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ICT 커넥트] ④현실 세계의 미리 보기, '디지털 트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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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ICT 커넥트] ④현실 세계의 미리 보기, '디지털 트윈'
  • 김상혁 기자
  • 승인 2020.07.03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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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를 본뜬 가상 세계를 만드는 기술
시뮬레이션으로 문제를 예견, 대처 방안 연구
제조 분야서 사용, IoT 발달로 활용처 확대
팬더믹 극복의 한 방법으로도 연구 중
개인정보, 생체정보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따라와
게임 '와우'의 '오염된 피' 사건은 가상 세계 속 팬더믹 상황이란 주제를 통해 각종 의학 논문에도 소개될 만큼 유명한 사건이다.
게임 '와우'의 '오염된 피' 사건은 가상 세계 속 팬데믹 상황이란 주제를 통해 각종 의학 논문에도 소개될 만큼 유명한 사건이다.

[오피니언뉴스=김상혁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지난 2월, 갑자기 게임 속 15년 전 사건이 주목받은 적이 있다. 인기 PC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 이하 '와우')'에서 2005년 발생한 일명 '오염된 피' 사건이다.

'와우'에는 유저들이 모여 보스를 공략하는 던전이라는 곳이 있다. 당시 인기 던전이던 줄구룹의 보스는 플레이어들에게 지속적으로 체력을 깎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오염된 피'라는 저주를 걸었다. 다만 던전을 벗어나면 자동으로 해제되는 시스템이었다.

유저들의 직업 중 사냥꾼은 펫을 소환해 함께 싸울 수 있다. 보스를 상대하며 사냥꾼은 펫과 함께 전투를 진행했고, 펫도 똑같이 '오염된 피' 저주에 걸렸다.

문제는 여기에 버그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냥꾼이 던전 안에서 '오염된 피'에 걸린 펫을 소환 해제했다가 다시 던전 밖으로 나가서 소환하면 해당 저주에 걸린 채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 상태로 대도시를 활보하다보니 '오염된 피'가 퍼지기 시작했다. 전염된 유저는 죽으면 끝나니 상관없었지만 NPC들은 달랐다.

전염됐으나 죽지 않는 탓에 '슈퍼전파자'이자 겉으로 보기엔 알 수 없으니 '무증상 감염자'가 된 것이다. NPC들은 유저들과 상호작용하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에 NPC들과 접촉한 플레이어들은 바로바로 '오염된 피'에 전염됐다. 결국 2차, 3차 감염이 나타나며 대도시는 아비규환에 빠졌다.

이 상황을 맞닥뜨린 유저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치유 능력을 가진 유저들은 처음에는 멋 모르고, 나중에는 생명 연장을 위해 남들을 치유하고 다녔다.

자체 민병대를 조직한 유저들은 감염자들을 격리구역으로 안내시키기도 했다. 전체 채팅으로 상황을 전파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자신이 감염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몇몇 유저는 스스로 고립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도 했다.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자신의 펫에 감염시킨 후 일부러 퍼트리고 다니는 유저도 있었고, 상황을 악용해 가짜 약을 팔아 부당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다. 혹은 상황을 모르는 다른 유저들을 유인해 고의적으로 감염시키는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결국 일반 유저들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오자 게임 관리자가 등장, 서버를 강제로 리셋시키며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됐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본뜬 가상 세계를 통해 각종 문제점을 미리 살펴보는 기술이다.  사진=지멘스 홈페이지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본뜬 가상 세계를 통해 각종 문제점을 미리 살펴보는 기술이다. 사진=지멘스 홈페이지

◆ '디지털 트윈', 가상세계를 통해 현실세계 '미리보기'

'오염된 피' 사건은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안겼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와우'의 제작사인 블리자드에 전염병 연구에 참고하겠다며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이와 관련된 논문도 100개 넘게 작성됐고, 그 중 하나는 의학계 3대 저널인 '랜싯'에 실리기도 했다.

