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기자와 언론부터 지켜야 할...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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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기자와 언론부터 지켜야 할...권석천 ‘사람에 대한 예의’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18 07: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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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권석천, 극단의 시대에 우리가 놓친 것들에 대해 묻다
1990년 경향신문 입사, 중앙일보 법조팀장, JTBC 보도국장 거쳐 현 JTBC 보도총괄
기자와 언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 말들로 세상이 변했으면
현 JTBC 총괄을 맡고 있는 저자 권석천. 사진=예스24
현 JTBC 총괄을 맡고 있는 저자 권석천. 사진=예스24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한 지난 주말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더 이상의 상처는 받지 않겠지만 남아서 그 모든 걸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날들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무례할 수 있을까. 넥타이 운운하고 침대를 언급하며 낄낄거리던 그들의 도발에 분노만 치밀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예의’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을 서점 매대에서 본 순간 지금의 세태를 야단치는 듯한 제목에 이끌렸다. 저자는 권석천. 직업은 기자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거쳐서 지금은 JTBC 보도총괄이다. 중앙일보 시절 ‘권석천의 시시각각’은 진보적인 칼럼으로 유명했다. 그는 ‘두 얼굴의 법원’과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등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제목이 시의성 높다. 권석천은 한국 사회를 “조직에 대한 예의, 국가에 대한 예의는 차리라고 하면서 사람에 대해선 건너뛰기 일쑤”라고 말한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사람은 고려의 대상에서 빠지곤” 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시대를 움직이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소신의 결과물이다.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문법에 맞춰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사회나 정치는 물론 문화나 연예 등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글이나 말로 표현한다. 육하원칙으로 알려진 그 문법은 그냥 기술일 뿐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매체마다 해석이 다른 건 문법에 얹는 매체 혹은 기자의 성향 때문이다. 그 목적이 지나쳐 소설을 쓰냐고 비판받기도 한다.

정치인이나 기자가 책을 내면 난 일단 그들의 성향, 소속 정당 혹은 매체를 본다. 그런다고 그 책을 읽는다는 건 아니다. 다만 ‘아, 어떤 글이 되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권석천의 책도 처음에는 그가 몸담았던 매체가 크게 보였다. 중앙일보는 보수를 대표하고 JTBC의 명성은 MBC와 KBS에 위협받고 있다. 확 당기는 매력을 주는 저자는 아니었다.

'사람에 대한 예의'.어크로스 펴냄.
'사람에 대한 예의'.어크로스 펴냄.

 

 

‘사람에 대한 예의’는 1부에서 4부까지 인간, 조직, 태도, 한국 사회를 다룬다. 한 인간이자 조직의 일원인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 모두가 한 번쯤 경험하고, 통과하고 있으며, 고민해볼 법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권석천은 히말라야를 취재할 때 현지 가이드와 소수민족 셰르파에게 행한 경험을 고백한다. 그들에게 폭언하진 않지만 감정을 거르지 않고 표현했고, 고마운 마음이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며 애써 표현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돈의 위세로 군림했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처럼 괜찮은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고.

그런 경험을 돌아보며 그는 스스로 질문한다. 착한 갑질과 나쁜 갑질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지,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믿음은 얼마나 위험한지. 인간이란 어떤 관계에 들어가면 그 관계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까지. 다시 말해 ‘사람에 대한 예의’를 얼마나 쉽고 편의적으로 잊어왔는지를 깨닫는다.

