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비틀기'와 '유머' 산문집...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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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비틀기'와 '유머' 산문집...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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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교수의 인생과 허무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하버드대 동아시아 박사, 브린모어대 교수 역임...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영화평론으로 등단하기도...영화보다 더 부조리한 인생과 죽음, 공동체와 미래를 생각케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 펴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제목이 자극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출판가 유행처럼 제목으로 낚시하는 책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책은 여러 미디어가 ‘2018년 좋은 책’으로 선정했다. 지금도 대형 서점 인문 코너에 가면 잘 보이는 곳에 놓였다.

저자는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를 공부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그가 10여 년간 써온 글들을 담았다. 칼럼과 에세이, 그리고 평론을 골고루 실었다. 장르를 망라하고 저자의 글은 일상을 바라보는, 학교를 바라보는,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단상이 잘 녹여져 있다.

김영민의 글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통찰을 준다. 질문을 한다고 해서 진짜 물음표가 붙은 의문문으로 묻는다는 게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에세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이렇게 시작한다. “아침을 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저자 김영민 교수. 사진=어크로스 출판사
저자 김영민 교수. 사진=어크로스 출판사

저자는 글 시작부터 묵직한 화두를 던지며 독자에게 삶 저편에 있는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죽음보다는 삶에 더 집착한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산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이 다가오는 사실을 혹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직시하자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그런데 죽음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설사 죽음이 오더라도 그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죽음 앞에서 침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에너지로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책임 있는 정치 주체로 살아보라는 거다.

난 저자의 직업이 ‘정치외교학부 교수’라서 정치나 외교와 관련한 글이 많을 거로 생각했다. 물론 그런 글도 있다. 하지만 김영민의 글들은 죽음이나 인생 같은 삶의 묵직한 화두를 꺼내 놓곤 한다. 그래서 저자의 이력을 다시 살폈더니 그는 ‘철학’을 공부했고 동양 사상의 ‘역사’를 공부했다. 어쩐지 인문학 향기가 많이 풍기는 글들이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비틀기’와 ‘유머’로 가득한 산문들로 가득하다. 덕분에 저자는 ‘칼럼계의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얻었다고 한다. 어느 해 추석을 앞두고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저자는 그 글에서 젊은이들이 명절에 집에 가면 듣곤 하는 어른들의 곤란한 질문을 물리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으로 맞대응하라고. 이런 식이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중략)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라 무엇인가?”라고. (중략)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라고. (후략)(‘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 ‘추석이란 무엇인가’ 본문에서)

정체성에 관한 질문으로 계속 공격하다 보면 어른들은 입을 막을 것이고, 종국에는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거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이 글을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환호했고 칼럼으로는 흔치 않은 유명세를 치렀다고 한다. 나도 페이스북에 공유된 이 칼럼을 읽은 기억이 난다.

 

저자가 인생영화로 꼽은 '안토니아스 라인'.사진=네이버영화
저자가 인생영화로 꼽은 '안토니아스 라인'.사진=네이버영화

유머로 일상이나 사회를 비튼 글만 있는 건 아니다. 책에는 영화와 관련한 글도 여럿 수록되었는데 그 해석과 표현이 범상치 않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김영민은 어느 일간지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수상자였다. 저자 소개에 그렇게 적힌 게 아니라 ‘내 인생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이라는 글에서 고백한다.

‘영화평론’ 하면 보통 현학적인 문체가 떠오른다. 관객들은 그냥 지나쳤을 장면도 각종 ‘철학적 화두’와 ‘사회적 인식’ 혹은 ‘분석의 틀’을 갖다 대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영화에 정을 떼게 하는 글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영민의 영화평론은 친절했다. 심지어 그가 평론으로 분석한 영화가 감상하고 싶어졌다.

여행기의 목적은 그곳에 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고, 서평의 목적은 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민의 영화평론은 성공했다. 분명 쉬운 글은 아니었지만 저자의 캐릭터 분석이 내게 그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잔인한 영화, 특히 피와 살이 튀고 사람이 무참하게 죽는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가 평론을 쓴 영화 ‘한니발’을 아직 못 봤다. 그런데 ‘박식하고, 로맨틱하고, 예술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라는 글을 읽고는 ‘식육 살인마 한니발’이 이해가 되었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가 아이러니하게도 악의 화신을 사랑하게 된 것은 우리가 정반대의 아이러니에 오랫동안 시달려 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학자에게서 무지와 편견을, 긴 역사에서 부박함을, 예술지상주의에서 세속의 극치를, 성직자의 주머니에서 더러운 돈을, 혁명가에게서 보수성을, 군자에게서 파렴치함을, 권좌에서 도둑놈을, 성소에서 추악함을 보아왔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중 ‘박식하고, 로맨틱하고, 예술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본문에서)

저자는 영화에서 선을 상징하는 공권력인 FBI가 실은 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악의 정수를 상징하는 한니발이 역설적으로 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피곤함을 치유한다고 보았다. “현실의 피곤한 아이러니는 영화 속에서 정반대의 아이러니에 의해 구제받는다”고 관객이 악역에게 감정이입 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묘하게도 설득되었다.

김영민은 영화평론이 실린 챕터의 제목을 ‘이 세상 것이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이라고 지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문장이다. 이 세상에서 만들었지만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닌, 혹은 이 세상에 없지만 혹시라도 있었으면 하는 이야기 등. 저자는 그래서 “영화는 세상 속으로 수렴된다”고 믿는다.

영화보다 더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세상이지만 김영민은 인생과 죽음, 공동체와 미래를 생각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불확실성을 삶으로 받아들이면 살아가는 데 큰 고통 없이 좀 더 즐겁고 풍요로운 삶이 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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