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동열 레드브로스대표] 영국의 유명한 뉴웨이브 밴드인 버글스 (The Buggles)는 1979년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라는 노래를 발표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비주얼 뮤직 (Visual Music)의 선구자 중 하나인 MTV가 1981년 개국 첫 곡으로 이 노래를 선곡했을 정도로 노래 제목과 가사가 가지는 상징성으로 더 유명하다.
이 곡이 의미하는 것처럼 신기술이 나오면 항상 과거의 기술은 ‘죽임’을 당하기 마련이다. 모든 변혁기에서 신기술은 그야말로 혁명처럼 일어나 기득권을 깨부수고 새로운 기득권으로 자리잡는다. 1980년대 비디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라디오. 하지만 이미 70여년 전에는 라디오도 누군가를 죽이며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라디오의 등장
음악은 본래 무형의 콘텐츠다. 자연 중의 음파로만 존재하고 악보라는 형태로 기록하는 것이 전부였던 음악이라는 문화가 축음기라는 새로운 신 기술을 만나게 되자, 음악은 비로소 음반이라는 물리적인 제품을 가지게 되었다.
축음기와 음반 제작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음반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악보로 직접 연주하거나 연주자가 연주하는 음악만을 듣던 시대에서 언제 어디서나 축음기만 있으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축음기의 한계는 분명했다. 물리적인 디바이스와 음반이 필요했고, 콘텐츠 소비의 양도 제한적이었다. 음악의 대량 소비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건 라디오가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전파를 통해 소리를 먼 곳까지 보낼 수 있는 라디오 기술은 1900년대 초반에 나왔다. 초기의 라디오는 1894년 마르코니가 발견한 무선 전신 (Wireless telegraphy) 기술에 기반을 하고 있다.
모스 부호로 알려져 있는 이 무선 전신 시스템은 사람의 목소리나 음악 소리 같은 ‘무거운’ 오디오를 전달하기에는 무리였다. 20세기에 들어와 미국과 유럽의 기술자들이 만든 진공관으로 인해 오디오 신호를 증폭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원시적인 라디오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1906년에 들어 미국의 레지널드 페센덴 (Reginald A. Fessenden)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실험적인 오디오 송출을 시도했다. 페센덴은 이미 1900년에 세계 최초로 사람의 연설을 라디오로 전달했고 대서양을 통한 최초의 양방형 무선 통신을 구현했던 무선 기술의 권위자였다. 페센덴은 본인의 연구소에서 실시한 라디오 방송에서 누가복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고 녹음된 헨델의 ‘라르고’를 틀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끝으로 송출을 마쳤다. 예고 같은 것이 없었던 실험 같은 방송이었기에 미국 뉴잉글랜드 해안 근처를 항해중이던 일부 선박의 무선사들만이 이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최초의 음악 라디오 방송으로 생각하지만, 증거가 부족해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사안이기도 하다.
페센덴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대일의 무선 통신이 아닌 1대 다수의 ‘방송(broadcasting)’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1909년 이후 개벌적인 오디오 송출 시스템을 보유한 ‘라디오 송출소’가 생겨 원시적인 라디오 방송을 했고, 1919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PCGG가 최초의 상업 방송국을 열며 본격적인 라디오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1920년 영국에서는 최초로 음악을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를 정규 편성한 2MT라는 라디오 방송국이 등장했다. 이후 영국 국영방송인 BBC의 창설을 이끌기고 한 2MT의 개국 방송에서 당시 유명했던 소프라노 넬리 멜바 (Nellie Melba)가 스튜디오에 출연하여 현장에서 오페라 아리아들을 불렀다. 이는 세계 최초의 음악 생방송이었고, 넬리 멜바는 라디오 음악 생방송을 한 최초의 음악가였다.
음반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초기 음악 산업
처음 라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무렵 음악 산업의 지배자는 음반 회사들이었다. 축음기의 보급과 함께 등장한 이들 음반 회사들은 1900년대 초반 음악 산업의 왕좌에 앉아있던 악보 출판사와 공연 극장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초반 연간 4백만대 정도에 불과하던 축음기의 보급이 1920년대에 들어 연간 1억 대 이상으로 판매가 증가하면서 음악 시장의 규모는 당시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영화 산업보다 더 큰 규모로 급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1909년 미국 의회가 제정한 새로운 저작권법은 안 그래도 급성장 중이던 음악 시장에 로켓 엔진을 달아주었다. 그때까지 천차만별이었던 아티스트들에 대한 로열티가 법에 의해 규정되고 특히 라이브 공연보다는 음반 판매를 통한 로열티 보장을 보다 강하게 권유한 규정 등으로 인해 아티스트들은 라이브 공연보다 음반 판매에 더 주력하게 되었고, 이는 음반 회사들이 음악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하게 변화된 1910년대 이후 음반 회사, 소위 말하는 ‘레코드 레이블’들이 줄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레코드 회사들은 지금의 연예 기획사와 같이 음반을 기획하고 음악가들을 육성했으며, 이를 유통 판매까지 했다. 이 전통은 음악 산업이 디지털화되기 전인 1990년대까지 이어져 내려왔을 만큼 견고하게 구축된 철옹성 같은 구조였다.
