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에게 배신자의 낙인이 찍혔다. 그리스 연립정부의 다수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수인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그리스의 디폴트를 막기 위해 세금을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긴축정책 방안을 제시했고,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EU 지도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스는 일단 30일에 만기가 돌아오는 IMF의 부채를 탕감할 돈을 EU 가맹국으로부터 얻어쓸수 있게 됐고, 국가 부도의 위기를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런데 그는 국내의 반발에 부딛쳤다. EU가 요구하는 긴축정책을 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깨고 EU 지도자들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치프라스의 지지자들은 “잃을 게 없다. 디폴트도 감수하자”고 연일 시위를 벌였지만, 그는 일단 국가 부도를 막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지자들은 배신감을 느꼈고, 일부 의원들은 30일까지 예정된 관련 입법 처리를 저지하겠다고 겁을 주고 있다.
국회부의장인 알렉시스 미트로풀로스 시리자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에 제출한 새로운 협상안을 “극단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 비판하고, “협상안이 의회에서 승인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리자 소속 야니스 미켈로기아나키스 의원도 “정부의 새로운 제안은 시리자가 끝내기로 공약한 사회적 빈곤을 악화시키는 결과만 낳아 파국이 될 것”이라며, 협상안에 서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치프라스 정부는 올해와 내년에 각각 26억9,000만 유로(약 3조3,000억원)와 52억 유로 규모의 재정수지 개선 정책들을 제안했다. 세금을 더 걷겠다는 뜻이다.
협상 타결로 그리스는 EU 가맹국들로부터 72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아 오는 30일 IMF에 16억 유로를 상환하게 되는데, 그러려면 합의안의 조치들을 모두 반영한 법률 개정안들을 의회에서 먼저 처리해야 한다. 만약 치프라스 총리가 약속한 법안들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그리스는 디폴트와 자본통제(capital control)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치프라스 총리는 빚을 갚으라는 IMF와 긴축을 요구하는 EU 지도부에 굴복한 것이다.
치프라스는 아테네에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점거 농성을 이끄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공산당 청년모임에 가입하는 등 급진 좌파적 모습을 보인 그는 전국대학생연합 중앙위원으로 선출, 학생운동을 전개하였고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9년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당수로 취임하고, 2012년 총선에서 그는 긴축 정책을 비판하며 시리자를 제1야당으로 만들었고, 올초 높은 실업률을 바탕으로 조기 총선에서 승리해, 40세의 나이로 최연소 총리에 취임했다. 서방 국가들은 그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젋은 진보주의자의 상징이었던 치프라스는 결국 국가 파산과 이에 따른 대량 실업 앞에 무릅을 꿇은 것이다.
우리는 1997년 국가부도의 위기를 목전에 두고 IMF가 당시 대통령 후보자 전원에게 긴축정책에 대한 동의서를 받아낸 굴욕을 경험한 바 있다.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김대중 후보도 서명했고, 당선후 김대중 대통령은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노동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나라가 부도의 벼랑에 몰리면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도 없다. 그땐 빛쟁이의 요구에 의해 개혁을 하고 정치적 굴종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배신자라는 욕을 얻어먹고 있는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를 보면서, 국가 위기가 다가 오기 전에 국가부채의 수위를 제어하고, 연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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