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오지날] 개그콘서트는 항구였을 뿐, 대중들은 바다에
상태바
[대중문화 오지날] 개그콘서트는 항구였을 뿐, 대중들은 바다에
  • 강대호
  • 승인 2020.06.24 16: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중파 유일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가 폐지될 예정
변하는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21년 만에 쓸쓸한 퇴장
개콘을 떠나서 뜬 개그우먼들의 활약
코미디 부활을 바란다면 대중들의 바람을 잘 파악해야
'오지날'은 '오리지날'과 '오지랖'을 합성한 단어입니다. 휴머니즘적 태도를 바탕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제작자의 뜻과 다른 '오진'같은 비평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강대호 칼럼니스트] ’개콘‘이 폐지된다. 20세기 말, 1999년에 방송을 시작한 ‘개그콘서트’가 이번 주 금요일, 2020년 6월 26일 방송을 끝으로 ‘잠정 휴식’에 들어간다. 방송 관계자는 분명 ‘휴식’이라는 단어를 썼다. 휴식과 폐지는 전혀 다른 의미다. 그러나 휴식기를 갖겠다는 그 행간에서 폐지라는 말을 읽을 수 있었다. KBS 신인 개그맨 공채도 잠정 중단되니까.

개그콘서트는 일요일을 대표하는 방송이었다. 나는 한때 개콘 보는 게 휴일 마지막 일정이었다.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개콘이 끝나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휴일이 다 지났구나 하며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콘은 현재 일요일이 아닌 금요일 밤에 방영된다. 그것도 한동안 토요일에 하다가 옮겨진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쟁쟁한 프로그램들과 경쟁하다가 장렬하게 폐지되는 개콘. 심정적으로는 매우 아쉽다. 그래서 지난 몇 주 개콘을 다시 시청했다. 실로 몇 년 만이었다. 재미있었다. 개그맨들은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개그맨들을 위한, 개콘이 존속해야 함을 증명하지 못한 그들을 위한 위로잔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KBS 2TV ‘개그콘서트’ 사진=KBS
KBS 2TV ‘개그콘서트’ 사진=KBS

개콘 그 마지막 모습은

개콘은 지난 몇 주 각 코너와 코너 사이에 개그맨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너에 출연한 모든 개그맨이 모여 앉았고 카메라는 나름 공정하게 그들을 화면에 담았다. 그 중심에는 개콘 초기와 전성기를 달군 시니어(?) 개그맨들이 자리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떤 정당(政黨)에서 참신한 신인이나 존재감 있는 중진을 찾다가 결국에는 원로를 데려다가 얼굴마담 삼은 모습 같았다. 분명 실력은 있을 테고 후배들을 끄는 힘도 있을 테다. 그런데 그들이 참여했다고 해서 잃었던 시청자들의 웃음을 되찾아 왔을까.

개콘은 동료들이 만든 개그 코너를 보는 개그맨들의 반응도 보여주었다. 그들은 선배들의 연기에 포복절도하거나 후배들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시청자들도 과연 그랬을까.

결국은 걸러진 리액션과 연출된 웃음이 보였다. 그들의 다급함은 보였으나 정작 진정성은 가려져 보였다. 오히려 그들의 문제가 돋보였다. 한자리에 모인 개그맨들의 공채 기수 서열이, 카메라 뒤에 앉은 제작진들의 개입이 드러나는 듯했다.

그런 모습이 개콘의 마지막이라니 서글펐다. 그래서 위로잔치처럼 보였을까. 위로하는 사람은 없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만 모인 그런 위로잔치.

개콘을 떠나서 뜬 개그우먼들의 역설

개콘 폐지에 대해서 누구는 개그맨들을 탓했고 누구는 방송국을 탓했다. 그런데 개콘이 없어진다고 해서 개그맨이 설 땅까지 없어져 버릴까. 역설적으로 ‘개콘’을 떠나야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주에 방영된 KBS 1TV ‘다큐 인사이트’가 인상적이었다. 개콘 폐지를 앞두고 KBS 출신 개그우먼들을 재조명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셀프 디스’를 했다. 자기네 방송국의 그릇으로는 그녀들을 담아낼 수 없었노라고.

