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엔니오 모리코네, 자신의 '전설' 남기고 떠난 영화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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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엔니오 모리코네, 자신의 '전설' 남기고 떠난 영화음악가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07.0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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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 세르조 레오네와 '황야의 무법자' 등 음악 맡아
'시네마 천국',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언터처블','러브어페어' 등
폭력성 이유로 거부했던 타란티노 영화 음악 맡아 87세에 오스카 음악상 수상
엔니오 모리코네.사진=연합뉴스
엔니오 모리코네.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주름진 얼굴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담배를 물고 등장할 때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울려퍼지던 오보에 선율, 알프레도가 남긴 키스신 삭제본을 보면서 성인 토토가 눈물을 흘릴때 들려오던 음악. 바로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영화음악이다. 

지난 6일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우리 곁을 떠났다. 이미 1989년 세상을 떠난 그의 동료이자 절친인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와 만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OST를 기억하는 영화팬들이 아니더라도 리메이크된 대중 음악으로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웨스턴, 멜로,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던 모리코네. 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진 날 그의 음악과 선율은 하루 종일 FM을 통해 레퀴엠(진혼곡)처럼 울려퍼졌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먼저 영화계에 진출한 감독 세르조 레오네에게 발탁되어 '황야의 무법자'의 음악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모리코네는 '시네마 천국', '미션', '황야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언터처블' 등 5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만든 20세기 최고의 영화음악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남긴 500편의 영화음악은 1년에 7~8편씩 꾸준히 작업한 결과라고 한다. 이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협업하며 최근 가장 인기있는 영화음악가로 인정받는 한스 짐머가 평생 걸려도 이룰 수 없는 업적이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부고. 모리코네가 직접 작성했다. 사진=연합뉴스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부고. 모리코네가 직접 작성했다. 사진=연합뉴스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부고를 남기고 떠난 모리코네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 항상 내 곁에 있는,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친구에게 이를 알린다.”

모리코네가 눈을 감기 전 직접 쓴 '부고'가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공개됐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라는 짧지만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모리코네 유족 변호인이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모리코네가 병원에 입원 중 스스로 작성했다고 알려졌는데 일종의 유언장으로 그와 삶을 함께 한 가족과 여러 지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작별 인사의 내용을 담았다.

모리코네는 이어서 "이런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하고 비공개 장례를 치르려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썼다. 모리코네는 이어 가족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내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 마리아에게 특별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나는 당신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사랑을 느꼈다. 이 사랑은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면서 "이제 이를 단념할 수밖에 없어 정말 미안하다. 당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모리코네는 낙상으로 대퇴부 골절상을 입어 로마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6일 새벽 숨을 거뒀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마리아 트라비아와 마르코, 알레산드라, 안드레아 (아버지 엔니오와 함께 '시네마 천국'의 '사랑의 테마'를 함께 작곡), 지오반니 등 4명의 자녀가 있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가족과 친지만 참석하는 비공개 장례식을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사진=네이버영화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모리코네의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사진=네이버영화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함께 마카로니 웨스턴 콤비로 등장

모리코네는 1928년 11월 1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 로베르토 모리코네로부터 트럼펫과 음악 이론을 배웠다. 12세에 트럼펫 전공으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 1946년에 졸업했지만, 작곡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이 음악원 작곡과에 재입학, 1954년에 졸업했다.

1961년 코미디영화 '파시스트'의 음악을 맡으며 영화음악가로 데뷔했다. 1964년에 초등학교 동창이면서 미국에서 활동중이던 감독 세르조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의 음악을 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은 '마카로니 웨스턴'의 창시자로 알려졌는데 미국배우가 등장하며 영어대사로 만들어졌지만 유럽에서 촬영했고 정통서부극과 달리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새로운 장르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그후로도 '석양의 무법자','석양에 돌아오다', '석양의 갱들','무숙자', '옛날옛적 서부에서'('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와 마지막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까지 함께 했다. 

그 외에 '사랑과 죽음의 전장' 같은 전쟁 영화, 로미 슈나이더가 출연한 미스터리 멜로 '칼리파 부인', 알랑드롱과 장 가뱅의 느와르 영화 '시실리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

모리코네는 자신을 단지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 음악가로 대중들이 인지하는 것을 아쉬워 했다고 한다. 당시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를 B급으로 취급해 모리코네는 댄 새비오라는 영어 이름을 가명으로 쓰기도 했다.

