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⑫ 영화음악의 역사 - 엔니오 모리꼬네를 추모하며 (후편)
상태바
[문동열의 콘텐츠연대기] ⑫ 영화음악의 역사 - 엔니오 모리꼬네를 추모하며 (후편)
  •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 승인 2020.07.20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학교 동창인 세르조 레오네와의 제안은 엔니오 모리꼬네에 있어서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그렇다고 ‘황야의 무법자’ (한국 개봉명, 원제는 A Fistful of Dollars)가 순탄하게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진 않았다. 

세르조가 만들려는 서부 영화는 미국 본토의 정통 웨스턴을 이탈리아 식으로 찍는 일명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는 영화였다. 말이 좋아 미국의 본고장 서부극을 먼 유럽의 이탈리아에서 나름 재해석해 만들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오리지널을 흉내 낸 짝퉁 취급을 받았다. 

나름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배우를 데려온 것까지는 좋은데, 이 친구는 당시 TV에서만 활약하던 친구여서 헐리우드 영화판에서는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런 평가 절하된 시선으로 인해 주요 배급사들은 배급을 거절했고, 1964년 이탈리아에서 개봉하긴 했지만 결과는 흥행 참패였다. 

거기에 줄거리의 대부분을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라는 작품에서 베껴왔다는 (초기에는 무단으로 베껴왔다가 일본 측의 소송에 져서 공식적으로 로열티를 지급한 이후로는 리메이크 작으로 분류한다) 여러 구설수까지 끼며 1967년에야 미국에 개봉할 수 있었다. 

황야의 무법자로 이름을 얻다

미국에 개봉하면서도 마케팅 적으로 불리한 스파게티 웨스턴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배급사에서는 세르주 감독과 스탭들에게 미국식 가명을 쓰기를 원했고, 결국 세르주 레오네는 밥 로버트슨이라는 이름으로, 엔니오도 ‘댄 사비오’라는 가명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개봉한 ‘황야의 무법자’는 미국에서 대 흥행을 기록한다. 2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가 든 작품이었는데, 미국 개봉 첫해 450만 달러를 벌이들이며 미국에서만 145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황야의 무법자’의 성공에는 다른 정통 서부극과는 다른 인물상이나 연출들도 한 몫 했지만 가장 극찬을 받은 건 엔니오의 음악이었다.

                   [석양의 무법자의 OST, 사실상 황야의 무법자보다 더 유명한 곡이다 – 출처 : 유튜브]

황야의 무법자에서의 엔니오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황야의 무법자는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당시 할리우드 영화들이 즐겨 쓰던 대규모 오케스트라들을 쓸 수가 없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 궁핍한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하모니카나 기타 같은 값싼 악기 몇 개랑 휘파람, 채찍 소리같은 몇가지 세션으로 곡을 만들었는데, 이 것이 황량한 서부의 분위기와 너무 잘 맞아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지금도 서부극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황야의 무법자일 정도로 서부극을 대표하는 음악이 되었는데, 헐리우드의 적자가 아닌 이탈리아의 짝퉁 웨스턴 무비의 음악이 서부극을 대표하는 음악이 되었다는 건 조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황야의 무법자’ 성공 이후 할리우드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된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후 세르조 감독과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그리고 세르조 감독의 유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까지 영화 음악사에 길이 남는 역작들을 만들어 낸다. 엔니오는 세르조에 대해 “다른 감독보다 음악에 더 많은 것을 원했지만, 나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감독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던 엔니오 모리꼬네는 88세가 되던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 풀 에이트’로 음악상을 받는다. 사진=연합뉴스.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던 엔니오 모리꼬네는 88세가 되던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 풀 에이트’로 음악상을 받는다. 사진=연합뉴스.

아카데미가 외면한 거장

영화 음악가로서의 커리어가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1986년 엔니오 모리꼬네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영국의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미션’의 음악 작업을 맡게 된 것이다. 엔니오 자신도 한 인터뷰에서 영화 ‘미션’의 음악이 “자신을 대표하는” 작품임을 인정했듯이, 영화 ‘미션’의 음악은 그야말로 최고의 수준이다. 그는 남미의 울창한 정글이라는 영화의 무대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과라니 원주민의 전통 음악이나 중세적 느낌의 예수회 합창 등 다양한 음악적 소스를 그만의 방식으로 조합하며 새로운 음악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는 영화에서 영상을 보조하는 수단이었던 음악의 존재를 영화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영상을 음악이 압도하며 음악이 영상을 끌어나가는 경험을 관객들에게 제공했다. 그러한 ‘미션’에서의 경험은 1987년 ‘언터처블’, 1988년 ‘시네마 천국’과 로만 폴란스키의 ‘실종자’ 그리고 90년대로 넘어와 ‘시티 오브 조이’, ‘사선에서’, ‘러브 어페어’로 이어지고 지금 봐도 어느 작품 하나 빠지지 않는 이 걸작의 라인업을 영화 음악의 역사에 직접 적어냈다. 