그 사례로 언급된 개그우먼들이 송은이, 김숙, 박나래, 김지민, 오나미 등이다. 이들은 모두 KBS 출신들로 지금 방송 제작자들이 주목하는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데뷔한 초기에는 존재감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여성을 희화한 캐릭터로 존재했다. 주역인 남성 캐릭터를 받쳐주거나 돋보이게 하는 소품과도 같은.

‘다큐 인사이트’는 우리나라 코미디 프로가 오래도록 남성 위주였다고 지적한다. 코너의 주인공은 주로 남성이었고, 그 남성이 웃기기 위해서 여성이나, 어린이나, 노인 같은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위에 언급한 여성 개그맨들도 그런 희생양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점차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를 찾아갔다고.

하지만 ‘다큐 인사이트’는 권위적인 공중파 공영 방송국 시스템에서 그녀들이 살아남을 수 없었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그녀들의 선택은 개콘을, 공중파 방송의 코미디 문법을 버린 것이었다. 대신 그녀들이 원래 지니고 있던 문법을 맘껏 펼쳤다. 그런데 대중이 열광했다.

KBS 1TV ‘다큐 인사이트’ 사진=KBS
KBS 1TV ‘다큐 인사이트’ 사진=KBS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대중들

그녀들은 자기에게 딱 맞는 옷을 입고는 자기가 평소에 쓰는 말을 내뱉었다. 극히 교과서적인 실천을 했지만 대중들은 그녀들의 낯선 시도를 재미있는 것으로,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트렌드로 받아들였다.

대중문화는 이렇듯 시청률만으로는 혹은 방송국 간부들 취향만으로는 정의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바로 대중에 의해 대중이 선택하는 영역이다. 대중이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고, 대중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줘야 하는.

그런 의미에서 송은이와 김숙, 박나래와 장도연 그리고 김지민은 대중들의 바람을 잘 읽었다. 이제 더는 김숙의 ‘가모장(家母長)’ 캐릭터가, 박나래의 ‘조지나’ 캐릭터가 비호감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들은 ‘여성이 가정의 중심’이 되는, ‘여성이 주도하는 남녀관계’를 연기하는 그녀들에게 환호한다.

이를 젠더 감수성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녀들은 그저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공중파에서는 남성의 시각으로 해석한 여성의 모습으로만 가두어 두었다면 공중파 밖에서는 그녀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맘껏 펼치라고 자유롭게 풀어준다. 대중들은 그런 모습에 환호한다.

대중들은 항구가 아닌 넓은 바다에

어떤 이는 달라진 시대가 송은이와 박나래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들이 시대를 변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송은이와 박나래 등은 공중파에서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케이블 방송이나 ‘팟캐스트’와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에서 쏟아냈다. 대중들의 관심은 그녀들을 쫓아 케이블 방송과 새로운 매체로 이동했다. 그런 관심의 이동이 공중파의 아성을 흔들었고 타 매체의 파급력은 커져만 갔다.

그 풍선효과가 지금 개콘 폐지에까지 이르렀다. 개그맨 지망생들의 꿈은 방송국 공채 개그맨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소극장 무대에서 인기가 있어도 방송국 출입증이 없으면 기가 죽는다고. MBC나 SBS는 공채 개그맨 제도를 이미 오래전에 폐지했다. 그래서 마지막 상징처럼 남은 게 KBS였는데 이제 개그맨 지망생들의 꿈이 ‘잠정’ 중단된 것이다.

많은 이는 개콘 폐지가 기회라고 한다. 권위적으로 걸러내고 검증하는 시스템보다는 대중들의 변덕스러운 감각을 채찍질로 삼는 게 오히려 나을 거라면서. 개콘은 그저 항구였을 뿐 대중들은 저 넓은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