감염병의 대규모 유행은 현실에서는 절대 실험할 수 없는 주제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발생했고, 사람들의 대처 또한 제각각이었기에 의료계는 물론 정치, 경제, 학계 등 다방면에서 큰 관심을 가졌다. CDC가 해당 자료를 요청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007년 이스라엘의 벤 구리온 대학교의 란 D.발리커 유행병학 교수는 전염성 질병의 전파 모델링을 위해 게임에서의 전염병 플랫폼을 제안했다. 미국의 게임 개발 관련 커뮤니티 가마수트라는 게임 모델링으로 질병 기원 및 제어 사례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즉 일종의 '미리보기'를 통해 현실 세계에 팬더믹이 도래한다면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 미리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수년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 '디지털 트윈'이란 용어를 떠올리게 한다. 2017년 IT 컨설팅업체 가트너는 '디지털 트윈'을 미래 기술 트렌드 중 하나로 전망하며 "수년 내 수십 억 개의 사물이 물리적인 객체 또는 시스템의 동적 소프트웨어 모델인 디지털 트윈으로 표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디지털 트윈'은 디지털 가상세계에 쌍둥이처럼 만든 현실세계다. 실제 물리적인 물체 및 시스템을 가상의 디지털 세계에 고스란히 재현하는 방식의 복제다. '오염된 피' 사건은 현실을 그대로 옮겼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결과는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디지털 트윈'은 IT와 산업계에서 주목 받긴 했지만 대중에게 알려질 정도로 친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등이 부각되자 '디지털 트윈' 역시 본격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산업 솔루션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트윈 모델 재구성. 사진=딜로이트, KB경영연구소 제공
디지털 트윈 모델 재구성. 사진=딜로이트, KB경영연구소 제공

◆ 우주선 연구로 시작, 제조·금융·헬스케어 등 무궁무진한 활용

디지털 트윈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컴퓨터에 의해 가상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IoT 센서에 의해 실제 세계의 데이터가 수집, 가상세계에 반영된다. 이는 클라우드에 저장돼 빅데이터에 의한 고급분석을 통해 처리된다. 이런 시나리오를 통해 분석 결과가 도출된다. 사용자는 이를 현실에 반영한다.

사실 디지털 트윈의 개념 자체는 상당히 오래됐다. 1950년대 우주 탐사 초기 미항공우주국(NASA)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나사는 우주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지상에서 알아보고자 우주 캡슐 모형을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디지털 트윈의 시초다.

포브스에 따르면 1970년 4월에 있었던 아폴로13호의 지구 무사 귀환도 디지털 트윈의 사례다. 본래 아폴로13호의 목적지는 달이었지만 갑작스런 고장으로 착륙하지 못하고 달을 선회했다. 이때 지구에 아폴로13호의 디지털 트윈이 구현돼 있었기에 엔지니어들은 당황하지 않고 관제할 수 있었고, 우주비행사들은 안전하게 아폴로13호를 지구로 되돌릴 수 있었다.

용어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지난 2002년 미시건 대학교의 마이클 그리브스 교수다. 이후 미국 가전업체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에너지, 항공, 헬스케어 등 다방면에서 이 개념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디지털 트윈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건 최근이다. 이유는 센서를 기반으로 하는 IoT기술 발전으로 수십억 개의 IoT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또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등장과 AI 발전도 한 몫 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제조업계다. 제품 생산 과정과 결과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미리 잡아낼 수 있어 비용과 시간 절감에 큰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 필요한 초소형 정밀 센서(MEMS) 가격이 최근 10년 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기업들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이와 더불어 시각화와 관련된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의 발전과 머신러닝을 포함한 AI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산업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 항공, 철강 등 제조업계는 물론 에너지 산업, 금융 산업 등도 적용 중이다. 초단위로 승부가 갈리는 자동차 경주 대회도 디지털 트윈을 적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도시 전체를 3D 모형으로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겨 놓은 '버추얼 싱가포르'. 사진=KBS 뉴스 캡쳐
싱가포르 도시 전체를 3D 모형으로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겨 놓은 '버추얼 싱가포르'. 사진=KBS 뉴스 캡쳐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연구로 주목

