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스웨덴 중도'에서 나온 뉴딜의 정신
상태바
[채진원 칼럼] '스웨덴 중도'에서 나온 뉴딜의 정신
  •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0.06.19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대정권마다 '뉴딜 정책' 제시...대부분 실패한 이유 알아야
유효수요 창출보다 더 중요한 건 '협력적 노사관계' 마련에 있어
대-중소기업간, 정규직-비정규직간 임금격차 줄일 '연대임금제' 도입해야
채진원 전임연구원
채진원 전임연구원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전임연구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 처해있다. 밖으로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가 상징하는 것처럼 악화된 남북관계와 외교안보의 위기다. 안으로는 코로나19로 축소된 국민경제생활의 위기와 타협할 줄 모르는 정치권의 대립과 분열의 위기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 정치권, 시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질서있고 책임있게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들사이에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떠오른 ‘한국판 뉴딜’의 방향에 대해 이견이 많은 만큼, 깊은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판 뉴딜'에서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9일 국무회의에서 “일자리가 최고의 사회안전망”이라며 “한국판 뉴딜을 대규모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살려 나가면서 특히 어려운 40대를 위한 맞춤형 일자리 정책과 함께 지역 상생형 일자리 창출에도 속도를 더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불평등이 다시 악화되고 있다”며 “임시직, 일용직, 특수고용노동자, 영세자영업자와 같은 취약계층에 고용 충격이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가 격차를 더욱 키우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우리의 역대 정부들은 경제위기 때마다 ‘한국판 뉴딜정책’을 제시한 게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정보통신 육성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한국형 뉴딜정책’을 시행했다. 이명박 정부는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녹색뉴딜’과 ‘휴먼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정보기술과 소프트웨어 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창조경제 스마트 뉴딜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1998년 IMF 위기 때 ‘노사정 모델’을 가동한 국민의 정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무늬만 뉴딜’인 채 실패로 끝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핵심에는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구했던 뉴딜의 핵심정신을 빠뜨린 채 외피적 결과로 나온 '구조(Relief)·회복(Recovery)·개혁(Reform)'이란 구호에만 집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연히 그 핵심을 빠뜨렸기에 그 외피적 결과에도 도달할 수 없었다.

미국의 와그너법이 상징하듯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구했던 뉴딜의 핵심은 ‘노사관계의 변화를 기초로 한 노사의 대타협과 국민통합’이었다. 하지만 우리 역대정부의 뉴딜정책은 이것을 빼먹은 채 대규모 토목공사 등 유효수효 창출사업을 위한 공격적 재정투입정책정도로 보아온 게 사실이다.

1935년 와그너법은 노동자의 단결과 단체교섭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해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와그너법을 통과시킨 미국 의회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의 불평등한 협상력이 기업의 협상거부와 파업으로 이어져 경제흐름이 저해된다고 주장하면서 ‘노사협조주의’를 위해 이 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국 역대정부의 뉴딜정책들은 미국 뉴딜의 핵심인 노사관계의 변화와 노사의 대타협이라는 핵심사항에 주목하지 않았기에 IMF 이후 당면과제로 제기된 대기업과 중소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앞으로 5년간 총 76조 원을 투입해 5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비대면, 녹색, 고용의 3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휴먼 뉴딜이 ‘한국형 뉴딜’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판 뉴딜’은 국민의 엄청난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반드시 성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뉴딜이 성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뉴딜의 기원인 루즈벨트 대통령의 고민이 무엇이고 그가 참조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뉴딜의 핵심인 ‘노사관계의 변화를 기초로 한 노사대타협과 국민통합’에 초점을 맞출 수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5년간 76조원을 투입해 55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5년간 76조원을 투입해 55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사진= 연합뉴스

루즈벨트 뉴딜정책 핵심은 '협력적 노사관계'

많은 사람들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1936년에 출판된 <일반이론>의 저자인 케인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이고, 반대로 케인즈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보면서 사후적으로 이론화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루즈벨트가 주도했던 뉴딜정책의 관련 법들은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판되기 전인 집권 초반기인 1933년부터 35년간에 이미 집중적으로 제정됐다. 케인즈의 이론이 나오기 전에 이미 불황의 탈출을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출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당시 언론계와 정계에서 널리 공감대를 형성했다.