                    [88세였던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긴 헤이트 풀 에이트 OST. 출처 =유튜브]

하지만 이런 거장도 영화 음악가 최고의 영예인 정작 아카데미 음악상하고는 인연이 없었다. 1978년 ‘천국의 나날들’로 첫 노미네이트 된 이래 무려 5번이나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엔니오가 이탈리아 사람이라 차별하는 것이냐는 말이 돌기 시작하자, 여론을 의식한 듯 2007년 아카데미는 음악상이 아닌 명예 공로상이라는 형태로 그에게 명예 오스카를 안긴다. 이 때 이미 엔니오가 만든 영화 음악은 500편이 넘었고, 그의 커리어는 곧 영화 음악의 역사가 되고 있었기에 명예 오스카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많은 팬들은 그에게 ‘음악상’을 안기고 싶어했고, 결국 88세가 되던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 풀 에이트’로 음악상을 받는다.

그가 영면한 지금 돌아보면 이 때 음악상을 수여한 건 그 동안 자의든 타의든 영화 음악의 역사 그 자체를 외면했던 아카데미 위원회에게는 큰 신의 한수가 되었다는 것이 사람들의 반응이다. 만일 그 때도 수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카데미 위원회는 두고 두고 욕을 먹었을테니 말이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LG전자 스마트폰 벨소리 작곡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 . 출처=유튜브 LG전자 채널.]

80대에도 끝없는 도전...LG폰 벨소리도 그의 작품 

LG전자는 지난 2010년 자사 스마트폰 벨소리에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음악을 사용했었다. 사진=LG전자.
LG전자는 지난 2010년 자사 스마트폰 벨소리에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음악을 사용했다. 사진=LG전자.

엔니오의 위대함은 단지 그가 오랜 기간 영화 음악계에 있었다는 점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거장 음악가였지만, 과거에 얽매이기 보다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지난 2010년 LG전자와 함께 오케스트라로 된 벨소리를 작곡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오로지 벨 소리로만 쓰기 위해 거장이 직접 작곡을 해 준 것도 놀랍지만, 이를 흔쾌히 승낙한 엔니오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존경받을 만한 일인 것 같다. 

유명한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과의 일화도 유명하다. 사라 브라이트만이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듣고 몇번이나 엔니오에게 편지를 보내 이 곡에 가사를 붙여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엔니오는 이 곡은 가사를 붙이기 위해 만든 곡이 아니라며 계속 거절을 했다. 그래도 그녀의 진심어린 간청에 결국 이를 허락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바로 그 유명한 ‘넬라 판타지아’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넬라판타지아, 한국에서 모 예능프로그램으로 엄청 유명해졌다. 출처=유튜브]

엔니오 모리꼬네를 추모하며

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했던 엔니오 부자간의 에피소드도 있다. 엔니오 그도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하게 됐지만 막상 아들인 안드레아가 영화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청난 반대를 했다고 한다. 언제나 그늘에 있어야만 하는 영화 음악가로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안드레아가 당시 작곡하던 곡을 들려주자 이후에는 아들의 활동을 아낌없이 지원했다고 한다. 

아들 안드레아가 당시 작곡했던 곡이 바로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영화 마지막 어른이 된 토토가 알프레드가 남긴 키스신이 가득한 필름을 보던 장면에서 흘러 나오는 곡 ‘사랑의 테마’이다. 

많은 이들이 이 곡도 엔니오의 작품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곡은 그의 아들인 안드레아의 곡이다. 엔니오는 이 곡을 편곡했다.

                          [시네마 천국의 라스트신이었던 키스신 편집장면에 흘러나오는 사랑의 테마. 출처 : 유튜브]

아카데미 상 음악상 수상 이후에도 노구를 끌고 유럽 순회 투어와 차세대 영화음악인을 지도하던 일에 여념이 없던 그의 영면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의 영화계는 너나 할 것없이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의 업적이 어떤 식으로든 영화 음악의 아니 영화의 역사의 한 부분을 만들었고, 이제 엔니오같이 정통 오케스트라 스코어로 작업하는 영화 음악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영화 음악계를 보며 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지난 6일(현지시간) 만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지난 6일(현지시간) 만 9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는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LG인터넷, SBS콘텐츠 허브, IBK 기업은행 문화콘텐츠 금융부 등에서 방송, 게임,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해왔다. 콘텐츠 제작과 금융 시스템에 정통한 콘텐츠 산업 전문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