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h so! 베를린] 나의 새로운 세입자, 쿠르드 난민 마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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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h so! 베를린] 나의 새로운 세입자, 쿠르드 난민 마수트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 승인 2020.07.3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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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집에 찾아온 쿠르드족 난민청년
단촐한 짐에 모포 한장 달랑...어린나이에 고단한 삶
"무엇을 잘 먹는지 찾아 맛있는 거라도 해줘야겠다"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최수정 베를린 통신원] 오늘 우리집에 새로운 청년이 하나 들어왔다. 집이 베를린 교외에 있는데 우리 가족이 쓰고 남은 방에 세를 놓고 있다. 주로 한국학생들을 받다가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서 오기로 한 학생이 못 온다는 연락이 왔다. 어쩔 수 없이 광고를 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을 물어왔다. 아마 한 50명 이상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처음 면접을 본 사람이 이란 쿠르드족 난민 청년이었는데 추가면접을 볼 필요없이 이 청년을 받기로 했다. 예정된 사람들의 면접을 모두 취소했다.

약30분간 면접을 봤다. 보통 중동인들은 우리와 식생활이 일치하지 않고 종교적으로 기도하는 시간도 있고 해서 서로 생활패턴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그런데 이 청년과 면접을 하면서 알게 된 그의 신상을 듣고...”아..이 청년을 받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와 쿠르드족의 인연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터키가 파병한 군인의 절반이상이 터키계 쿠르드족이었다. 터키는 당시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5455명의 병력을 우리를 위해 보냈다. 그 중 3천명이 넘는 전사자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두배가 넘는 적군을 섬멸한 용맹한 군인들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쿠르드족이었다.  

한국전 희생한 쿠르드족, 국제사회 외면 이어져 

4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주로 퍼져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그들을 반기지 않으며 수많은 차별정책을 쓰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시리아사태에서 쿠르드족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을 도와 IS격퇴를 위해 싸운 바 있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국제사회의 외면이었다. 쿠르드족의 독립을 지지하는 중동국가도, 서방국가도 없다. 아무도 그들의 국가건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쿠르드 족 시인과 학자와 경제인들은 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내어놓으며 각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터키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도시 라스 알-아인. 사진= 연합뉴스
터키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도시 라스 알-아인. 사진= 연합뉴스

쿠르드 난민 청년, 월급 절반을 이란내 가족들에게

우리집에 온 그 청년에게도 다리에 총상이 있다. 이란의 쿠르드 난민촌에서 살다가 집안의 장남인 그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부모님은 아들에게 탈출을 권했다고 한다. 이웃의 누나 둘이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고 한다. 수천 킬로의 사선을 넘어 그는 독일로 넘어왔다. 독일정부는 그에게 정치난민의 지위를 부여했지만, 정치난민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5년 동안 가족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존 배송센터에서 일한다. 그 일자리는 독일정부에서 알선해준 것이었다. 그는 거기서 배송지의 주소를 붙이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일이 어렵지는 않지만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직장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의 월급은 절반 이상 이란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진다. 그에게 쉬는 날은 늘 일정하지 않다. 정해진 표에 따라 일주일의 2일 법정 휴일을 받기는 하나 마음대로 쉴 수 있지 않다. 그는 난민이기 때문에 독일에서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려서도 안된다. 늘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만 쉬는 날이라고 급히 짐을 싸서 들어왔다. 그런데 짐이 너무 단촐했다. 그리고 방값과 보증금도 일부는 다음달에 받기로 했다. 두 번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흔쾌히 다음달에 나머지 잔액을 갚아도 된다고 했다. 물론 해당사항에 대해 영수를 하였으니 이 청년이 다음달에 줄 것으로 기대한다. 왜냐면 나는 그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는 전 집주인에게서 그 동안 말썽없이 잘 살았다는 확인서를 받아서 내게 제출하였다. 독일에서는 세입자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갈 때 반드시 전 주인으로부터 아무 문제없이 세입자로서의 책임을 다 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확인서를 받아서 새주인에게 보여주는 것이 관례다. 이것이 일종의 사적인 신원보증인 것이다. 이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방을 얻기 쉽지 않다. 게다가 독일인들은 전주인에게 전화해서 그 사람의 행동거지에 대해 분명히 체크한다.

오늘 저녁 그 청년이 무엇을 덮고 잘지 걱정이 되어 잠시 아래층에 내려가보니 홑이불 하나만 달랑 있는 것이다. 여기 베를린은 밤에 섭씨 12도 정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춥다. 결국 새입자에 대한 나의 원칙을 깨고 그 청년에게 이부자리 할 만한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이 청년때문에 내가 마음이 많이 쓰일 것같다. 이 청년은 내가 대학 들어갔을 때 막 돌이 된 아기였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청년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이란 쿠르드족 난민청년, 마수트가 독일생활에 잘 적응해 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쿠르드 친구들은 무엇을 잘 먹는지 좀 찾아보고 맛있는 거라도 해줘야겠다.

● 최수정 베를린 통신원은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주로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Ach So!는 '아하!` 라는 뜻의 독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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