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서울촌놈’, 지방에 대한 편견을 지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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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오지날] ‘서울촌놈’, 지방에 대한 편견을 지울 수 있을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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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터부시되던 방송에서의 사투리
‘서울 촌놈’은 사투리가 표준어처럼 쓰여
과거 바른말 취급받지 못하던 사투리의 재발견
서울과 지방의 간격을 좁힐 수 있을까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휴머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제작자의 뜻과 다른 '오진'같은 비평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방송에서는 표준어를 주로 쓴다. 여러 지방 출신인 기자나 아나운서들은 교과서적인 표준어를 구사한다. 예능의 경우 사투리를 쓰는 출연자가 나온다면 되도록 표준어 흉내를 내는 게 방송 예의가 되었다. 물론 드라마는 그렇지 않다. 등장인물이 지방 출신이라면 표준어를 쓰지 않는 게 자연스럽다. 표준어는 서울에서 쓰는 말을 기본으로 한다.

tvN에서 새로 시작한 ‘서울촌놈’은 좀 다르다. 사투리가 난무한다. 서울 촌놈,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차태현, 이승기가 지방에 사는 친구들을 찾아간다는 콘셉트다. 첫 회 방송이 선택한 지역은 부산이고, 부산 출신인 장혁, 이시언, 쌈디가 게스트로 나왔다. 다음에는 광주를 방문할 거라는 기사가 여럿 나왔다.

이 로컬(방송에서 계속 이렇게 표현한다) 출신들에게 특명이 주어졌으니 로컬 출신만이 아는 명소와 맛집을 서울 촌놈들에게 소개하라는 거다. 그리고 사투리만 써야 한다. 방송에서 부산 억양을 감추지 못했던 이시언이나 쌈디는 기다렸다는 듯 사투리를 뿜어내고, 부산을 떠나 산 지 오래인 장혁도 숨겨 놓은 사투리 본능을 퍼내기 시작한다.

tvN ‘서울촌놈’ 포스터. 사진=tvN
tvN ‘서울촌놈’ 포스터. 사진=tvN

표준어 제정과 사투리 차별

한때 표준어는 바르고 사투리는 바르지 않다는 인식이 자리한 적이 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고운 말 쓰기 운동’이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는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고운 말은 물론 표준어다. 사람과 물자가 서울로 몰린 산업근대화 바람은 서울과 시골을 부정적인 이분법으로 나누었고, ‘서울말은 근대, 사투리는 전근대’라는 인식을 퍼지게 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정승철 교수의 책 ‘방언의 발견’에 의하면, 표준어는 “19세기 서양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소산이자 상징물”이라고 한다. 구성원에 대한 교육과 계몽을 꾀해 사회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어문의 통일”을 추구했다고. 표준어는 국가나 민족 구성원을 결속하는 수단으로도, 타국을 침탈하는 제국주의의 도구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표준어가 조선 총독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도입되었다. 그전에도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 개념이 있었으나 정책으로 공인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조선인 감시나 회유를 위해서,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재를 위해서도 통일된 문자와 말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때부터 방언이 표준어와의 대립 관계로 핍박을 받게 된다.

6·25 후에는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고운 말 쓰기 운동’이 벌어진다.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어가 고운 말로, 평소에 쓰는 사투리가 곱지 않은 말로 된 거다. 유신헌법으로 ‘전체’와 ‘통일’이 강조된 시대가 되니 사투리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고속도로는 각종 물자의 이동로이기도 했지만 표준어의 보급로이기도 했다.

정순철 교수에 의하면 국어를 순화한다는 정책 때문에 “표준어는 좋은 말, 사투리는 나쁜 말”이라는 인식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방송심의규정’을 만들어 사투리 쓰는 진행자나 프로그램에 대해 규제를 하기도 했다. 교육 당국은 수업교재를 통해 사투리 대신 표준어가 바른 언어라고 끊임없이 주입했고,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촌놈’ 취급을 받게 된다.