권석천은 기자로서 세상을 취재하며 기사로 혹은 논설로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책에서 풀어놓는다. 그의 관심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어쩌면 언론이 제대로 담지 않는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이 책에서 “좀비 공정”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어 죽은 ‘김용균 진상규명 위원회’의 보고서에서 나온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김용균 노동자가 당시에 벨트에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근접 촬영이라는 공정 때문이다. (중략) 작업 공정상에 없는 업무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따라서 위험의 정도도 평가되거나 공유되지 않은 비가시화된 위험, 이러한 위험한 공정들은 사고 이후에야 드러나게 된다. 일종의 ‘좀비 공정’인 것이다. (119쪽)

진상규명 위원회가 2019년 8월에 낸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좀비 공정은 공식적인 작업 공정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위험한 공정”을 말한다. 저자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좀비 공정 속에서 일한다고 지적한다.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는 ‘비가시화된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석천은 세상이 취재 현장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의 많은 글은 영화를 소재로 썼다. ‘곡성’에서는 스스로 미끼를 문 현대인에 대해서,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가짜 뉴스에 관해서 쓰는 식이다.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를 보고서는 차별과 편견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계층의 양극화에 따른 편견의 양극화’가 심하다고 지적한다.

(양극화가 심해져) 계층이 다르면 친구 되는 것조차 어려워진 시대다. 사는 지역이 다르고, 다니는 학교가 다르고, 근무 중인 직장이 다르다. 토끼는 토끼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나무늘보는 나무늘보끼리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140쪽)

저자는 어느 법조인이 쓴 가설도 인용한다. 그 가설은 유독 노동자에게 가혹한 법을 갖다 대는 판사들을 위한 변명이다. 그 판사들에게는 친구 중에 노조 활동을 하는 노동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그들이 가는 동창 모임이나 교회 모임에는 기업가나 관리자뿐일 거라고. 그러니 기독교인이 이단 대하듯 노조를 생각할 것이라고.

 

영화 '인사이더'.실화를 바탕으로 한 마이클 만 감독의 1999년 영화로 대기업에 맞선 언론과 개인의 투쟁을 다룬 작품. 알 파치노는 담배회사의 비리를 캐고자 하는 방송국 PD로, 러셀 크로는 회사의 협박에 맞서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제프리 와이갠드 박사로 분했다. 사진=네이버영화
영화 '인사이더' 한 장면.실화를 바탕으로 한 마이클 만 감독 영화로 대기업에 맞선 언론과 개인의 투쟁을 다룬 작품. 사진=네이버영화

 

권석천은 우리가 당연시했던 생각들이나 놓친 것들, 혹은 사람들을 소홀하게 대하거나 합리화했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이끈다. 그리고 흑화한 자기의 모습을 합리화하진 않았는지, 누군가를 위한다는 핑계로 타인에게 무례하거나 잔인해지진 않았는지, 성공을 위한다며 조직의 노예가 되진 않았는지, 분명 화를 내고 분노해야 할 때조차 참게 되진 않았는지 되묻는다.

그는 중요한 건 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간은 성냥개비로 지은 집과 같다고 비유한다. 마음속 작은 나사 하나만 틀어져도 망가지기 쉬운 존재, 남들이 눈치채지 못해도 스스로는 서서히 망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고. 반대로 굳게 쥔 주먹 하나가 사람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도 말한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는 거다. 권석천은 나부터 나에게 예의를 차리자고 그래서 가까운 곳부터 예의를 차려 나가자고 외친다. 특별히 문학계에 부탁도 한다. 남들이 보기 싫어하는 곳을 바라봐 달라고, 잠든 세상을 깨울 작품을 써달라고, 그래서 공포를 이길 희망의 느낌을 떠올리게 해달라고. 기자의 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일까.

(세상의) 기자가 쓴 글들은 바르다. 내용이 바르다는 게 아니라 기술적으로 군더더기가 없다는 의미다. 물론 세상의 도덕률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바른 글들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나라를 망하는 길로 이끌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도 있긴 하다. 아니, 있었다.

기자와 언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한때 우리는 그것을 봤으니 나는 그렇게 믿는다. 자기가 속한 매체에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그 말들 때문에 세상이 변했으면 좋겠다. 할 말은 하지 못 하고 행간에 숨겨놓았다가 후일담처럼 ‘그때 난 그러하지 않았어’라고 자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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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선인 2020-07-19 08:14:29
좋은 책을 추천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