특히 일부 음반 회사들에게는 당시의 마피아들의 입김이 닿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쉬쉬하긴 했지만, 보더빌 극장이나 라이브 공연들이 이루어지는 술집들의 배후에는 보통 마피아들이 있었다.
돈 냄새를 잘 맡는 마피아들에게 ‘레코드 비즈니스’는 새로운 영역이 아니었다. 이미 그들은 밤에 주로 영업하는 유흥업소 등에서 비슷한 일들을 오랫동안 해왔기에 레코드 비즈니스에 금방 적응했다. 그들은 신인 가수들을 육성하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착취에 가까운 계약을 맺었다. 음반 비즈니스는 이러한 신디케이트들에 의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한다. 라디오라는 새로운 라이벌(?)이 등장한 것이다.
라디오의 등장이 가져온 음악 산업의 대변혁
라디오는 전통적인 음악 산업과는 출발점부터 다른 일종의 ‘기술 산업’이었다. 전파라는 보이지 않는 ‘웨이브(파형)’에 소리를 실어서 저 멀리까지 보낼 수 있고, 라디오라는 축음기 같은 기계만 가지고 있으면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음반을 사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음반 회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처음 레코드 회사들은 라디오의 출현이 그렇게 반갑지 않았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자신들의 음반을 사야 하는데, 라디오는 그걸 공짜로 틀어주니, 음반의 판매가 저조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오히려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라디오가 음악을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방송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자, 소위 말하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유명 음반들이 아닌 중견이나 무명, 신인들의 음반까지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 대중들이 라디오를 통해 단지 ‘공짜 음악’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라디오를 통해 쉽게 음악들을 접하고 ‘소장하고 싶은’ 음악은 음반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디오가 음악의 홍보와 마케팅의 장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적으로 인식하고 경계했던 음반 회사들은 곧 라디오에 구애의 몸짓을 보내기 시작했고, 라디오와 음반 회사의 이런 밀월 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마피아들이 장악하고 있는 레코드 회사와 일부 부패한 유명 DJ들의 커넥션들은 지금도 현대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하는데 빠질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이 부분은 나중에 또 다룰까 한다).
이들 유명 DJ들은 음반 회사들에게 돈을 받고 새로 나온 음반을 홍보해주거나, 아티스트들이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해 라이브로 곡을 홍보하는 일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모든 산업에 있어 대량 생산도 중요하지만 이를 대량으로 소비해 줄 기반도 중요하다. 라디오의 등장은 음악 산업에 있어 ‘대량 소비’의 기반을 제공했다.
매스미디어의 탄생
라디오는 최초의 매스 미디어였다. 물론 신문이나 잡지 같은 페이퍼 매스 미디어들도 있었지만, 라디오와 비교할 때 전파 속도나 파급력에는 크게 밀렸다.
라디오는 축음기의 대용품이기도 했다. 음악 방송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그전에는 단순한 뉴스나 연설 등의 일반적인 오디오 콘텐츠와 더불어 라디오의 콘텐츠 대부분이 음악 방송으로 채워졌다. 실제로 음악이 라디오 콘텐츠의 대부분을 채우기 전까지 라디오는 그렇게 파괴력이 있는 미디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1930년대에 들어 카오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자동차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보급율이 늘게 되고 이로 인해 10대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청취자들이 늘게 되었다. 청취자가 늘자 당연하게 각 기업들은 라디오 방송국에 광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라디오는 전국적인 매스미디어로 성장하게 되었다. 음악 산업이 라디오의 매스미디어화에 가속을 붙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목이다.
축음기와 음반 산업이 기존의 음반/연예 기획사였던 악보 출판사들을 몰아내고 음악 산업의 기반을 다졌다고 하면 라디오는 음악 산업을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음악 산업은 이후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만나기 전까지 레코드회사와 라디오는 매스미디어와 공생 관계를 잘 유지해가며 주류의 콘텐츠 산업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현재 음악 산업은 현대 콘텐츠 산업에 있어 가장 큰 주류 산업 중 하나가 되었고, 20세기 초반에 탄생한 영화 산업과 더불어 현대 대중 문화와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문화 양식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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