뉴딜을 주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대공황의 위기에서 유효시장을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정부가 개입해 조정한다는 개념의 리버럴(liberals)로 포장하고, 프레임화해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공화당에 맞섰다. 그렇다면 뉴딜로 표현되는 그의 리버럴 노선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미국 언론인 마르퀴스 차일즈(Marquis W. Childs)를 통해 당시 스웨덴 사민당의 '비그포로스 노선(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중도노선)'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마르퀴스 차일즈는 당시 스웨덴의 사회경제적 성과를 시찰하고 나서 <스웨덴: 자본주의가 통제되는 곳, Sweden: Where Capitalism is Controlled>(1934)를 저술, 발표했다. 그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스웨덴 사민당의 비그포르스가 주도했던 국가의 재교육과 재훈련 및 공공근로사업 등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에 따른 노동시장정책을 소개했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루즈벨트가 마르퀴스 차일즈의 <스웨덴: 중도, Sweden: the middle way >(1936)를 접하고 나서 재선승리를 위해 스웨덴 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차일즈를 스웨덴에 파견하겠다고 밝힌 1936년 기자회견에서 잘 드러난다. 루즈벨트는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해외 국가 특히, 스웨덴에서 진행된 협력적 발전에 큰 관심이 있다. 몇 달 전 매우 흥미로운 책인 <Sweden : the middle way>가 나왔다. 물론, 스웨덴은 우리보다 작은 나라이다. 하지만 그들은 몇 가지 매우 흥미로운 일을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그들은 민간 산업과 정부 및 다양한 종류의 역할과 기여에 있어서 함께 행복하고 성공하는 협력적 운동이 있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관점에서 보는 연구의 최소 가치라고 생각한다. <C. Vann Woodward, The Comparative Approach to American History(Oxford: 1997), P. 302>.”

이 같은 루즈벨트의 기자 회견내용은 그의 뉴딜정책이 초반에서 중후반까지 노사협조의 선진국인 스웨덴의 경험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의 위기속에서 출현한 소련과 독일의 전체주의와 체제경쟁을 하고 있었다. 마르퀴스 차일즈의 <스웨덴: 자본주의가 통제되는 곳>과 <스웨덴: 중도>는 루즈벨트가 극좌인 소련 공산주의와 극우인 독일의 나치즘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그것은 루즈벨트가 스웨덴의 중도노선인 뉴딜적 처방을 사용하도록 해 미국을 위기에서 구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스웨덴에서 탄생한 '연대임금제도'에서 배울 점 

스웨덴은 미국보다 앞서 독일 히틀러와 소련의 스탈린 사이에서 국가 존립의 위기를 경험했다. 스웨덴은 소련과 독일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독립과 번영을 위한 처방으로 ‘제3의 길’(The Middle Way) 노선을 찾았다. 일찍부터 스웨덴 사민당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동반자적 협력관계만이 스웨덴이 살길임을 천명하고, 노사정이 대타협하는 데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소련 공산주의와 독일 나치주의라는 양극단으로부터 벗어나 제3의 길을 천명하는 노선으로 노조의 전폭적 지지를 업고 1932년부터 집권에 성공했다. 그때부터 일관되게 사민당은 노사정 대타협을 위한 대장정에 돌입했다.

스웨덴 사민당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노조에 “기업이 없으면 국가경제가 없고 일자리도 없어진다”라고 쓴소리를 했고, 파업을 계속한다면 “어쩔 수 없이 법을 만들어 노조의 파업을 금지시키겠다”고까지 경고했다. 반대로 기업에게도 “노조와 기싸움하지 말고 타협에 임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국가가 나서서 직장폐쇄금지법을 만들겠다고 경고했다. 사민당 정권은 양쪽진영을 설득한 끝에 1938년 ‘살트쉐바덴 협약’이라는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고, 이것은 ‘연대임금제도’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연대임금제도는 노사가 중앙 교섭을 통해 동일업종 내 저임금 기업의 임금 상승을 촉진하고, 고임금 기업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줄이는 제도를 말한다. 즉, 동일업종에 대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대기업의 임금은 동결하고 중소기업의 임금을 대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제도이다. 이것은 경쟁력이 없는 한계기업의 구조를 조정해 임금의 상향조정이 가능한 기업으로 재생시키는 한편 한계기업에서 해직된 노동자들에게 고용보험을 보장해 훈련과 재취업을 도모했다.

한국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의 해소를 위해 스웨덴 모델을 적용해보자는 정책제언과 시도들은 이미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 2주년 국회 국정연설에서 연대임금제도의 수용을 다음과 같이 촉구한 바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규직에 대한 강한 고용보호를 양보하지 않고 비정규직의 보호만 높여달라고 한다면 해결의 길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연대임금제나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제안 없이 어떻게 노동자간 임금 격차를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한 방안을 찾고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합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해 7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점검회의’에서도 일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 직업훈련 사례를 보고 받고 “그런 협력이 임금 분야까지 확대됐으면 좋겠다”며 “연대임금제와 같은 대-중소기업 노동자 간 협력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한국판 뉴딜’의 성공여부는 ‘헬조선’이라 부르짖는 청년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차별을 개선하는 데 있다. 비정규직 임금차별을 시정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많은 ‘싼 임금의 일자리’를 만들어도 청년실업자들은 취업을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노사정 대타협에 따른 연대임금제도의 도입에 뉴딜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노사정 대타협안에 대한 국민적 지혜와 공감대를 모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노사정 대타협을 설득하기 위해 IMF 위기속 빈곤층으로 전락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실업자들을 중산층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아래 중소하청 노동자의 임금을 대기업 노동자의 80%에 해당하도록 보장하는 “한국형 연대임금제도”를 제도화하고 입법할 필요가 있다.

● 채진원 박사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공화주의와 경쟁하는 적들」(2019),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 「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