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 칼럼] 기본소득 논의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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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수 칼럼] 기본소득 논의의 '기본'
  • 최남수 서정대 교수, 전YTN사장
  • 승인 2020.06.29 11: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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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의는 풍성한 찬반 공방으로 이어져야
어느 나라도 시행안해...굳이 '퍼스트 무버'일 필요는 없다
코로나 위기 대응에 재정 수요 커...증세도 어려워
빈곤층 복지감축 불가피...더 나은 대안에 대한 논의도 하자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

[최남수 서정대 교수·전 YTN 사장] 지난 2017년과 2018년 2년 동안 핀란드는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실업수당을 받고있는 17만 5천 명을 표본 추출했다. 이 가운데 2,000명에게는 매달 560유로(75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지급됐다. 세금도 물리지 않았고, 취업을 해도 금액을 줄이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실패로 알려졌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핀란드의 실험,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

지난 5월 6일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내용을 보면, 절반의 실패 또는 절반의 성공이다. 기본소득을 받은 25~58세의 2천 명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한 해에 6일 더 일하는 데 그쳤다.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일을 하면 소득이 늘기 때문에 이들이 적극적으로 더 일할 것이라는 추정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이것만을 보면 실패다. 성공적인 면도 있다.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덜했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더 컸다.

다른 한 편으론 이 실험의 설정 자체에 오류가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한 게 문제였고, 표본도 너무 작았고, 실험 기간도 짧았다는 지적이다. 핀란드 정부는 2차 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1차 실험 결과를 찬성 또는 반대를 위한 근거로 삼기는 부적절해 보인다.

기본소득을 국민투표에 부쳐 부결시킨 스위스도 비슷한 경우이다. 2016년 6월에 실시된 이 투표의 안건은 모든 성인에게 매달 1인당 2500스위스프랑(317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금액이 너무 컸다. 반대의 대상이 기본소득인지 과도한 금액인지 불분명하다. 그래서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이들 두 국가의 사례는 배제되는 게 맞다.

재난지원금으로 촉발된 '기본소득' 논란

기본소득 논의가 뜨겁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이 논의의 물꼬를 열었다. 구체적으로 제도의 시행 여부에 대해서는 세밀한 진단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이 준 긍정적 효과가 있다. 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대를 주요 어젠다로 부상시켰다. 앞으로 한참 동안의 토의과정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그 기본 틀 몇 가지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먼저, 기본소득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시행돼본 적이 없는 제도이다. 복지에 관한 한 전향적 입장을 취해온 핀란드와 스위스조차 실험과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석유수입 투자펀드에서 매년 배당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미국 알래스카주가 기본소득의 예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 제도는 본질적으로 수익 배분과 유사하다. 기본소득으로 보기 어렵다. 더 중요한 점은 핀란드의 실험에서도 언급됐듯이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실제 취지대로 실질적인 ‘근로의 자유’를 누리는지 확인된 바가 없다.

특히 재난지원금의 지급 경험을 바로 기본소득으로 확장해서 보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재난지원금은 구제 조치이다. 기본소득은 근로의 자유와 복지제도 개편을 추구하는 것이어서 성격이 판이하다. 오랜 기간 폭넓고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면서 결론을 모색해가는 게 좋을 듯하다. 효과에 대한 검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서둘러 ‘퍼스트무버’가 되려고 할 경우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우려된다.

둘째, 시기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은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일자리 파괴를 완충하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초예측’에서 “앞으로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에서 수십억 명을 퇴출시킬 것”이라며 기본소득이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실업은 현재 ‘우려’의 대상이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의 필요충분조건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가뜩이나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 완화를 위해 재정수요가 넘치고 있는 시기다. 경제 회생이 급한 상황에서 상당한 재원이 들어가는 기본소득의 구체적 시행방안까지 거론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각국 정부가 재정 지출의 초점을 이제는 구제에서 경기 부양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 맥킨지의 권고에 유념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도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본 복지제도의 대체는 물론 증세도 불가피한 제도다. 기존 복지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은 수혜자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등 복잡한 사안이다. 전례 없는 경제 위기 속에서 증세도 현실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경기에 더 찬물을 끼얹을 것이기 때문이다. 

4.15 총선전 진보측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사진= 연합뉴스
4.15 총선전 진보 진영에서 '한시적' 기본소득 도입을 적극 주장했다. 사진= 연합뉴스

기본소득이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한다면?

셋째, 효과의 문제이다. 최한수 경북대교수의 연구 결과(‘기본소득 모의실험’)을 보면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예산을 추가로 들이든 안 들이든 관계없이 소득분포 맨 아래쪽에 있는 1, 2분위 빈곤층 가구는 오히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반면 중위소득계층이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그럴까? 예산을 늘리지 않는 경우에는 빈곤계층에 집중돼 있던 복지 혜택을 다른 계층과 나누기 때문이다. 세율 인상으로 추가 재원을 확보하면 빈곤층도 세금을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빈곤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짚어볼 점은 복지 확충을 위한 다양한 대안 중 어떤 제도가 가장 실효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고용보험 대상을 프리랜서 등으로 확대해 사각지대를 없애는 게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마이너스 소득세도 기본소득과 유사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중 어떤 제도가 더 근로의 자유를 보장하고 복지 혜택을 충분히 제공하는지를 정밀하게 따져보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종합하면, 기본소득은 아직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크다. 그 꿈은 매력적이다. 현실에 뿌리 내리기는 비현실적 요인이 많아 보인다. 그렇다고 논의의 싹부터 잘라버릴 이유는 없다. 풍성한 찬반 공방이 이뤄져야 한다. 그 과정은 기본소득의 실시 여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넘어설 것이다. 근로 동기 유발, 일할 의욕을 줄이는 복지함정의 회피, 취약계층 지원, 재정건전성 유지 등 목표를 조화시킬 수 있는 ‘한국적 해법’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토의의 장이 될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창의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기다. 

● 최남수 서정대학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SBS 등 언론사에서 경제 전문기자로 일한 뒤 머니투데이방송 대표이사, YTN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SK증권 사외이사, 보험연구원 보험발전분과위원장, 유튜버(‘행복한 100세’) 등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경제 딱 한 번의 기회가 있다’, ‘교실 밖의 경제학’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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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선인 2020-06-29 17:31:17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