디지털 트윈은 코로나19 팬더믹 극복의 한 방법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이미 '스마트 시티'의 디지털 트윈이 재난관리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바이오 콤플렉스 연구소는 정부의 전염병 확산 방지를 돕기 위해 '스마트 시티'를 통한 디지털 트윈이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대규모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바이러스 정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데이터분석 기업 글로벌데이터의 올리버 라킷 분석가는 IT매체 Ai thority의 기고문을 통해 "스마트시티의 디지털 트윈은 정부가 도시 지역에 관한 다음 단계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며 "경제 정책 조치의 안전성과 영향을 결정하는데 필수적이고 가치 있는 예측 모델링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래 가장 많이 활용된 제조 분야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제조 산업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영역 중 하나다. 이동이 제한되면서 자국 중심의 생산·소비로 패턴이 변화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한 곳은 각종 경제적 비효율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 디지털 트윈이 도입되면 생산의 효율성에서 제고를 꾀할 수 있다. 2019년 지멘스와 폭스바겐과의 공동 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대 70%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생산성은 20% 증가하한다. 또 지멘스는 마세라티와 디지털 트윈으로 협업해 세단 '기블리' 개발 기간을 처음 예상했던 30개월에서 절반 수준인 16개월로 감소시켰다.

디지털 헬스케어 역시 디지털 트윈으로 성장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최근 네덜란드의 의료기기 기업 필립스는 의료 시스템을 디지털 트윈으로 구축했을때 발생할 수 있는 효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환자'라는 가상의 신체를 구현하고 이를 활용해 여러 시뮬레이션을 실행한다. 그리고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에측해 적합한 치료 방법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무역관의 이지현 스페셜리스트는 "디지털 트윈 기술은 도시 내에서 질병의 발병이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강도로 발생하는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수집·분석한다. 또 가용될 수 있는 의료 자원을 추정·할당하고 질병의 확산을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데 활용할 수 있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IT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트윈은 목업이나 프로토타입과 달리 질문에 대한 답을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기술"이라며 "얼마 전까지만해도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영역의 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활용처는 무궁무진하다"고 짚었다.

영화 '가타카'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생긴 생체 정보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짚는 작품이다.
디지털 트윈으로 인한 헬스케어의 발전은 인간의 생체 정보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함께 따라온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 개인정보, 생체정보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과제

이처럼 디지털 트윈은 비용 절감이나 생산 효율 면에서 확질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수의 센서와 네트워크가 필요해 초기 구축 비용이 많이 들고, 관리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데다 오작동의 위험 등 여러 한계점이 있다.

더 큰 문제는 철저히 개인 정보로 설정되는 IoT의 연결 때문에 생기는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이다.

싱가포르는 2018년부터 3년에 걸쳐 수천억원을 들여 '버추얼 싱가포르'를 구현해냈다. 싱가포르를 통째로 3D 가상환경에 본떠 만든 것이다. 국가 발전을 위한 연구, 개발 등 본래 목적에 맞는 가치를 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으로 인한 개인정보의 유출과 데이터에 기반한 사회 통제와 감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동시에 제기됐다. 더불어 이렇게 수집한 개인정보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으면 오히려 정보 및 처리 능력의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보안 업계 관계자는 "현대인들은 개인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과거보다 더욱 신경쓰고 있다"면서 "이런 우려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개인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최신 기술 도입에 반발을 나태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윤리적 이슈가 있다. 1997년 영화 '가타카'는 '가상 신체' 정보로 생길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유전 정보와 생체 데이터 사용에 따라오는 도덕적 문제를 조명한다.

영화에서 나타나듯 디지털 트윈으로 인한 '가상 신체'는 아주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 악의적 사용에 대한 위험성도 크다. 우성·열성 유전자에 기반한 사회의 계급화 또한 영화가 그리는 어두운 측면이다.

또 다른 영화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나타났듯 디지털 세계를 기반으로 한 현실 세계의 통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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