'촌놈'은 상대적 우월감의 표현

‘촌놈’은 부르는 이의 차별 의식이 담겼고, 듣는 이에게는 모멸감을 주는 단어였다. 대학 시절 부산 출신 동기가 있었다. 서울 출신 동기들이 그 친구를 ‘부산 촌놈’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는 발끈했다. 부산이 왜 촌이냐고. 지금도 부산은 대도시이지만 30여 년 전에도 이미 대도시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는 우월감에서 온 편견이었다.

그런데 그 부산 친구가 대구에서 올라온 친구를 ‘촌놈’이라 놀리곤 했다. 대구 친구도 발끈해서 부산 친구에게 촌놈이라고 맞받아쳤다. 서로가 그렇게 놀렸다. 서울 출신이 보기에는 둘 다 촌놈이었는데.

방송이 나오기 전에도 ‘서울 촌놈’이라는 말은 있었다. 서울에서만 거주해서 지방에서는 다 알만한 기본 지식도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 ‘도시 촌놈’이라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촌놈’은 모욕을 주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람의 도회적 이미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였다. 어떻게 보면 긍정적 표현인 거다.

tvN ‘서울촌놈’ 한 장면. 사진=tvN
tvN ‘서울촌놈’ 한 장면. 사진=tvN

tvN의 ‘서울촌놈’은 기존의 관점이 뒤바뀌어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은 그야말로 촌놈이다. 부산 편을 예로 들면 그들은 부산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촌놈이다. 당연히 부산에서 나고 자란 게스트들이 방송을 주도한다. 철저히 부산 관점의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다른 지역으로 간다면 그 지역 출신이 주도하는 그 지역 관점의 프로그램이 될 것이고.

그동안의 방송이 서울 중심이었다면 ‘서울 촌놈’은 서울이 변방이 되고 지방이 중심이 된다. 자연스럽게 방언이 그 중심 커뮤니케이션 도구와 콘텐츠로 활용된다. 방언은 오방지언(五方之言), 즉 다섯 지역의 말이라는 뜻이다. 동서남북에 중앙까지 각 지역에서 쓰이는 ‘지역어’ 또는 ‘지방어’ 정도의 뜻으로 쓰였다.

편견을 지우기 위해서

정순철 교수에 의하면 과거 방언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 인식이 담겨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덕무’는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 그 지역 방언을 수집하고 연구하기도 했고. 다른 학자들 또한 “각 지역의 풍토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차이로 방언을 해석”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 등 지방 학자들이 사투리를 심하게 썼다던 기록에서도 부정적 인식은 없다고.

이제 막 첫 회를 마친 방송을 평가하긴 이르다. 하지만 중앙, 서울 중심의 방송 풍토에서 벗어난 것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회차가 쌓여서 기존 지역 탐방 예능과 다르다는 평가가 쌓여야 한다. 서울 혹은 수도권 시청자들뿐 아니라 ‘서울촌놈’이 찾아간 그 지역의 시청자들도 그렇게 느껴야 한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본능을 완벽히 숨길 수는 없었을까. (지역 탐방 프로그램이었던) ‘1박2일’ 출신인 PD와 출연진들이 나와서 그런지 예전 프로그램의 향기가 솔솔 풍긴다. 그 맛에 익숙해서 떠먹는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전혀 새로운 맛이라는 광고에 혹해 들어온 시청자들의 미각까지 잡을 수 있을지. 첫 회 끝난 후 미디어의 반응은 후하기만 한데.

지금도 다른 지역에 가서 사투리를 쓰면 괜히 움츠러드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와 다른 억양으로 말하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tvN ‘서울 촌놈’이 그런 시선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방송이 될 수 있을까.

사투리가 많이 흘러나온다고 해서 차별적인 방송이 되는 건 아니다. 사투리를 각 지역의 풍토 차이에서 오는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표현하고, 서울이 가진 지역을 향한 편견을 지워야 진정한 새로운 방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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