모리코네는 레오네 감독 외에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다리오 아르젠토 등 이탈리아 거장들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넬라 판타지아'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노래는 사실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원곡이다. 영화 '미션'의 삽입곡. 사진=네이버영화
'넬라 판타지아'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노래는 사실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원곡이다. 영화 '미션'의 삽입곡. 사진=네이버영화

변방에서 할리우드로...서정적 선율로 할리우드를 적시다

유럽 영화와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모리코네는 1977년 '엑소시스트 2' 의 음악을 맡으며 할리우드 중심부로 진입한다. 그 후 리차드 기어의 '천국의 나날들', 브룩 쉴즈의 '사하라' 등의 음악을 맡으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다시 한번 레오네 감독과 의기투합한 작품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레오네 감독이 5명의 각본가들과 10년 넘게 구상해 온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미국판인 셈이다. 레오네 감독은 안타깝게도 198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영화 수록곡인 '데보라의 테마'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첫사랑을 표현한 음악으로 아련하면서도 낭만적인 선율로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설국열차'에 출연한 제니퍼 코넬리의 14세 당시의  청초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1986)의 주제가 '가브리엘의 오보에' 역시 사랑받았다. 모리코네는 자신의 회고록 '내 인생의 음표들'에서 의뢰를 받은 후 당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책을 읽으며 선교사들의  희생 정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기도. 이후 사라 브라이트만이 이 음악을 노래로 부르기 위해 모리코네에게 수년간 편지를 보내 수락해 달라고 간청한 일화도 있다. 모리코네는 상업적인 사용을 우려해 단호히 거절했으나 결국 수락했다고. 그곡이 바로 '넬라 파나지아'다.

1988년 개봉된 '시네마 천국'의 음악도 걸작. 모리코네는 당시 신인 감독이었던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각본을 읽고 마지막 장면에 대단히 감동했다고 한다. '시네마 천국'은 1990년 골든글러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오스카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지만 음악상 수상은 실패했다.

영화 '벅시'로 만났던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출연한 로맨스 영화 "러브 어페어"(1994)의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주제가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모리코네는 그가 처음엔 거부했던 타란티노 감독과 협업한 '헤이트풀8'로 오스카 수상했다.사진=네이버영화
모리코네는 그가 처음엔 거부했던 타란티노 감독과 협업한 '헤이트풀8'로 오스카 수상했다.사진=네이버영화

모리코네는 '천국의 나날들','미션', '언터처블', '벅시' 등으로 수차례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영화팬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카데미 협회는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리코네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세르조 레오네 감독 영화와 모리코네의 음악을 좋아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모리코네로부터 퇴짜를 맞은 일화는 흥미롭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모리코네의 음악을 인용하는 것은 허락받았지만 타란티노 영화의 폭력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는 그와 작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타란티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헤이트풀 8'의 음악을 정식으로 의뢰했으나 모리코네가 거부하자 그의 부인에게 대본을 전달하며 설득을 부탁했다고. 결국 모리코네는 부인의 설득으로 음악을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탐탁치 않아 했던 이 영화의 음악으로 모리코네는 생애 최초로 오스카 음악상을 거머쥐었다. 그 당시로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고령인 87세에 이룬 쾌거.

2007년 10월에 서울에서 최초의 내한 공연을 가졌으며 2011년 5월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 번 내한 공연을 가졌다. 모리코네는 작업을 할때 컴퓨터를 전혀 쓰지 않으며 그의 작업실에는 흔한 피아노조차 없다고 한다. 책상에 앉아 시나리오와 영화의 배경을 숙지하여 구상한 것들을 오선지에 구현한다. 

'시네마 천국','말레나', '베스트 오퍼' 등 7편을 함께한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2020년 8월 이탈리아 개봉을 목표로 엔니오 모리코네의 다큐멘터리 'The Glance of Music'의 후반 작업을 진행중이다.

'음악이 던진 시선'이라는 뜻의 110분 분량의 영화로 지난 4년간 엔니오 모리코네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팻 메시니, 폴 사이먼,브루스 스프링스틴, 롤랑 조페, 올리버 스톤, 쿠엔틴 타란티노 등 전세계 영화계 및 대중음악계 유명인사들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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