% 줄어든 수치다. 올해 5월 기준으로 최근 6개월간 이 상권에서만 143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상권 및 점포당 월평균 매출. 사진=KB리브온 상권분석 캡처
상권 및 점포당 월평균 매출. 사진=KB리브온 상권분석 캡처

종로 상권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몇몇 매체는 주변 익선동, 을지로 등 ‘힙한’ 곳을 찾아 젊은이들이 떠났다는 이야기를 보도하기도 했다. 종로에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릴 만한 개성 있는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변 대형 빌딩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종로타워·그랑서울·디타워 등 종로 인근에 대형 빌딩이 들어섰다. 국내외 유명 요식업체들이 접근성이 좋은 이곳 빌딩에 입주하면서 종로 상권이 고객을 뺏겼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이들은 아예 상권 자체가 홍대와 신촌 쪽으로 넘어갔다고 보기도 한다. 

임대료 내리고 깔세 받는 건물주도  

한 이동통신사가 직영점을 운영하던 곳도 최근 공실이 됐다. YMCA 인근에 있는 66.1157㎡(20평) 규모 매장은 최근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400만원에 임차인을 구하는 중이다. 최근에 공실을 우려한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린 가격이다. 

종로 대로변에 한 대기업 직영점이 있던 자리가 공실로 남아있다. 사진=정세진기자
종로 대로변에 한 대기업 직영점이 있던 자리가 공실로 남아있다. 사진=정세진기자

한국 감정원 지역별 임대가격 지수를 보면 종로의 중대형 상가 임대가격이 2019년 4분기 대비 2020년 1분기에 2.68% 떨어졌다. 공실이 3~4년 이상 지속되고 종로 상권도 축소되자 일부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내리고 있다.

종로 대로변 건물주 대부분은 대기업 직영점을 선호한다. 대기업은 점포 수익 변화에 상관없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공실이 생겨도 개인 사업자의 입주 의사를 거절하고 법인만을 기다리는 건물주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건물주 중에 깔세를 받는 곳도 생겼다. 

종로 12길 인근 대로변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 역시 3~4년째 공실이었다. 4년전 1층 전용면적이 15평인 이곳 임대료는 보증금 6억원에 월세 2600만원이었다. 화장품 등을 팔기 위해 법인 2~3곳에서 입주 문의를 했지만 임대료를 맞추지 못해 결국 무산됐다.

임대료가 점차 내려 현재는 보증금 3억원에 1300만원 수준. 법인 직영점만을 고집하던 건물주도 최근에는 개인 사업자와 계약을 고려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가 직영점을 운영하던 곳이 현재 공실로 남아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유명 스포츠 브랜드가 직영점을 운영하던 곳이 현재 공실로 남아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길 건너편에서 스포츠 브랜드가 직영점을 운영하던 곳도 몇 달 전 공실이 됐다. 1층에 40평규모의 매장은 보증금 2억5000만원에 월세 1800만원을 받던 곳이다. 최근에는 월세가 1500만원까지 내려간 상태다. 

여전히 안 내리는 건물주...공시지가 평당 1억5164만원 '비싸'

한국 감정원 표준공시지가 조회 결과 2020년 종로 2가 일대 15곳의 상업용 토지 표준 공시지가는 3.3㎡ (1평) 당 1억 5164만원이다. 종로 상권이 예전 같지 않아도 여전히 임대료는 비싸다. 과거 브랜드 홍보를 위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해가면서 종각 일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직영점으로 운영하던 기업들이 떠나가는 이유다. 

종로 랜드마크였던 파이롯트 건물. 사진=정세진 기자

만년필 제조업체 파이롯트사가 사옥으로 쓰던 건물은 4년째 공실이다. 종각역 4번 출구 앞에 위치해 종각의 랜드마크 중 하나지만 최근에는 임대 문의도 받지 않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건축물 대장에 층 당 244.628㎡(74평) 규모의 건물이다. 의류 브랜드 등의 입점 문의가 있었지만 공실이 오래 지속되면서 노후화된 건물 상태와 임대료 등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동안 보증금 4억에 월세 3000만원에 입주자를 구하던 이곳은 건물주 측은 최근 매매로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 4년째 공실이고 노후화됐지만 사거리 대로변, 지하철역 앞이라는 점을 고려해 건물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변 부동산업자의 의견이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일반적으로 한 번 내린 임대료는 다시 올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건물주 측이 임대료를 내리기 쉽지 않은 이유다.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의 가치도 떨어지고 매매할 경우 건물값이 떨어진다. 하지만 파이롯트 건물처럼 오랜 공실에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건물의 경우 매매할 때 못 받은 임대료를 모두 복구할 수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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